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허리 디스크 환자이다.
정확히 말하면 추간판 탈출증 환자로 이미 한차례의 시술을 받았다.
요추 6번, 천추 1번 사이의 추간판이 터져서 신경차단술을 받은 지 7년이 지난지라 나조차도 잊고 있었다.
내가 허리 디스크 문제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란 걸.
며칠 전 거실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찌릿찌릿, 엄청난 강도의 통증이 오른쪽 골반으로 쏟아졌다.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통증을 없애보고자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댔다.
통증이 가라앉고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얼마 뒤 다시 찌릿거린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경험해보지 못했던 통증의 양상에 새로운 병이 찾아온 것인가 걱정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루는 덕분에 진료 시작 전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내 차례는 30번대였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나타나지 않는 통증 때문에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어젯밤에 앉아있을 때 오른쪽 골반에서 엄청 강하게 찌릿찌릿 통증이 올라왔고 지금은 욱신거리는 정도로 골반, 무릎, 발목의 관절에 통증이 잔잔하게 남아있어요.'
머릿속으로 통증에 대한 설명을 정리한 것이 무색하게 오랜만에 만난 의사 선생님은 통증의 위치를 짚어보라고 하더니 바로 진단을 내리셨다.
"왔네, 왔어. 다시 왔어."
"네? 다시 오다니요? 디스크요?"
"우측 좌골신경통이야. 좌가 왼쪽 좌가 아니라 앉을 좌인데 앉아 있을 때 신경 라인을 따라서 통증이 오는 거지. 사진 한 번 찍어보자."
시술 후 허리 엑스레이를 처음 찍어본 것 같다.
사진 속 문제의 디스크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시꺼멓게 공기로 차 있었다.
추간판은 아예 사라지고 이제는 집 나간 추간판 때문에 협착이란다.
"여기랑 여기 비교해 봐. 뼈 사이에 받쳐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앉았을 때 여기가 붙어서 통증이 생기는 거야."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같이 사는 거지 뭐. 못 버틸 정도로 너무 심하게 아프면 이 사진처럼 핀 박는 거고. 일단 오늘은 풀코스로 가자."
레스토랑 풀코스도 아니고 허리 디스크 치료 풀코스를 받는 신세라니.
신경주사, 진통제 링거, 물리치료, 견인치료.
물리치료실의 실장님을 붙여주시는 극진한 대접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글을 쓰겠다고, 책을 읽겠다고 의자에 앉아있으려니 좌골 신경통이 또 쏟아진다.
난 안다, 허리 디스크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통증과 상태를.
움직일 수도, 일어날 수도 없어 엉엉 울며 구급차에 실려갔던 그날의 두려움이 마음을 흔들어댄다.
그날 이후로 난 무엇을 포기했더라.
오랜 시간 앉아서 작업해야 하는 일들을 대부분 거절했다.
그렇게 보고서 작업, 자료 개발, TF팀 등 외부업무와 멀어지며 '유능한 보고서 작성가'라는 정체성을 포기했다.
허리를 다칠 수 있는 과격한 운동과 레저도 도전하지 않게 되었다.
태권도, 아크로바틱, 배구 등 온몸을 움직여 땀 흘리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과거로 남았다.
이번에는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이제 막 글쓰기에 재미를 붙여나가던 중이었는데 저번처럼 허리를 지키기 위해 작가라는 꿈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아니다,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으리라.
무언가를 덜어내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말고 더하는 것으로 문제에 부딪쳐 보자.
그리고 이 과정 역시 나의 글이 될 것이며 연재를 통해 작가로서의 다짐을 담금질하자.
작가로 살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기 위해 허리 디스크와 한 번 동거동락하는 것이다.
발버둥 치다 보면 분명 길이 생길 것이라 믿으며 생존의 몸부림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