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 이야기네요.
오늘 배추를 잔뜩 실은 화물 트럭을 보고 생각이 났더랍니다.
준호 형님이라고 고등학교 선배님이 계신데, 공부를 곧잘 하셨는데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일찌감치 장사를 시작하신 파이팅 넘치는 분이 계십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중고 포터(화물차)를 장만해서 철마다 필요한 과일이나 야채를 팔러 다니셨죠.
이맘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느 날 저녁 술 약속이 있어 내가 먼저 술집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선배님이 들어오시면서 욕을 한바탕 하시는 겁니다.
“아… XX… 오늘 장사 헛했다… XX, 경찰 XX들…”
사연인즉슨, 형님이 배추를 가득 싣고 길에서 그 있잖아요, 방송하는 거...
“배추가 왔어요~ 싱싱한 무공해 배추가 왔어요~” 하며 천천히 운전하고 있었는데, 운전 부주의로 그만 신호를 어기고 만 겁니다.
그것도 경찰차가 바로 뒤에 있는 것도 모르고요.
연신 운전하며 “배추가 왔어요~ 배추가 왔어요~” 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사이렌이 울리면서 경찰차에서 방송이 나오더랍니다.
“배추 차, 배추 차~ 오른쪽에 차 대세요! 차 대세요! 배추 차, 차 오른쪽에 대세요!”
그 시절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도로에서 운전하다가 사소한 건으로 위반해서 걸리면 경찰관에게 5천 원(급행료) 정도 쥐어주면 암묵적인 합의로 그냥 보내주던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더랍니다.
물론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죠.
그게 딱히 정해진 룰은 없으나, 보통 도로 위반은 5천 원, 사안에 따라 만 원도 했지만, 여튼 일반 도로는 거의 신호 위반이면 5천 원이면 눈감아 주던 시절이었습니다. 대신 고속도로는 무조건 만 원 이상이었죠.
저도 고속도로에서 만 원을 몇 번 건넨 기억이 나네요. ㅎㅎㅎ
얘기가 딴 데로 샜네요.
암튼 그 경찰차가 계속 옆에 붙어서 따라오며,
“배추 차, 배추 차~ 오른쪽에 차 대세요! 차 대세요! 배추 차, 차 오른쪽에 대세요!”
형님은 차를 조심히 오른편에 대고는 습관처럼 5천 원권을 찾는데 그날따라 5천 원권이 없더랍니다. 천 원권도 없고요.
잔돈 준비를 안 한 거죠. 장사꾼이 말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만원을 경찰관에게 건네며
“수고하십니다. 오천 원 거슬러 주세요.” 했다고 합니다.
현금 만원을 받은 경찰관은 “운전 조심하십쇼.” 하며 절도 있게 거수경례까지 하고는 경찰차로 돌아가 그냥 차를 앞질러 가더랍니다.
형님은 순간 그 귀중한 5천 원 생각에 시동을 걸고 경찰차를 따라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이크를 들고는 이랬답니다.
“앞에 경찰차~ 경찰차~ 오른쪽에 차 대세요! 경찰차, 차 오른쪽에 대세요!”
그래도 경찰차는 못 들은 척하고 그냥 무시하며 가더랍니다.
형님도 오기가 생겨서 마이크를 들고 계속 따라가며,
“앞에 경찰차~ 차 오른쪽에 대시라구요. 앞에 경찰차, 차 대세요!”
이러는데도 경찰차는 무시하며 계속 주행을 하더랍니다.
듣기 싫었는지 열린 창문까지 닫으면서요.
형님은 ‘오천 원이면 배추를 몇 포기 팔아야 남는데...’ 하는 마음으로 계속 쫓아갔습니다. 마이크 멘트까지 바꿔서요.
“앞에 경찰차~ 오천 원 주세요! 경찰차, 오천 원 주시라구요! 차 오른쪽에 대고 오천 원 주세요!”
술집에서 그 얘기를 듣는데, 소주를 마시다가 너무 웃겨서
그만 형님 얼굴에 소주를 뿜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경찰차는 속도를 내며 신호도 무시하고 지나갔고, 형님은 차마 또 신호를 무시하기는 싫어서 정지선 앞에 차를 세우고 말았답니다.
결국 경찰차를 놓친 거죠.
그날 형님이 너무 슬퍼하시길래, 형님이 화장실 가셨을 때 제가 술값을 내기도 했습니다. 연락이 끊겨서 꽤 오랜 세월 못 뵙고 살았네요.
다음에 고향 군산에 가면 수소문해서 형님을 만나,
그날 그 얘기 안주 삼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습니다.
아직도 그 뻗친 머리 여전하실려나... ㅎㅎㅎ
안부 한 자락 듣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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