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나에게는 삶에 치명적 영향을 끼친 경험들이 있었다.


그중 오랫동안 인간관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경험은 고1 교련시간에 벌여졌다.

가뜩이나 바닥이었던 자존감이 지역에서 우수한 아이들이 모여있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더 위축되었고, 끝없이 불행감만 쌓여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약한 내면을 감추고 보이지 않기 위해 맹렬하게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고, 도저히 따라가기 어려웠던 성적은 차라리 외면해 버림으로써 상대적 평가에서 도피를 선택한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칼날 위를 목숨 걸고 지나고 있던 나에게 교련수업에서 한 시간 동안 엎드려뻗쳐를 했던 경험은 마치 칼에 베인 듯한 충격을 주었다. 그 이유도 어처구니없었다.


"감히 내 수업시간에 남학생들을 쳐다봐! 엎드려뻗쳐!"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묻고 답하고는 한다. '나는 운동장 저편에서 체육수업을 하고 있던 남학생들을 쳐다봤을까? 설사 그들을 쳐다봤다고 그런 처벌을 받아야 했을까? 그때 나는 '아닙니다. 억울합니다.'라고 항의는 했을까?'

하지만 상황에 대한 정확한 기억은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그저 지금 남아있는 기억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바보같이 얼굴에 피가 몰린 듯 쌔뻘게져서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었던 내 모습이었다. 너무도 바보같이 말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까?


그때의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는데, 지금의 나는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고 있을까? 지금의 나도 여전히 견디고 있다.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시인하고 있다. 왜냐하면, 의도와 달리 상대에게 내 행동이 비난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 상대의 마음이 누그러지기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때때로 그때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같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유가 달라졌다. 수치와 두려움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그때와 달리 내 행동을 제대로 인지하고, 기다리고 있는 지금의 나는 같지 않다.


그때의 나는 아무 소리 못했지만, 지금의 나는 기다리고 있다. 그 기다림이 때로는 고통스럽고 힘겹지만 그럼에도 견뎌내고 있다. 벌벌 떠는 기다림이 아니라, 내 마음속 어린아이에게 위로를 건네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설사 그렇게 벌을 섰다 한들 무엇이 그리 수치스러웠니? 그저 어린 마음에 낯선 남학생에게 호기심이 생겨 쳐다봤을 수도 있지, 그게 무어 그리 큰일이라고. 모든 이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 비합리적 신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 신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구나.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때로는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지만 그때 그리 괴로웠던 것들을 지금까지 버틴 것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위안이 된다. 인생은 이렇게 흘러간다. 상처받고, 상처 주고, 위로받고, 위로하고. 이 역동의 중심 내가 있다. 내가 그 역동을 만들고, 그 역동을 잠재울 수도 있는 사람인 것이다.


이런 깨달음 속에서 나는 또한 기도를 드린다.


"주님! 도와주세요.

이제는 타인보다는 저를 위한 힘을 주세요.

진심으로 제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당신의 사랑을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세요.

좋은 상담사가 되어, 좋은 댄스강사가 되어 마음이 아픈 이들 곁에 진심을 담아 서 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러기 위해 제가 건강한 상담자로 서 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멘!"

작가의 이전글춤추는 상담사 @dancing._.counsel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