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확장과 자아의식의 혁명

2025년 한국 여행 이야기 3 (부제: 추억의 영토확장으로서의 여행)

by memory 최호인

1.


물체가 가속운동 또는 회전운동을 할 때 시공간 그물이 출렁이면서 생기는 파동을 ‘중력파’라고 합니다. 중력파의 존재와 중력파로 인해 발생하는 시공간의 왜곡을 이론적으로 밝힌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습니다.


그게 백 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전시키는 데서 착안한 이 예측은 2015년 실험에서 블랙홀 충돌에 의한 중력파 검출을 통해 ‘사실’로 확인되었지요. 올해 9월은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난달입니다.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것은 빈말 또는 문학적 어구가 아니라 과거에 물리적 공간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사실입니다. 지구에 있는 무거운 원소들은 외계에서 왔다고 봐야 마땅하다는 천문학적 이론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와서 별로 돌아갈 운명인 셈입니다.


우리의 몸이 아주 작은 원소로 분열되어 또 다른 물체로 편입되는, 길고 긴 과정을 상상하는 것은 우리 인식의 지평선을 넓힙니다. 어렸을 때 나는 가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반짝이는 저 빛이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에 출발했다는 상상을 하고 작으나마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 빛이 얼마나 긴 시간과 공간을 고독하게 달려와서 내 망막에 부딪히게 되었을까. 수백수천수만 년 전에, 심지어 수억수십억 년 전에 출발한 빛이 오늘 밤이 되어야 비로소 내 눈에 비쳐 들지만 나는 마치 저 별이 방금 빛을 보낸던 것처럼 착각하곤 합니다.


2.


“장소는 우리에게 우리가 되돌아갈 어딘가, 즉 연속성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장소는 우리 삶의 일부분을 서로 연결하고 일관성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친숙함을 준다. 장소가 제공하는 커다란 눈금 안에서 우리의 문제는 어떤 맥락을 얻고, 광활한 세상은 상실이나 문제 혹은 추함을 해결하고 치유해 준다. 길고 멀리 떨어진 장소들은 그곳에 우리 자신의 역사가 깊이 새겨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곳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야기 또는 다른 자아를 상상하게 해 준다는 이유로, 혹은 그곳에서는 술을 잔뜩 마시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단순한 이유로 안식처가 되어 준다.”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중 52쪽)


우리는 끊임없이 움직임으로써 장소 이동을 합니다. 이런 작은 운동마저 중력파의 영향을 받는다고 상상하니,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장소란, 우리의 물리적 존재의 근간입니다. 거기에 발을 딛고 거기에 추억을 묻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장소를 생각할 때마다 추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당신이 살았고 당신이 움직였고 당신이 사랑했고 당신이 사랑하던 사람이 웃음 짓고 행복해하고 눈물을 흘리고 아파하고 죽었던 바로 그곳 말입니다. 따라서 장소를 떠올릴 때마다 우리는 삶의 맥락과 연속성을 찾아내게 됩니다.


여행이란 자신의 추억의 영토의 확장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의 나와 저곳에서의 나, 이곳에서의 우리, 저곳에서의 우리는 언뜻 연속성을 잃어 보이지만 실은 긴 줄타래로 연결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아슬아슬하게 간직하는 기억의 연장선에서 말입니다.


나는 종종 이곳의 나와 저곳의 나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떠올리면서 놀라고 경악하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그런 것을 ‘페르소나’라는 개념으로 연결시키고 다양한 나를 묘사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것은 내가 대하는 사람과 더불어 모두 장소와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 물리적 사실일 듯합니다.


리베카 솔닛은 1961년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 태어났고 80년대부터 여권운동가이자 반핵 환경보호 활동가로 활동했고, 역사가, 비평가, 작가로서 저술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솔닛은 다음 페이지에서 이렇게 말을 이어갑니다.


“세상이 크다는 사실이 구원이 된다. 절망은 사람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우울함은 말 그대로 푹 꺼진 웅덩이다. 자아를 깊이 파고들어 가는 일, 그렇게 땅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가끔은 필요하지만, 자신에게서 빠져나오는 일, 자신만의 이야기나 문제를 가슴에 꼭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탁 트인 곳으로, 더 큰 세상 속으로 나가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양쪽 방향 모두로 떠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며, 가끔은 밖으로 혹은 경계 너머로 나가는 일을 통해 붙잡고 있던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일이 시작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풍경 안으로 들어온 광활함, 이야기로부터 당신을 끄집어내는 광활함이다.”


3.


작가의 말대로 세상이 크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는 것은 종종 매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공간에 갇혀 있음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때때로 불안과 절망에 갇혀서 뭔가를 포기하는 사람을 보곤 하는데, 나는 그럴 때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일단 앞으로 전진하는 것을 멈추라고 권합니다. 지금껏 해왔던, 앞으로 전진하고 싶은 욕망이 좌절됨으로써 우리는 그 좁은 공간 속에서 우울해지고 좌절하면서 포기하기도 했던 겁니다. 그럴 때 나는 지금이야말로 제발 전진하려고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무조건 빠져나오라는 말이 아닙니다.


일단 전진을 멈춘 후 눈을 감고 생각할 것을 권합니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애써 참고 시간을 들여서 깊이 있게 사고해야 할 때입니다. 그때야말로 자신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가려고 하는지, 방법은 무엇이었는지 깊은 사고를 하는 순간입니다. 그런 사고는 인생의 깊이를 더해 주고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또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런 후에는 눈을 옆으로 돌려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앞을 보면 캄캄하지만, 옆에는 다른 것이 보입니다. 용기를 내어 눈을 돌리면, 경계 너머, 자신이 매몰되지 않았던 더 넓은 바깥 어디인가를 볼 수 있고, “자신만의 이야기나 문제를 가슴에 꼭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다른 곳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여행은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여행을 통해서 매몰되었던 공간에서 탈출하는 것은 종종 삶의 전환기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가끔 경계 너머로 나가는 것은 문제를 푸는 핵심적 발걸음, 삶을 전환시키는 모멘텀이 되기도 합니다. 눈을 옆으로 돌렸을 때 비로소 다른 생각과 목표럴 가지고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도 보이고 다른 길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알 수도 있습니다.


장소는 확장되고 사고는 넓혀집니다.

그것이야말로 자신과 자아의식에 대한 혁명일 것입니다.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워지면서, 나아가 거듭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장소의 기억, 시공간적 이동, 공간의 확장 등은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껏 살아온 생이 아름답고 만족스럽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딱히 권하지 않고 싶은 말이긴 합니다. 공간 화장은 다소 모험적이고, 삶은 행복을 느끼기에는 너무 짧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