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야경 뒤에 숨어 있던 '방언'의 향연
푸니쿨라를 탔다.
오늘 많이 걸었던지라 부다 성까지 하염없이 걸어 올라가는 계단은 피하고, 포린트 동전도 쓸 겸 쿨하게 푸니쿨라를 타기로 했다. 매표소 유리에 붙은 요금을 확인하고 편도 2인 티켓을 끊었다. 조금씩 올라가는 푸니쿨라 안에서, 눈높이가 점점 높아지며 부다페스트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다 성을 어슬렁거리다가 이어져 있는 어부의 요새로 향했다. 역시 높은 곳에서 보는 전경이 아주 시원하다. 다리 너머 국회의사당이 보이고, 조금씩 해가 저물어가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감상적인 기분이 밀려들었다.
"감사하다. 행복하다."
해가 완전히 졌다.
해 질 녘부터 건물들에 불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부다페스트의 잊을 수 없는 야경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조명이 켜진 국회의사당은 황홀했고, 그 불빛이 다뉴브강에 잔잔하게 일렁이는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풍경이었다.
해외여행을 나가면 어디에서나 한국말이 들린다고 했다. 하지만 낮 동안 부다페스트 시내를 계속 돌아다니는데 한국말은커녕, 동양인 자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직 한국인들에게는 덜 알려진 곳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어둠이 깔리고 조명이 켜지기 시작하고, 완벽한 야경이 펼쳐지자 어디선가 한국말이 온 사방팔방에서 방언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람? 낮에는 안 보이던 한국인들이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기에 지금에서야 좀비 떼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인지! 여길 봐도 한국 사람, 저길 봐도 한국 사람, 360도를 둘러봐도 전부 한국 사람들이다.
누가 봐도 포토존인 곳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줄 서 있는 이들도 한국 사람. 사진 찍고 있는데 사진사와 피사체 사이를 당당하게 지나가는 사람들도 한국 사람. 사진 찍고 있는데 굳이 옆으로 비집고 자리를 잡아 일행에게 사진 찍어 달라고 하는 이들도 한국 사람. 죄다 한국 사람들이다.
아... 이런 한국 사람, 나도 한국 사람.
그 덕(?)에 제대로 된 사진은 건지지 못하고 사람 없는 곳으로 피하듯 이동했다. 그랬더니 조명이 없다. 그래도 좋았다. 조명이 없어 인물은 시커멓게 나왔으나, 배경 건물에는 조명이 있었기에 사진을 찍어놓으니 실루엣처럼 나오는 것이 아닌가.
"오오~~ 잘 나왔다."
.........결국 얼굴이 안 나온 게 제일 잘 나온 사진인 거였다. 얼굴이 안 찍힌 게 예쁜 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