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마음

by 진서니

‘시작이 반이다’

월요일, 새로운 오피스로 출근을 했다.

책상 두 개와 당근으로 산 화이트보드를 놓으니 꽉 차는 아담한 사이즈지만,

친구가 준 인센스로 향기가 가득하고 작은 창문으로 파란 하늘이 보이는 이 공간에 벌써 정이 든 것 같다.

공간도 공간이지만, 북적이지 않는 회사 근처의 거리가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하다.

내가 태어난 곳이 ‘대공원역’ 근처였는데,

혹시 나의 고향에 와서 이런 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이상한 생각을 해본다.

대망의 첫날에는 오피스에 앉아있을 시간이 없었다.

먼저, 사업자 등록증을 내러 성동구 세무서에 갔다.

미리 판 도장을 가지고 와서 그런지 왠지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세무서 안은 고연령의 분들이 많았고, 그분들에게 안내자분이 언성 높여 순서를 설명하고 계셨다.

정확히 말하면, 답답하지만 꾹 참고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하고자 노력하는 목소리였다.

우리도 눈치껏 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가져왔고

그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자 최대한 나이스한 톤으로 문의하며 칸을 채웠다.

하지만 결국 어떠한 ‘종목’으로 사업자를 낼 것인가를 정하지 못했고,

이 정도는 직접 세무서 직원분께 물어보고 칸을 채울 수 있을 거란 기대로 번호표를 뽑았다.


하지만 기대는 처절하게 무너졌다. 안경 너머로 우리를 답답하게 바라보는 눈빛,

다른 직원들에게도 다 들릴 법한 큰 소리로

그래서 어떤 종목으로 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그녀에게 단번에 주눅이 들었다.

처음에는 본인이 코드를 입력한다고 하더니,

우리가 여러 종목을 이야기하니 세무서에 놓인 두꺼운 책을 보고 직접 찾아오라고 했다.

두꺼운 책은 한숨만 나왔다. 디지털 시대에, 손 안 대고 운전하는 시대에, 이런 검색이 말이 되는가.

결국 구글의 도움을 받고, (지피티는 도움이 안 됐음) 이전 직장의 사업자등록증을 참고하여 종목을 찾았다.

우리야 검색할 수 있지만, 연령대가 높은 분들이 어떻게 이걸 찾을지,

세무사 직원 분들과 대화하며 얼마나 기분 나쁠지 상상되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곧바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면 종목 정도는 당연히 알아보고 오는 것이 맞았겠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한 그녀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물론 그래도 조금 친절하셨다면, 더 좋았을 것 같긴 하다.

그렇게 냈다. 공동 계약과 사업자 등록증!

우리의 이야기가 공식적으로 발효되는 시점이다!

서류가 이렇게 큰 힘이 있나 싶다. 괜스레 마음이 들뜬다.


그리고 바로 통장을 만들기 위해 기업은행을 찾았다.

첫 번째 기업은행은 동그랗게 눈을 뜬 직원이 우릴 반겼다.

세무사에서의 일이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던 터라 일단 순수해 보이는 그 직원이 반가웠다.

반가움은 잠시. 한도가 30만 원이고, 정말 만드시겠냐고 물어보는데

마치 그 동그란 눈이 ‘도대체 이걸 왜 만들어?’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정말 그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동시에 멈칫했고 조금 더 찾아보고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기업은행을 찾아갔다.

기업 코너로 이동한 것부터 전 은행과 다르게 신뢰가 느껴졌다.

차근차근 절차를 밟았는데, 카드를 받기까지 거의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모바일로 개인 통장 만드는 데 10분도 안 걸렸던 것 같은데,

기업 통장이라 이런 것인지 너무 긴 시간에 우리는 점점 지쳐갔다.

심지어 나의 영어 이름을 묻지도 않고 그냥 만드셔서

카드에 영어 이름을 덧붙이셨고, 짝퉁 카드 같은 카드를 받게 되었다. 그냥 웃음만 나왔다.

아침에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할 줄 알았던 일들이 반나절이 소요되었고, 우리의 기를 탈탈 털어갔다.

시작이 반인 이유가 이런 건가 보다.

사업자도 있고, 통장도 있고, 오피스도 생겨서 이제 진짜 시작하는 느낌이 드는데,

이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사업은 만만한 게 아니라고 세상이 말해주고 싶었던 걸까?

이 정도 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만큼 앞으로 더 힘든 일들이 많겠지?


물론 우리는 회복 탄력성이 좋다.

화요일부터는 다시 온전한 정신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의 시작을 기뻐했다. 진짜 시작!!!!


동업의 힘

회복 탄력성이 좋다고 했는데

그건 분명 수민이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하면 늘 재밌다. 라오스에 함께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별자리 보고 길거리에서 엄청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 별자리가 뭐라고, 소소한 것도 함께하면 즐겁다.

3년 전부터 우리는 같이 하면 뭐든 너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재미를 위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재미’라는 것은 나에게 상당히 중요한 가치이다.

