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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리스 Jul 10. 2022

나는 떡볶이가 싫어요

떡볶이 마니아의 동생으로 살아가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 간식은 무엇일까? 내 생각에 열에 아홉은 바로 이 음식을 꼽지 않을까 생각된다. 쫀득쫀득한 떡과 다양한 재료를 매콤 달콤 짭짤한 소스에 넣어 끓인 “떡볶이” 말이다. 동네 어느 분식집을 가도 메뉴판에서 떡볶이를 찾아볼 수 있고, 각 지역별 떡볶이 맛집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며, 전국적인 체인을 갖춘 떡볶이 기업과 떡볶이 전문 뷔페까지 있을 정도이니, 이만하면 국민 간식의 절대 강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떡볶이를 싫어한다. 떡볶이를 입에도 대기 싫을 정도로 혐오하는 수준은 아니라서 누군가가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하면 군말 없이 따라가지만, 내 의지로 떡볶이를 먹으러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유명한 떡볶이집이라는 신토불이 떡볶이, 또보겠지 떡볶이, 애플하우스 떡볶이 등등에서도 떡볶이를 먹어봤으나 어느 포인트에서 사람들이 열광하는 지를 잘 모르겠다. 나에게는 뜨끈한 고추장 양념 맛과 흰 떡의 말랑말랑한 식감이 따로따로 느껴질 뿐, 그다지 특별하게 생각되지 않는 것이 바로 떡볶이의 맛이다. 차라리 떡볶이의 떡보다 사리로 들어가 있는 어묵, 소시지, 라면 등이 더 맛있게 여겨질 정도다.




나는 왜 떡볶이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단순히 떡볶이가 나의 취향에 맞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나는 사실 우리 언니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다.


나보다 3살 위인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자타공인 떡볶이 마니아였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어느 정도 매운 것을 먹을 수 있게 되자 언니는 나를 떡볶이집에 데려가기 시작했다. 당시에 언니가 좋아했던 떡볶이 집은 <응답하라 1988>에도 나왔던 브라질 떡볶이집으로, 집에서 부터 어린아이 걸음으로 20분은 족히 걸어야 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어른이 된 후 그 길을 걸어본 적이 없어 확인은 불가능하나,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내려야 했기 때문에 떡볶이 집에 가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브라질 떡볶이집에서는 밀떡으로 만든 떡볶이에 삶은 계란과 야끼만두 등을 추가하여 먹을 수 있었는데, 항상 언니는 떡볶이 2인분에 삶은 계란 하나를 추가해서 같이 먹자고 했다. 한 번쯤은 1인분용 작은 접시에 내가 먹고 싶은 사리만 추가해서 혼자서 먹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언니에게 따로 먹자는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 나는 그 집 떡볶이를 먹는 것 그 자체보다, 언니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떡볶이집까지 가는 그 길과 떡볶이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언니의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나에게는 떡볶이는 큰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떡볶이를 다 먹는 그 순간까지 언니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위의 에피소드만 보면 언니와의 귀여운 추억 때문에 떡볶이를 좋아하게 되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의문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떡볶이 마니아 어린이가 떡볶이 마니아 끝판왕 어른으로 자라면서 생겨났다. 언니가 갓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고, 내가 대학교 졸업반 즈음이 되었을 때 언니와 나는 내가 다니던 대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저녁식사를 밖에서 각자 먹고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렇지 않은 날에는 음식을 포장해와 자취방에서 함께 먹곤 했다. 고맙게도 언니는 대학생 동생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퇴근길에 언니 돈으로 음식을 사 왔었는데, 문제는 그 음식이 대부분 떡볶이 었다는 것이다. 아, 물론 같은 떡볶이집에서만 사 온 것은 아니고, 다양한 떡볶이 맛집을 돌아가며 떡볶이를 사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떡볶이 막입인 내게는 다 똑같은 떡볶이일 뿐이었다. 허나 나는 얻어먹는 입장인지라 메뉴 타박을 할 수 없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나흘에 한 번씩은 꼭 떡볶이를 먹어야만 했다. 조금 과장해서 내가 평생 먹을 떡볶이를 그 집에서 언니와 자취하던 2년 동안 다 먹은 것 같을 정도이니 더 말이 필요 없지 않을까.


대학생을 지나 회사원이 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이후에도 나는 주기적으로 언니를 통해 떡볶이를 공급받았다. 결혼 후에도 서로 가까운 곳에서 살아 식사를 함께 할 때가 많았는데, 떡볶이 마니아인 언니답게 종종 식사 메뉴를 떡볶이로 정한 터였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떡볶이를 쭉 싫어할 수 있었던 것은 언니와 그만큼 가까이 지내며 우애를 잘 다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만약 언니와 사이가 멀어져 떡볶이를 주기적으로 먹을 기회가 없었다면 아마도 나 스스로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이 문득 찾아왔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내가 떡볶이를 미처 떠올리기 전 언니가 나를 불러 떡볶이를 함께 먹어주고 있기 때문에 떡볶이가 계속 싫고 지겹게 느껴졌었던 게 아닐까. 떡볶이에 대한 나의 애정도는 언니와 나의 우애 지수를 측정하는 바로미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19의 유행으로 하늘길이 막힌 지금, 언니를 만나지 못한 지도 벌써 3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직도 떡볶이가 싫다. 왜냐하면 우리 집에 언니의 뒤를 잇는 떡볶이 마니아 새싹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10살짜리 우리 집 꼬마는 한국에 가면 어렸을 때 다니던 동네 떡볶이집의 떡볶이가 제일 먹고 싶다고 한다. 이 나라에서는 떡볶이를 쉽게 사 먹을 수 없으니, 30년 이상 떡볶이라고는 만들어본 적이 없는 내가 아이를 위해 떡볶이를 만들어 같이 먹고 있다. 떡볶이를 얻어먹기만 하던 떡볶이 마니아 동생의 삶이, 떡볶이를 직접 만들어 내는 떡볶이 마니아 엄마의 삶으로 업그레이드된 거다. 한국으로 귀국하면 제일 먼저 두 떡볶이 마니아를 맺어줘야겠다. 그럼 떡볶이 마니아들의 그늘에서 나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떡볶이 마니아 두 사람의 쿵짝이 잘 맞아 나를 더 이상 찾지 않는다면, 그래서 언젠가 나 스스로 떡볶이가 먹고 싶어지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비로소 나도 떡볶이의 매력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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