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여행기] 06 - 예상했던 일이 터졌다

낭만적인 밤, 그리고...

by 강라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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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의 요새에서 부다 야경을 실컷 보고선 뒷길로 걸어 내려왔다. 강 건너 환하게 조명 빔을 받고 있는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한 컷, 두 컷(아니, 백 컷...) 찍고선 그제야 미련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을 보니 밤 9시. 나름 알차게 구경을 했던 것 같다.

배가 슬슬 고파왔다. 근처에 식당이 있나 싶어 검색해보니 세체니 다리 건너에 유명 맛집이 있단다.

시간은 늦었지만 (늦었기에 트램도 끊김) 아직 힘이 남아있는 튼실한 두 다리를 움직여 세체니 다리를 건넜다.

밤 기운, 살랑 부는 바람, 이국의 풍경. 모든 것이 어우러져 괜스레 들뜬 기분이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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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체니 다리를 건너 식당을 찾아갔더니 라스트 오더 시간이 지났다고 퇴짜 맞았다. 아, 이런. 배가 많이 고픈데. 별 수 없이 숙소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하고 걸어가려는데, 이제는 발가락도 다리도 한계치에 다다랐다. 그래서 택시를 타기로 하고 우버를 부르려는데, 이 동네는 우버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사실 별생각 없이) 한국처럼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더니 우리를 태운다.

폭신한 좌석에 앉아 찰나의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낯선 곳, 말 안 통하는 곳, 관광객 등의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더니, 이내 나의 본능적 DNA가 ON 했다.

바로, 남을 믿지 못하는 파워 J의 불신 본능 말이다.

택시 기사는 유쾌하게 우리에게 인사하며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다. 친구는 그의 말에 함께 유쾌하게 대꾸했지만, 나는 조용히 구글 지도를 켰다. 그리고 아니길 바랐다. 택시 기사가 우리가 관광객임을 알고 길을 돌아 돌아 요금을 덤터기 씌우지 않기를.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직진 거리를 우회전해서 돌아간다.

왜 안 좋은 예상은 꼭 들어맞는 걸까. 그때부터 나는 초 긴장 상태 모드다. 내 눈은 지도와 백미러를 번갈아 보며 속절없이 오르는 미터기 금액을 가늠하고 있었다. '저게 얼마쯤일까. 돈이 얼마 남았지?' 택시 기사는 시커먼 속내를 숨기며 똥꼬발랄하게 대화를 이어갔고, 친구는 내 속도 모르고 웃으며 노가리를 깐다. 그래서 내가 옆구리를 툭! 치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 사람 지금 돌고 돌고 돌아서 간다. 3분 거리를... 이 봐."


지도가 띄워져 있는 핸드폰을 보여줬다. 기사도 백미러로 우리의 동태를 살피는지, 순식간에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택시 기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직진 거리를 우회전했다 좌회전했다를 반복한다.


"하아..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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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리 하려던 찰나에 차를 멈춰 세우는데, 주변을 보니 숙소 근처다. 부당한 처사에 따져 물으려고 했지만 와다다다 솰라솰라가 될 리가 만무. 분하지만 미터기에 찍힌 숫자를 확인하고 저 정도의 돈은 남았다 싶어 기사에게 돈을 건네니 아니란다. 더 내란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러게 왜 삥삥 돌았냐고! 현금은 이게 단데!'

열이 확 났다. 좋았던 기분도 한 번에, 아주 짜게 식었다. 친구가 나머지 금액은 카드로 계산하겠다며 본인의 카드를 주었다. 그런데 택시 기사는 "Only money! Only cash!" 이 지X을 하고 있다. 현금이 없다고 하자, 저기 은행이 있으니 가서 뽑아오란다. 그런데 가만 보니 저기 카드기가 있는데 계속 돈돈 거리며 카드기 없다고 잡아뗀다. 누굴 바보로 아나. 사기죄에 괘씸죄가 추가됐다.


"저기 카드기 있는 거 다 아는데 무슨... 아저씨, 경찰서 가고 싶어? 어?!"


단호하게 얘기하니 그제서야 카드기로 결제했다. 그 아저씨 때문에 부다페스트의 좋았던 기분이 한순간에 망가져 버렸다. 눈탱이 맞은 게 억울했다. 3분이면 올 거리를 빙빙 돌아 10분 만에 왔다. 택시비를 한국 돈으로 환산해보니 8만 원가량 나온 거였다.

[너 시키 그렇게 인생 살지 마라. 삥땅 처먹은 돈 4배만큼 손해 봐라!]

잊어버리자. 이제 여행 첫날인데 이 아저씨 때문에 기분을 망칠 순 없다. 그저 앞으로의 여정을 향한 액땜했다고 쳤다. 주변 식당은 이미 오더 시간이 지나 밥은 걸렀고, 숙소 옆에 피자 가게로 들어갔다. 피자를 사면서 사장님께 물었다.


"아저씨 부다페스트는 원래 택시비가 비싸요?"


표정을 보니 질문에 대한 부가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좀 전에 겪었던 일을 말했다. 그랬더니 사장님 왈.


"부다페스트 택시비는 기본적으로 비싼데, 손 흔들고 타면 더 비싸. 그러나 너희가 낸 만큼의 비용은 나오지 않지. 한마디로 너희 눈탱이 맞았어. 아주 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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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가 맛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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