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우울증 치료일기 <16>
괜찮아?
요즘 가장 듣고 싶은 말이라고 한다면 '괜찮아?' 이 한마디를 꼽을 수 있다.
큰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있고 나는 언제나처럼 야근을 운명의 수레바퀴 삼아 지내고 있다. 릴리즈는 다가오고 프로젝트 마감일 또한 다가온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팀에 내가 챙겨줘야 할 사람들은 늘어났고 늘어나는 사이 그들을 챙기는 것이 내 일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을 할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끝을 향해 움직인다. 시간도, 프로젝트도 그리고 내 컨디션도 이제는 'Release'라는 말처럼 놓아줄 일만 잔뜩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좋은 인사평가, 상사의 신임, 기대되는 프로젝트 성과. 내게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수식어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늘어나는 수식어들만큼 내 불안도 늘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사의 신임과 좋은 인사평가, 기대되는 프로젝트 성과로부터 얻어진 부담이 원인은 아니었다. 내가 느끼는 불안은 좀 더 근본적인 내 존재에 대한 불안이었다. 기대하던 상사가 나한테 실망했다고 해서 내 존재가 흔들리는 것이 아닌 더 근본적인 존재의의. 내 존재의의는 오롯이 내가 스스로 정의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불안이 늘어나면서부터 불규칙적으로 쓰기 시작한 일기에 대체로 내 고민은 어디서 시작되었고 내 생각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활자로 가득 찼다. 그 생각과 고민을 깊게 파고들 때마다 나타나는 것은 결국 내가 스스로에게 정의 내리지 못한 스스로의 모습에 의한 것이었다.
얼마 안 되는 몇 달간의 일기에 남겨진 나는 물 대신 불안으로 가득 찬 인간처럼 보였다. 내 존재의의를 밖에서 찾으려는 흔적이 가득했고, 남이 나를 정의해 주고 내가 하는 행동으로 인해 남이 나에게 어떤 프레임을 쓰고 보게 되길 바랐다. 공통점은 하나였다. '타인이 우러러보는 사람'. 그 모습이 아닌 나는 그러지 못해서 끙끙댔으며 그 외의 이미지가 나한테 씌워지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했다. 스스로가 만든 어떤 모습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동기를 만들기도 하겠지만 나처럼 불안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ADHD를 진단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진행했던 것이 불안증을 완화시키는 것인 만큼, 불안이 높을수록 나에게 남는 것은 제어능력의 상실이다. 지금도 깜빡하고 하루라도 콘서타를 거르면 그날 업무는 진행할 수 없이 졸다오기 일쑤며 원만하지 않은 업무는 내가 바라는 내 모습과도 동떨어져 결과적으로 더 불안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가만히 숨만 쉬어도 불안이 올라가기 마련인데 스스로가 불안에 머물고자 한다면 결국 나는 나를 제어한다는 것 자체가 평생의 과제처럼 남는 것은 아닌지. 그래도 봄에 조금은 나아졌다는 검사결과를 전해주시던 선생님의 말씀에 약을 끊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것이 사실은 사치였던 것은 아닐지.
단순 불안에 의한 집중력 저하만의 문제가 아니라 계속해서 잠에 드는 것이 힘들어지고, 홧김에 하지 않아야 할 말을 뱉고 후회하고 사과하고 예민한 사람처럼 남아버리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