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상추의 생존 방식

by 강하늘


비 그치고 오랜만에 찾은 텃밭. 역시나 싱싱한 초록빛으로 나를 반겨주는 것들.

봄에 심은 가냘프고 여린 상추 모종은 야무지게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온화한 햇빛과 흙 속에 스며든 단물을 빨아올리며 무탈하게 쑥쑥 자라주었다.


그렇게 자란 상추는 봄부터 여름까지 우리 집 식탁을 풍성하게 장식해 주었다. 텃밭을 그대로 옮겨 온 듯 초록빛 가득한 식탁은 별다른 수고 없이도 더운 여름날 사라진 입맛을 되찾아 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건 며칠 만에 한 번 가볼 때마다 발견하는 상추의 성장이었다.

상추를 뜯는다. 새로 돋아 올라온 어린잎 두어 개만 남기고 거의 앙상할 정도로 잎을 뜯어낸다. 그렇게 30여 포기의 상추의 이파리를 뜯으면 가지고 간 커다란 비닐 가방 두 개가 가득 찬다. 아파트 이웃들에게 상추를 나누며 인심도 쓴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음번에 가서 보면 어김없이 지난번 이파리 따기 전 그 모습으로 똑같이, 초록 잎이 가득한 상추 포기가 나를 맞이한다. 몸 줄기 대를 중심으로 빙 둘러 이파리들을 가지런히 겹쳐 세워 우아하게 그 자리에 앉아있다.

상추의 재생력은 늘 예상을 넘어선다. 벗겨내고 다 뜯어가도 몇 번이 고를 똑같은 모습으로, 온전한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는 생명의 신비 그 자체다.



하리하라라는 필명을 지닌 과학 칼럼니스트의 글을 즐겨 읽는다.

그녀의 글을 읽고 나서 상추의 생명력에 대하여 이해하게 되었다.

*동물의 몸은 신체가 저마다 다른 기능을 하는 분화된 부품들이 모여 만들어진 복합체인데 반해 식물은 동일한 기본적인 모듈 여러 개가 모여 이루어진 집합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동일하고 기본적인 모듈’이라는 말에 눈길이 갔다.

*모듈화 된 몸이 지닌 원시성은 식물로 하여금 동물의 끊임없는 포식활동에도 구애받지 않고 사라지고 부서진 몸을 복구하며 살아남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식물의 재생력은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독립영양생물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물과 대기 중의 햇빛, 이산화탄소만 있으면 기본 에너지인 포도당을 만들어내는 능력, 그게 독립영양생물의 정체성이라는.

*손상이 되면 다른 어떠한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고도로 분화된 동물의 몸은 한 번의 치명상에도 취약하나 식물은 단순한 구조이기에 움직일 수 없고 반응할 순 없어도 어쨌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몸 구조와 생존방식의 단순성.

아하, 그렇게 상추는, 식물은 끊임없이 재생되고 복원되는 거구나.

거창하고 복잡하고 유능하지 않아도 그 단순함의 힘으로 꿋꿋하게 생존하고 있는 거구나.

전혀 연약한 풀 따위가 아니었구나.

세상은, 모든 게 너무 빠르고 복잡하다. GTX 아니 KTX 속도다.

여자 친구와 나눈 카톡 대화를 챗 GPT에게 보여주고 여자 친구가 현재 어떤 마음인지 알려달라고 한다. 챗 GPT가 대답한다. 여자 친구는 남자 친구에 대한 마음이 예전과 같지 않은데 딱히 헤어질 수는 없어서 망설이는... 그런 상태라고 대답한다.

남자는 챗 GPT에게 다시 요청한다. 그 여자 친구에게 보낼 편지를 써 달라고.

기사를 보는 순간 나는 경악했다.


보고서 PPT 자료를 5분 만에 만들었다는 조카의 이야기는 이제 너무 평범하다. 그 어떤 질문을 해도 몇 초 만에 청산유수로 완성된 답을 내놓는다는 것도.

과연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만사 해결사임에 틀림이 없지 않은가?

연애 문제도 해결해 준다. 인간관계의 그 수많은 갈등도 해결해 줄 수 있나 보다.

의사소통이 어떻고 감수성이 어떻고 공감 능력이 어떻고.. 하는 따위의 문제들로 더 이상 골치 아프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구나.

아무리 경고를 하고 우려와 불안감을 내비쳐도 과학의 욕망은 한계치 없는 인공지능을 목표로 달려갈 것이다. AI 분야를 선점하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영영 글로벌 생태계에서 밀려날 것이라는 불안감이 가득하다.


며칠 전 새로 임명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1분 남짓한 국회 취임 연설에서 AI를 9번 언급했다.

기술 패권, AI 강국만이 우리가 살길이라고.

한마디로 이제 나라의 명운이 AI에 달려있나 보다. 반박할 수 없다. 이렇게 굴러가기 시작한 바퀴의 속도를 늦출 수 없다. 우리의 생존이 달려있는데 어쩔 수 없다.

경로를 이탈할 수 없다.

경로를 이탈할 수 없다고 쓰고 보니 슬프다.

무엇을 위한 달리기인가라는 답 없는 질문을 해본다.


몸을 발가벗기듯이 이파리가 다 뜯기어진 상추의 줄기 대를 바라본다.

1주일 후에 다시 오면 언제 그런 모습이었냐는 듯이 더욱 싱싱한 이파리들로 몸을 한껏 부풀리고 오롯이 나를 맞아줄 것이다.

나는 또 풍성한 상추 이파리를 남김없이 뜯을 것이다.

끊임없이 몸을 내어주고도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생색낼 줄도 모른다.

그뿐인가.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알아서 씩씩하게 챙긴다.

자연... 그 처음을 상상해 본다.

정제되지 않은 그 원시성, 그 단순성이 문득 그립다.

우린 너무 멀리 와 있는 건 아닐까?

매해 여름이면 경신되는 더위.

너무 많이 부수고 긁어대고 쌓아놓고 치대고 있는 우리, 지금, 이 땅.

너무 덥고 너무 복잡하다.


*** 2025. 7. 24 경향신문 <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오피니언 칼럼 참조

keyword
작가의 이전글 " 얘야, 먹고 싶을 때 맘껏 먹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