손끝으로 대화하는 아이들
오후 6시, 교실 안 공기는 이미 무겁다.
아이들에게 나눠줄 프린트물을 준비하느라 차분히 수업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가볍게 얘기하고 잠시 교실을 나왔다. 교실과 거리가 벌어지는 만큼 웅성거리는 아이들의 소음이 더 빽빽하게 느껴졌다. 공기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여름 열기와 습도가 섞인 교실에 아이들의 답답한 호흡이 더해졌을 뿐인데.
다시 교실로 들어서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서로에게 밀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아이들에게서. 그들 대부분, 서로를 향하고 있었던 시선은 사라졌고, 손끝만 분주히 움직였다. 눈빛 대신 화면의 불빛이 아이들의 얼굴을 비췄다.
그 속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표정은 감정이 아니라 반사광일 뿐이었다.
나는 가끔 생각하곤 했다.
이 아이들은 언제부터 현실의 얼굴보다 각자 기기에 저장된 서로의 프로필 사진을 더 많이 기억하고 친근하게 느끼게 되었을까.
대화는 손끝에서 시작되었고 손끝에서 끝났다.
서로의 말은 스크린을 통과하며 부드럽게 걸러졌고, 감정은 이모티콘으로 변했다. 시간이 지나며 그게 더 편한 것처럼 느껴졌다. 웃는 얼굴, 하트, 그리고 읽지 않음 표시.
기기에는 현실의 말보다 훨씬 빠르고 편한 언어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그 안전함 속엔 서로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미처 표현하지 못한 불안이 숨어 있다. 불편한 침묵을 견디기보다, 손가락 몇 번으로 연결된 가상의 세계가 더 익숙해진 것이다.
나는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종종 묻곤 했다.
요즘 언제 가장 편한지, 심심한지, 즐거운지, 외로운지 까지.
아이들은 잠시 머뭇거리다, 누군가 대답했다.
“와이파이가 끊길 때 가장 심심해요.”
"가끔 쇼츠나 릴스를 시청하고 있는데도 유쾌하고 즐겁다기보다 심심하게 느껴져요."
그 대답에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 한 문장 안에, 우리가 만든 세상의 모든 결핍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얘들아, 이제 핸드폰을 내려놓자”라고 말할 수 없었다. 물론, 수업을 시작하며 일체 아이들은 폰을 제출했다. 이후 아이들의 눈빛이나 에너지로 인해 놀라운 상황이 그려지기도 했다. 기기와 함께하지 못한다는 건 그들의 세계를 부정하는 말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해야만 했다.
수업이 끝난 뒤, 한 아이가 핸드폰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바깥세상을 바라보았다.
순간, 나의 숨도 잠시 멈췄다.
여전히 늦지 않았다고 느꼈다.
연결이 끊긴 세상에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교실 안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진짜 눈빛이었다.
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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