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2때인가, 3학년때인가 부모님이 이혼 하셨다. 기억이 또렷하지 않음은 ~ 굳이 그때를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늘 뿌옇고 흐리멍텅함만이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4살 어린 남동생은 지금은 나보다 훨씬 크고 덩치도 큰 아저씨로 컸고 지금은 이쁜 딸 2명의 아빠다. 우린 열악한 가정 환경이었음에도 나름 , 꽤 훌륭하게 자란 것 같다.
이번년도 부터 회사 복지가 좋아져서 예전에는 배우자만 허용되던 건강검진이 엄마 아빠도 가능하게 바뀌었다. 그렇잖아도 매번 주사맞는게 싫었던 신랑은 옳다구나 하며 그 자리를 장모에게 양보했다. 혼자 사는 (아니 홀로 사는줄 알았던)친정 엄마와 검진일을 맞춰 예약을 했다.
그 예약은 2달이나 전에 한 건데 난 보지 않아도 엄마가 그 2달 동안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린걸 안다. 아들 며느리 집에서 처음 주무시게 된 날이기도 하고, 정말 몇년만에 아들,딸,며느리, 손주들과 함께 하는 귀한 시간이 될테니 아마도 곱씹고 또 곱씹으며 기다렸으리라...
엄마의 차 트렁크에선 쌀 20kg 4포대, 김치, 과일 상자, 소불고기, 갖가지 반찬, 계란, 버섯, 꿀에 잰 마늘, 매실, 참기름 , 그리고 나와 올캐에게는 사이즈가 커서 입을 수 없는 속옷이며 반팔 티등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아! 그리고 금목걸이랑 4천만정도라는 콩만한 금이며, 반지까지도...
벼르고 별러서 준비했을 그것들을 보니 마음이 시큰했다. 고생하셨겠다는 인사도 잘 못한 나. 아니 되려 퉁명스럽게 뭘 이런 걸 싸 오시냐며 타박 아닌 타박을 하며. 엄마와 난
후다닥 짐을 나누어 동생 걸 따로 챙겼고 동생 집으로 갔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저녁상을 못차리게 한 건 시누이인 내 역활이겠니 하며 집앞 식당으로 갔다. 간단히 있는 밥에다 소불고기 재어온거랑 반찬 꺼내 먹자는 엄마의 말에 내가 절대 아니된다고, 며느리 부담된다고 입도 뻥끗 못하게 시켰다.
그리고 그나마 정갈하고 깨끗한 곰탕집에서 우린 즐겁게 만찬을 즐겼다? 후식의 아쉬움은 근처 커피숍에서 테이크 아웃하여 집으로 갔고 집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함께 하지 못했던 끊어진 30여년은 빼고 드문드문 기억나는 뭐 그런 이야기들로....
건강검진 당일 아침~
바리바리 쌓온 음식중에 흑마늘.
아들 출근 하는 모습은 처음 볼텐데 ~
그 아들에게 주고 싶어 부산을 떨었겠지..
아들이 싫다하고, 며느리가 싫다해서 숟갈에 담겨 있던 그 마늘 한쪽 아까워 입 톡 털어 넣으셨단다....
엄마를 모시러 가며 전화했더니
아이처럼 '큰일났다 마늘 하나를 먹었어" 라고
어쩔 줄 몰라 하신다. 괸찮겠지 하며 안심 시키는 말은 했으나 그 순간의 엄마의 모습이 연상된다...
엄마의 건강검진은 위 내시경은 못하고, 다른것은 그냥 진행하는 걸로해서 마무리되었다. 우린 병원 에서 주는 김밥집가서 김밥이랑 우동이랑 포장해서 집에 와서 밥을 먹었다.
집 밥....
할 줄 아는게 없어서 엄마가 쌓온 반찬 꺼내놓고 우동 국물에 김밥에 거기에 밥통속 식은 밥...
지금 생각해보니 밥을 먹는 동안 엄마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엄마랑 나는 빈 속을 채우기 위해 밥을 맛나게 먹었다.
밍숭밍숭한 오래 전 내린 맛없는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엄마는 댁으로 가셨다.
아마...2시간 걸리는 거리니 지금도 운전 중이시지 않을까....
엄마는 이제.혼자가 아니라고 하셨다. 마음씨 좋은 아저씨를 만나셨다고....아빠랑은 다르게 착한 분이라고 언제든 인사하면 좋겠다고... 동생은 이제 겨우 마음이 풀린듯한데 또 마음 닫히지 않도록 얘기 잘 해달라고...
그럴 수도 있지...엄마 인생인데 뭐 동생이 뭐라 할 수 있어? 라고 무심히 얘기했다. 별일 아니라고...그냥 사기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이제 행복하게 사세요가 아니라 사기 당하지 않게 조심 하라니...........)
아빠가 모셔왔던 많은 여성분들이 생각났다.
이름도 모르는 그분들과 서로 어색한 계모와 딸 (?)이었다.그 중에 한 계모의 딸들과 식사한 기억도 있는데, 성인이 되어서 만났는데도 그 얼굴들이 기억이 안난다. 기억이란게 참 요상하다.....얼굴도 그렇고 그 분들이몇명이었는지 이제 세기도 어렵다.
그리고 현재 마지막 분은 호적에 까지 올라와 있다.
그 어색한 가족관계가 또 하나 생길 수 있겠다 생각하니 내나이 마흔 중반이 넘었는데도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