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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야, 먹고 싶을 때 맘껏 먹어라 "

by 강하늘

“당신 좀 천천히 먹을 수 없어요? 며칠 굶은 사람처럼 그렇게 허겁지겁 먹다니.”

비빔밥 더미를 수저 한가득 담아서 입으로 연신 가져가며 우물거리는 남편은 대답 대신 한번 씨익 하고 미소만 짓고는 계속 숟가락질을 한다. 마치 이 순간을 놓치면 앞에 놓인 맛있는 밥을 도둑맞기라도 할 것처럼 밥 먹기에 온 힘을 다한다. 마침내 비빔밥 한 사발을 깨끗이 비운 남편은 드디어 한마디를 한다.

“음, 오늘 저녁 메뉴는 뭐야?”

우와! 마치 사춘기 식욕 왕성한 사내아이의 일성이다. 점심밥을 먹는 와중에 저녁 메뉴를 궁금해한다.

“당신은 그렇게 밥이 맛있어요?

“응, 난 밥 먹기 위해 사는 것 같아. 밥 먹는 시간이 제일 좋아.”

이를 드러내며 웃기까지 하는 남편은 9살 아이다.

“아니, 좀 더 근사하고 위대하고 세련된 삶의 목적과 이유를 대야지. 삶의 목적이 밥 먹는 거라니, 당신 좀 그렇지 않아요?”

어이없어하는 내 말에도 아랑곳없다.

“아, 맛있다. 꿀맛이야.”로 남편의 점심 식사는 마무리된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된장찌개다. 거기다가 좀 신경을 써서 갈치조림이나 조기구이 정도를 상에 올리면 세상 다 가진 것처럼 한껏 행복해한다.

거창한 음식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된장찌개를 365일 식탁에 올려도 별말 없이 너무 맛있다는 사람. 미식가라거나 밥 먹는 것, 요리 등의 세계에 뭐 딱히 경도된 사람도 아닌데 그냥 맛있게 먹는다. 모든 밥을.

밥이든 뭐든 먹는 것에, 한 마디로 식욕이라는 것이 늘 그저 그런 나에게 그의 모습은 일단 신기하다.

외국 여행을 가서도 주로 아침 식사로 나오는 빵과 햄, 치즈 따위를 너무 잘 먹는다.

된장찌개 마니아이니 식성이 토속적일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나라마다 빵 맛이 어떻다는 둥 하며 각종 빵과 햄 치즈 등을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참 맛나게 먹는다.


80을 훌쩍 넘긴 양가의 두 어른,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드린다. 최근에 두 분 모두의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여기저기가 아프다는 것과 또 한 가지는 입맛이 없다는 것이다.


평생직장 생활한다는 핑계로 30여 년을 양가에서 김치며 반찬이며 온갖 먹거리를 날라다 먹었다. 두 분 다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냥 맨밥에 한 가지만 있어도 꿀맛인 김치는 기본이고 연근조림, 우엉조림, 멸치조림, 무말랭이 무침, 아, 배를 듬뿍 갈아 넣어 감칠맛 끝장인 시어머니의 백김치는 호텔 주방장 저리 가라 할 손맛이다.

명절에 기차 안에서 탄수화물 덩어리 주전부리하며 긴 시간 보내고 부모님 집에 다다르면 나는 맨 먼저 시어머니가 담가놓은 뽀야면서도 맑은 물김치 한 사발을 정신없이 들이킨다. 그 맛은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렵다. 가슴이 뻥 뚫리고 몸속의 쌓였던 노폐물이 시원스레 씻겨 내려가는 그런 맛이다.


그 화려하고 진국인 손맛을 자랑하며 자식들에게, 식구들에게 입맛을 살려주어 힘을 주시던 두 분이 이제 입맛이 없으시단다. 기운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없으니 음식을 만드는 일도 당연히 줄었다. 자식들이 만들거나 사서 보내는 반찬 따위도 상해서 버리는 게 다반사다.

아무것도 먹고 싶은 게 없고 먹는 게 없으니 살이 빠지고 기운이 다하고... 저러다 돌아가시는 걸까?


무엇도 먹고 싶지 않다는, 입맛을 전혀 못 느낀다는 상태는 어떤 것일까? 상상이 잘 안 된다. 난 여전히 시원한 동치미나 물김치에 가슴이 뻥 뚫리고 잘 익은 망고 한 조각에 눈 감으며 행복해한다. 더운 오후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잔에도 눈물이 나는데.

