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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리 Mar 07. 2022

고부갈등 해결을 위한 남편의 역할은?

엄마랑 아내 사이에서 힘들어 죽겠다는 남편




 고부갈등으로 가장 힘든 사람은 당연히 당사자들이겠지만, 중간에 낀 남편 역시 괴롭기는 매한가지다. 결혼한 자식들은 대개, 새로 생긴 배우자가 자신의 원가족과 조화롭게 융화되기를 바란다. 나도 그랬고 남편도 그랬다. 남편은 고부갈등이 생길 때마다 엄마한테는 며느리 편을 들면서 싸웠고, 아내한테는 시어머니 편을 들면서 싸웠다. 이게 도대체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 싶지만, 서로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기를 바라는 큰 뜻(?)이 있었다고 한다. 아내와 어머니가 서로를 사랑하는 화목한 가정을 꿈꿨기 때문에 누구 한쪽의 편에만 설 수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남편은, 엄마에게는 '기껏 키워놨더니 아내밖에 모르는 불효 막심한 놈'이 되었고, 아내에게는 '결혼 후에도 엄마 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마보이'가 되었다.


 고부갈등 방지와 해결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의 고부갈등은 시어머니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시어머니가 바뀌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럴 일은 없다는 것을. 그러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가지고 60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자식도 아닌 며느리를 위해 스스로 본인의 성격과 행동을 바꿀 확률은 0이다.

 그렇다면 며느리인 내가 바뀌는 것은 어떨까? 시어머니가 싫은 소리를 해도 한 귀로 흘리고, 잘해주신 기억만 떠올리며 참고 살면 괜찮지 않을까? 내 쪽에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겉으로는 갈등이 드러나지 않을 테니 아무 문제없는 것이 아닌가? 아마 대부분의 며느리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나만 참으면 아무 일 없다는 생각으로 버텨본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오래 가지는 못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어머니와 남편에 대한 원망이 커지기 때문에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아니면 반대로 적극적으로 시어머니의 언행을 지적하고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하면 어떨까? 장담컨대 이 시점부터 고부갈등 폭발하고 이후로는 절대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만다. 이전까지는 며느리에게 가해지는 일방적인 학대, 폭력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대항하는 순간부터 온 집안이 뒤집어지고 난리가 나는 진짜 고부갈등이 시작된다.


 결국 고부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남편뿐이다. 고부가 직접적으로 부딪혔을 경우 서로에게 받은 상처는 양쪽 모두 쉽게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모자관계에서의 상처는 금방 회복된다. 혈연을 기반으로 한 사랑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그러니 남편들이 나서서 어머니의 행동을 제지해야 한다. 나의 아내에게 그런 행동이나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알려야 한다. 대부분의 남편들도 사실은 본인 어머니의 언행이 잘못되었다는 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배우자 앞에서 부모님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괜히 엄마에게 싫은 소리를 해서 일이 커지지 않을까, 결혼하더니 아내 편만 든다고 엄마가 서운해 하진 않을까 싶어 알면서도 입을 꾹 닫는다. 그러면서 자기는 누구의 편도 아니라며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남편의 중립은 고부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갈등을 장기화시킬 뿐이다. 어머니 앞에서는 아무 말하지 않고, 대신 집으로 돌아온 뒤 상처받은 아내를 위로해주는 남편은 그나마 훌륭한 측에 속한다. 물론 이 정도만 되어도 아내가 남편까지 미워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비겁한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폭력 가해자는 벌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건네는 위로만으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말릴 수 있는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리는 사람 옆에서 아무런 행동도 한마디 말도 없이 가만히 지켜보다가 상황 종료 후에 "많이 아팠지? 괜찮아?" 하며 맞은 사람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중립이라 할 수 있을까? 누가 봐도 한 패거리가 아닌가? 심지어 현실세계의 남편들은 이렇게 말한다. "야, 좀 맞을 수도 있지. 네가 이해해. 나쁜 마음으로 때린 건 아니야. 네가 더 잘했으면 안 맞았을 텐데. "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며느리가 속한 세상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왜 며느리들은 이러한 불합리들을 감내해야 하는 걸까. 대한민국에서 며느리가 도대체 뭐길래.


 이해한다. 남편들은 아내가 겪는 불합리한 상황들을 적극적으로 개선할 의지가 없다. 어머니가 배우자 위에 군림하는 것이 효도하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게다가 이 모든 구시대적 폐단, 즉 가부장제의 최대 수혜자는 남편 본인이다. 그러니 굳이 문제 삼고 싶지도, 해결하고 싶지 않다. 아내만 참고 넘어가면 어머니도, 나도, 나의 원가족들도 모두 행복하다. 아내만 희생하면 된다. 평생을 나를 위해 고생한 어머니한테 감히 싫은 소리를 할 수는 없다. 어머니가 나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런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정말 불효아닌가. 내 아내는 엄마보다 젊고 똑똑하고 긍정적이니까, 엄마가 준 별것 아닌 상처들 쯤이야 금방 극복할 수 있겠지.


 하지만 틀렸다. 아내들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상처를 절대 극복하지 못한다. 결국 남편들의 방치와 회피가 고부관계는 물론 부부관계까지 망치고 만다. 아내를 위해서, 본인을 위해서 남편들은 바뀌어야 한다. 물론 어머니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어머니 또한 고부갈등으로 상당한 상처를 받는다. 아랫사람인 며느리가 자신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거나 반기를 드는 것에 대해 굉장한 충격을 받게 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본인 세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편들은 아내가 나서기 전에 먼저 나서야 한다. 물론 아들이 아내 편을 들며 본인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에 감정이 상할 테지만 잠깐이다. 어머니는 결국 아들을 용서한다.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란 것을, 그리고 그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라는 것을 알게 다. 어머니 본인의 인생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결혼한 자식을 1순위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독립한 아들 내외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도움을 주려 하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아들과 며느리를 믿고 자율적으로 스스로의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이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다. 이제부터라도 자식의 굴레에서 벗어나 본인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어머니 자신을 위한 일, 좋아하는 일, 본인의 인간관계 부부관계에 집중하며 자신을 1순위로 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이 편이 훨씬 행복할 것 같지 않은가?


 그러니 남편들은 되지도 않는 비겁한 변명들은 집어치우고 적극적으로 아내를 지켜라. 아내를 지키는 일이 나의 가정을, 나의 원가족을 지키는 일이다. 남편이 아내 편에 서줌으로써 한 마음 한 뜻이 되면 부부관계는 물론 결과적으로는 고부관계까지 좋아진다. 어쩌면 남편들이 그토록 원했던, 엄마와 아내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때가 되면 아내 스스로 부모님 효도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을까?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두 여자의 관계는, 결국 남편 본인이 하기에 달렸다는 것을 하루빨리 깨닫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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