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여행으로 동유럽을 갔다. 낯선 일행들과 10여 일을 동행하며 밥도 같이 먹고 하는 일. 역시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패키지여행의 단점 중의 하나이다. 낯선 이들과의 동행. 그러나 뭐, 어때, 이렇게 우연히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하는 방기에 가까운 여유가 언젠가부터 나에게도 생겼고 그런 어색한 상황에 필요한 스몰토크에도 익숙해졌다.
여행 초반 일정이 지나갈 때 즈음에는 이곳저곳 다니는 것보다 일행 중 다양한 사람들이 의외로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점심식사를 하게 된 일행 중의 한 여자. 나이가 서로 비슷하다 보니 건강이니 운동이니 하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주제가 되었고 드디어 서로의 공통 지점인 탁구에 이르렀다.
내가 3년째 하고 있는 탁구. 고백하기 정말 부끄럽지만 여전히 초보 수준인 것만 같은 내 탁구 실력. 나랑 똑같은 시기에 시작한 사람의 실력은 일취월장인 듯한데 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듯한 탁구. 몸치, 운동 치인 나를 매일 확인하며 이거 계속해야 돼? 말아야 돼?라는 질문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하고 있는 나.
이런 내 하소연 섞인 고백을 듣고 있던 내 앞에 앉은 그녀는 25년째 탁구를 치고 있는 고수 중의 고수였다.
그날 이후 내가 좀 안타까워 보였는지 그녀는 매일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와중에 잠깐씩 자유시간에 항상 내 옆에 와서 탁구 자세를 코칭해 주었다. 시범을 보여주고 내가 따라 하고 수정하고...
가장 기본적인 포핸드(화) 자세에 자신이 없어서 고민이던 나는 그녀의 코칭에 엄청 집중했다.
여행 와서 웬 탁구 레슨이냐고 사람들은 웃었지만, 저 이가 귀찮아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녀의 코칭이 뭔가 나의 약점, 내가 가장 고민하던 부분을 잘 짚어주는 느낌이 들어 난 더없이 진지했다.
‘자세를 숙이고 무게중심을 살짝 앞으로, 하체에 중심을 잡고 측면으로 허리와 엉덩이를 가볍게 틀며 안정된 앞 공간을 확보하고, 2시 방향의 각도에서 일정한 타점을 겨냥하여 공을 잡아채듯이, 물살을 가르듯 라켓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올려붙인다.’
심지어 나의 허리와 어깨를 잡고 천천히 라켓의 진행 각도를 익히는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진행했다.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 공항 대합실에서 그녀는 뭔가 가방에서 부스럭거리더니 종이 두어 장을 꺼냈다. 여행사에서 나누어준 여행 관련 안내 사항 등 메모가 적혀있는, 빈 여백이 듬성듬성 나 있는 용지였다.
그녀가 건네준 용지는 빈 공간이 빼곡하게 메모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중간중간 별표로 중요표시도 되어있고. 10여 일 동안 내게 설명해 주었던 탁구에 관한 것이었다. 몸과 말로 보여주었던 그 많은 내용을 빼곡하게 손글씨로.
놀라웠다. 이런 건 상상도 못 했고 받아보지도 못했고 내가 내밀어 본 적도 없던 것이었기에.
“이걸 언제 다 쓰셨어요?”
“이동하는 버스 안이나, 자유시간에 벤치에 앉아서 썼어요.”
“아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뭘요. 저도 탁구 초보 시절에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뭐라도 해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아유, 고마워할 거 없어요. 그냥 내가 그 시절 다 겪어봐서 마음고생 좀 덜 하라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공유하는 것뿐이에요.”
“요대로만이라도 매일 스윙 연습을 해보세요. 기본 스윙 자세만 잡히면 많이 좋아질 거예요.”
이건 뭐지?
아는 사람도 아니고, 언제 다시 볼 사람도 아닌데. 뭔가를 주고받을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닌데.
이런 걸 ‘선의’라고 하는 걸까?
그냥 단순한 선의. 선한 의지, 선한 마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어주는 마음 같은 거. 그런 걸 선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세상에 공짜 없다’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금언이 힘을 잃는 순간이 있다.
저 사람이 안타깝다. 저 이의 마음이 뭔지 알 것 같다. 그런데 나에게 지금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걸 주자.
그렇게 출발한 마음은 온전히 줄 수 있음에, 줄 수 있어 기쁠 뿐 대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기쁨이 대가라면 얼마나 근사한 거래인가?
선의란 그런 거 아닐까?
여행 중간 즈음 어느 하루, 아침 시간에 좀 여유가 생겨서 숙소 주변을 산책했다.
동유럽 블타바 강의 지류일 듯싶은 소박한 강이 흐르는 마을이었다. 유럽 특유의 붉은 벽돌색 낮은 지붕들, 마을에 안개처럼 스며들기 시작하는 계절의 빛깔, 이슬을 모아놓은 듯 반짝이는 강물, 그리고 일출. 잠들어있는 온 세상을 깨우듯 저 너머 동편 하늘에서 막 기지개 켜며 올라오는 그 붉은 에너지 덩어리.
그 어떤 명승 유적지 앞에 섰을 때보다 더한 충만감이 밀려왔다.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아! 아름답다.
종교, 인종 등 갈등과 전쟁으로 얼룩진 발칸이라는 땅을 문득 떠올려 봤다. 이렇게 아름다운 땅에서 사람들은 왜 그렇게 싸운 걸까?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 땅이기에 서로 빼앗으려고 그렇게 싸운 건지도 모른다.
고달팠던 역사와는 아랑곳없이 물과 나무, 하늘, 태양이 빚어내는 빛깔은 한순간 숨을 멈추게 할 만큼 고요하고도 강렬했다.
그렇게 새벽 산책에 취해 걷다가 사람들을 만났다. 낯선 이국 사람들.
자전거 타고 학교 가는, 출근하는, 지팡이 짚고 산책하는, 조깅하는.
놀라웠던 건 그들 모두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어김없이 미소를 지었다는 것이다.
더없이 크고 환하고 푸근한 미소.
어? 언제 봤다고? 한국인 특유의 본능적인 의심과 경계심이 안에서 막 올라오려다가 문득 멈추었다.
그 환한 미소들에 내 경계심과 의심은 스르르 녹아내렸다.
그 무해함에, 그 안전함에, 그 다정함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는 말이 떠올랐다.
나를 증명할 필요도, 인정받고자 애쓸 필요도, 손해를 덜 보려고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는 관계, 그런 관계를 상상해 본다.
그런 관계라면 우리는 저런 미소를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낯섦이 주는 해방감과 무구한 친밀감은 그렇게 내 안의 탁한 기운을 걷어내고 산소 같은 걸로 채워주었다.
가득 찬 산소의 힘으로 내가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온기 가득한 미소를 보내고 싶다는 소망이 문득 마음을 달뜨게 한다.
‘모든 여행은 성공적이다’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이번 여행도 성공적이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느끼게 해 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