아, 한 번 잠깐이었지만 기억이 난다. 몇 년 전 코로나 걸렸을 때 보름 정도 입맛을 완전히 잃었던 기억.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다. 기운 회복하라고 식구들이 사다 준 전복죽, 삼계탕. 살코기와 비계가 적당히 어우러진 수육, 아귀찜, 아삭하게 잘 익은 파김치. 평소 좋아하던 것들이었지만 정말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이럴 수가...


말랑한 닭다리 살을 한 입 베어 물었지만 맛도 냄새도 완전히 거세된 그냥 물렁한 한 덩어리 물질이 입속에 들어왔다는 이물감 외에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런 상태가 일주일 이상 지속되었고 입맛이 없으니 살맛이 없다는 속된 표현이 실감이 났던 기억.

아, 입맛이 없다는 것은 그런 것인가? 그런 상태의 연속이란 말이구나.



노화.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중이라고 나이 듦을 근사하게 표현한 노래 가사도 있지만 노화는, 생물학적인 노화는 그냥 우울하고 슬프다고 말하는 게 정직한 표현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늙어감은 우리의 몸 각 기관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많은 기쁨과 행복감을 가져간다,

화려하고 소박하고 달큼하고 시원하고 아삭하고 구수하고 쌉쌀하고... 얼마나 많은가, 세상에 존재하는 맛의 종류가. 그것들이 주는 기쁨과 행복감이 이제 가능하지 않다는 것.

마음 한구석의 잔잔한 울음을 끌어올리는 문장 하나 때문에 밤새우던 기억. 그 아름다운 문장들을 읽어내는 맑은 내 눈.

마음 가는 곳이면 언제고 어디 로고 나를 데려다주는 튼튼한 내 두 다리.

운전대에 두 손을 얹은 채 음악을 듣고 옆 좌석의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길 진입 안내를 놓치지 않는 내 멀티태스킹 능력.

그런 모든 것들이 서서히 스러져 간다는 것이지 않은가, 노화란.

아, 슬프다.

“얘야, 먹고 싶을 때 맘껏 먹어라.”

입맛 돌게 하는 약도 요즘 처방해 준다, 하니 병원에서 그거라도 처방받아 드세요,라는 내 말에 답하는 시어머니의 한 마디다.


밥 먹는 데 진심이고 온 힘을 다하는 남편이 밥 잘 먹는 아기처럼 느껴진다.

그래. 먹고 싶은 게 있다는 것, 입맛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건강하게 먹고 행복하게 웃는 그가 문득 고맙다. 맛있게 먹는 남편을 보면 사실 그 앞에서 별 입맛이 없던 나도 식욕이 생기곤 하니 말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

만날 수 있을 때 만나고

다리 성할 때 다니고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베풀 수 있을 때 베풀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고

봉사할 수 있을 때 봉사하고

볼 수 있을 때 아름 아름다운 것 많이 보고

말할 수 있을 때 좋은 말 많이 하고

들을 수 있을 때 좋은 말 많이 듣고.....


아침에 일어나니 지인이 보내준 영상 편지가 핸드폰에 떴다.

그렇구나, 아직은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구나.

먹을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베풀 수 있고...

창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무탈하게 잘 잤느냐고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다음 주 이주민 학교 식사 봉사가 예정되어 있다. 반나절 동안 70여 인분의 점심 밥상을 준비하는 일이다. 아직은 두 다리를 지탱하여 설거지도 할 수 있고 시원찮은 어깨지만 감자와 양파를 써는 것쯤은 거뜬히 할 수 있다. 완성된 음식을 넓은 접시에 퍼 담아 플레이팅 할 때의 기쁨, 수업 마치고 점심을 먹으려고 줄 서 있는 이주민 여성과 아이들을 바라볼 때의 행복감을 그 무엇으로 바꿀까?

최선을 다해 밥을 먹는 남편의 식욕은 얼마나 탐스럽고 사랑스러운 욕망인가?

오늘 저녁엔 삼겹살을 굽고 텃밭에서 따온 상추를 식탁에 올려야겠다.

맛있겠다, 하며 식탁에 앉을 남편의 아이 같은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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