광고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도 함께 만들어내는 과정이 재미있어서였다.

재미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고 즐거움을 맛보는 마음의 상태라고 한다.

일을 시작할 때나, 일을 하는 과정이나,

일의 결과물이 나오고 그것에 보람을 느끼는 것까지 온 과정에 재미가 중요하다.

그리고 재미를 만드는데 무엇보다 함께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건

10년간 일을 하며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런데 함께하면 늘 재미있는 수민이와 함께하는 여정이라니,

사업이라는 어마무시한 길이 마냥 즐겁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재미만은 아니다.

최근 한 대표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전 회사를 다닐 때 함께 일했던 오프라인 대행사 대표님이다.

늘 진심을 다해 일하는 분이셨기 때문에

언젠가 꼭 다시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퇴사 이후 연락을 드렸고 만나게 되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중 대표님이 하신 말씀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동업자가 있어서 너무 부럽다는 것이었다.

혼자서 하니 누군가와 동등하게 의견을 나눌 사람이 없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누군가와 의견을 나누고 함께 결정할 수 있는 회사가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것 같다고도 한다.

친구와 함께 한다는 말에 그냥 건넨 말치레였을 수 있지만, 너무 공감되는 말이었다.

무엇보다 신뢰하는 존재이기에 서로의 의견이 합치되면 더 용기 있게 나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동안 서로의 이름을 남천하, 홍무적으로 저장하고

함께하면 천하무적!이라고 말하곤 했었는데 이제 진짜 그 이름이 빛을 발할 때인 것 같다.


앞서 동업자가 있어 부럽다는 대표님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은 우려를 먼저 보이기도 했다.

일어나지 않을 싸움을 미리 걱정하여 조언을 해주기도 하셨다.

10년간 한 번도 싸우지 않았던 우리로서는 아직 상상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이런 우리도 앞으로 싸우게 될지, 싸운다면 어떻게 싸울지 몹시 궁금해졌다.

혹시 미래에 싸우고 있다면, 이 글을 기억하길.


부모님에 대한 마음

3년 전에도 우리는 에어비앤비를 빌려 1박 2일 워크숍을 했었다.

그때 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부모님을 돕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같다.

우리가 해왔던 것이 아닌 다른 일을 한다면 부모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광고대행사 출신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왔던 것과 비슷한 결의 대행사를 할 것이라고 유추한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달랐다.

퇴사 후 돈에 쫓기지 않는 유일한 시기가 지금이라고 생각했고

6개월 간은 해왔던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해보자고 마음을 모았다.

최대한 이 시기를 알차게 쓰고 싶어서 기존의 광고 대행사 일은 받지 않기로 했다.

첫 일주일,

홍남기획의 시작에 필요한 일들을 처리하고, 미리 의뢰받았던 일들을 하고,

남은 시간은 우리가 만들고 싶은 브랜드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타깃은 역시 우리의 부모님이었다.

부모님들이 어려워하는 것들, 부모님들을 이해할 수 없어 싸웠던 것들,

요즘 시대에 부모님은 어떤 마음일지, 다양하게 생각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부모님들의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고 싶다는 것에 다다랐다.


당신이 살아온 삶을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것. 더 나아가 셀프 칭찬까지 할 수 있게끔 도움을 준다면 어떨까?

하지만 늘 그들에게 변화를 요구할 때, 싸움이 있었다.

그들의 변화를 PUSH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할 순 없을지 고민이 되었다.

이런 생각을 나누자 빠르게 이 브랜드를 세상 밖으로 꺼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 그 실체가 서비스가 될지, 제품이 될지는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한국의 시니어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20년 전부터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게 참고할만한 사례가 많을 것 같았다.


공부를 해보니 일본의 시니어와 우리나라의 시니어는 명백히 다른 점이 있었다.

일본의 시니어는 자식과 본인을 분리하여 보고

독립적인 존재로서 생각하며 은퇴 이후의 삶을 제2의 인생으로 간주했다.

한국의 시니어는 자식의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대였다.

일본은 나이 듦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한국은 부정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최근에는 액티브 시니어들도 생기고 있는 추세이기에 과도기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자료를 찾아볼수록 이 세대에 마음이 쓰였고,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자료를 찾던 중 시니어 세대에 대한 잡지를 낸 스타트업을 발견했다.

‘미션잇’이라는 회사였는데 세상에서 소외된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회사였다.

5년 정도 된 회사 같았는데, 그 어마어마한 비전을 실천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멋졌다.

미션잇 대표는 삼성 디자이너 출신이었고 자신의 능력을 더 좋은 일에 쓰고 싶어 창업을 했다고 한다.

명확한 비전과 그것을 자신의 역량을 다해 실천하는 모습이

홍남기획이 그리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이 분에게 우리의 브랜드를 소개하는 메일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과연 우리의 브랜드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나오게 될지 매우 궁금하다.




시니어 브랜드를 만드는 홍대표와 남대표의 생각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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