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된 세계
요즘 아이들은 감정을 깊게 느끼기보다 빠르게 정리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편집된 세계 속에서 자라온 그들은 관계에서도 자신을 미리 방어하며 말보다 침묵을 선택하곤 한다. 오늘은 아이들이 말하지 않은, 그 감정의 세계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
아이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
교실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요즘 아이들은 감정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 걸까?”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자기 안에서는 많은 감정이 일고 부딪히고 있다. 너무 빠르게 혼자서 견뎌내고 있다. 아이들은 감정을 ‘깊게’ 느끼기보다 빠르게 처리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기쁨도, 분노도, 상처도 오래 머물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아직 감정을 다루는 언어도, 시간이 축적되는 경험도 부족한데...
자기감정을 스스로 압축하고 서둘러 처리하려 한다. 그래서 감정은 쌓이지도, 흘러가지도 못한 채
표정 뒤 어딘가에 꾹꾹 눌러 남겨둔다.
잘라내고 차단된 세계에서 자란 아이들
요즘 아이들은 ‘편집된 세계’에서 자라고 있다. 짧게 자르고 차단한 감정, 빠르게 넘기고 지나가는 관계, 세상은 마치 스와이프 하면 저절로 바뀌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 경험이 현실의 관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불편한 장면은 넘겨버리는 방식. 어쩌면 가장 필요한, 갈등 앞에서 상대의 마음을 상상하는 연습이 늘 부족했다.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그렇게 배우고 자라온 시대의 구조일 뿐이다. 느끼지 못한 사이 다시,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상처받기 싫어서 먼저 움츠린다’
관계 속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고 빠르다.
상대가 보낸 눈빛 하나, 비슷한 결의 말투 하나에도 자신을 향한 평가로 받아들이며 즉각적으로 방어하는 자세를 취한다.
“내가 이상한 걸까?”, “내가 틀린 건가?”
자기중심의 방어가 결국, 상대와의 소통을 막는 벽이 되어버린다. 결국 아이들은 상대도, 자기 자신도 모르는 채 혼자서 상처를 안고 버티게 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건, 아무 감정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늘도 교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가장 무거운 건 아이들의 ‘침묵’이다.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다. 감정이 없어서도 아니다.
내가 겪어 온 것처럼, 말실수로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내가 한 말을 누군가 오해할까 두려워서, 정답으로 보이지 않는 말은 꺼내고 싶지 않아서다. 침묵은 아이들이 버티기 위해 만든 최소한의 보호막이다.
그 방어막 속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질문하고, 의심하고, 자기 자신과 부딪히며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다. 아이들은 오늘도 조용히 싸우고 있다.
겉으로는 무표정하고 무기력해 보이지만 아이들은 매일 자기 안에서 반복해서 일어나는 감정과 부딪치고 있다.
감정을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시대, 편집된 세계 속에서 배운 관계, 상처받기 싫어 과하게 예민해진 자의식, 그리고 그 모든 걸 견디고 버티기 위한 침묵.
그 사이 아이들은 불완전한 어른의 속도로 느리지만 분명히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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