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하오천 Aug 23. 2015

예민하면 행복하지 않아

함께할 때는 '서로'를 바라보고, 떨어져 있을 때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와  함께하는 순간의 공기마저 좋고, 떨어져 있을 때의 그리움마저 좋은 것이 사랑이다. 

당신은 그와 함께한 소중한 추억과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비밀, 그 아름다운 흔적들을 정성스레 펼쳐 놓고 시험지를 한 장 만든다. 물론 시험 문제는 모두 당신에 관한 것들이다. 그리고 연인에게 하나씩 문제를 내기 시작한다. 백 점 짜리 답안지를 기대하며. 그래야만 ‘사랑’이라고 굳게 믿으며. 


“그 사람도 날 간절히 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의심녀는 어릴 때부터 연예인이 꿈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교문 앞 분식집 아줌마처럼 생겼다는 말을 듣고는 그 꿈을 바로 접었다. 얼굴로 연예계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어떻게든 연예계에 발을 들이겠다는 의지 하나로 결국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연예 섹션 편집자가 됐다. 9시 출근에 5시 퇴근, 그리고 간헐적인 야근이 삶의 주 내용이었다. 입사 첫 주에는 아침 7시부터 일어나 정성스럽게 화장을 하고 출근했다. 하지만 야근 한번에 머리가 산발이 되고 아이라인이 시커멓게 번져 버리자 그녀는 자기를 그냥 놔 버렸다. 몇 번 그녀와 회사 앞에서 만나 커피를 마신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내 눈앞에는 교문 앞 분식집 아줌마가 나타나곤 했다.


물론 그녀에게도 장점은 있다. 우리 집에 모여 저녁을 먹는 날, 다 먹고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볼 때도 깔끔한 그녀는 혼자만 계속 식탁을 닦으며 텔레비전을 봤다. 책임감도 어찌나 강한지 연예인의 이혼이나 열애 발표 같은 특종이 터졌을 때 사무실에서 가장 먼저 키보드 소리가 나는 건 늘 그녀의 자리였다. 새벽 세 시가 됐든 몇 시가 됐든 간에 말이다. 또한 두루뭉술한 성격의 소유자라 옆에서 누가 어떻게 놀리든 별 신경을 안 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휴대폰 속에 그녀의 흑역사 사진이 그렇게 많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연애를 시작한 그녀는 어느 연예인의 생일 파티에 갔다가 PR 회사 직원인 남자친구를 처음 만났다. 술기운에 서로가 눈에 들어온 두 사람은 메신저를 교환하고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해서 연인이 됐다.


사랑에 빠진 그녀는 무섭게 변했다. 피부에 자신이 없어서 24시간 내내 화장을 지우지 않았고, 뚱뚱한 여자는 질색이라는 남자친구의 말에 맨날 집에서 아령을 들고 TV 속 몸짱 아줌마를 따라 다이어트 댄스를 췄다. 남자친구가 옆에 없을 때는 휴대폰이 남자친구를 대신했다. 어차피 친구들은 일하느라 메신저에 즉각 대답하지 않기에 그냥 남자친구와의 지난 대화 내용을 들여다보고 또 봤다. 그녀의 컴퓨터 속 즐겨찾기는 모두 남자친구의 SNS였다.


“남자친구의 과거 웨이보를 보다 보면 내가 모르고 있던 그의 세상에 들어가는 기분이야.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긴 한데, 어쨌든 난 이러는 게 좋아.”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는 사귄 지 한 달도 안 돼서 내게 하소연을 시작했다. 남자친구는 업무상 예쁜 여자들을 자주 만날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는 남자친구가 그 여자들과 찍은 사진을 내게 한 장씩 보여줬다. 화가 나면서도 자기가 왜 이 사진들을 휴대폰에 저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녀를 위로했다.


“어느 커플이든 더 사랑하는 쪽이 있기 마련인데, 너희 커플에서는 그게 너인가 보다. 가끔 스스로가 비참하게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시간이 흐르고 서로 신뢰가 쌓이면 좀 나아질 거야.”


그러나 한번 바람이 빠지기 시작한 풍선은 빠른 속도로 쪼그라드는 법이다. 그녀는 우울한 아이가 됐다. 아침에 일어나서 휴대폰을 보면, 새벽 네 시에 올린 그녀의 웨이보가 알람 목록에 있었다. 그녀는 늘 어두운 사진과 암울한 글을 올렸다. 남자친구가 출장을 가면 도통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잘 자’라는 문자를 못 받으면 몸속 모든 세포가 잔뜩 예민해져서는 밤새 못 자고 뒤척인다고도 했다. 남자친구가 옛 여자친구 이야기를 꺼내면, 아직도 못 잊나 싶어서 불안해진다고 했다.

남자친구의 웨이보에 여자들이 ‘잘생겼어요’ 같은 댓글을 달면 순간 욱해서 ‘신경 꺼’ 같은 댓글로 받아친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어떤 여자를 팔로우 하면 그 여자 웨이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뒤져봐야 직성이 풀린다고 했다. 자기가 믿기 싫은 어떤 사실을 찾으려는 듯. 하지만 늘 찾아낸 것은 없었다.


세 번째로 기사를 잘못 올린 날, 팀장은 그녀에게 삼 일간 쉬면서 반성하라고 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남자친구가 보낸 문자에 답장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전화가 오자, “대체 날 좋아하긴 하는 거야?”라며 화를 냈다. 상대방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녀는 곧 몸이 너무 안 좋아 누워 있다면서 보고 싶다고 말했다. 바로 달려온 남자는 너무나 멀쩡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얼굴이 굳어졌다.


두 사람이 얼마 만에 헤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노래방에 갔는데, 원래 마이크를 잘 잡지 않는 그녀가 그날은 노래방 기계 앞에 서서 연속으로 열 곡이나 불렀다.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는 그녀를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양청린의 ‘행복한 사람’을 부를 즈음에는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울고 있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음날 그녀는 웨이보에 이런 글을 올렸다.

 

내가 네 앞에서 마음껏 울고 웃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너와 함께 살며 보고 싶을  언제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화끈하게 싸운  남자친구가 와서 달래 주길 기다리는 그런 여자들이 가장 부럽다여왕처럼 당당하게 연애하는 그녀들이 정말 부럽다 전부를 알고 싶은데너와  사이의  거리감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너에게 안길 때마다 우리가  끝날 거라는 예감이 들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중에 친구를 통해 들어 보니 그 남자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추진력도 있으며 야망이 큰 남자였다. 그는 의심녀를 처음 만난 날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생각했다. 그녀와 연애를 하면 삶이 꽤 멋지게 채색될 것 같다고…… 하지만 그의 삶을 채색하기에는 도화지가 그만큼 크지 않았다.



연인이 문자 답장을 늦게 했다고, 전화를 제때 받지 않았다고,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의심 가는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있는가? 당신은 스스로를 변화시켜 그 사람에게 모든 걸 맞췄고, 마음속 대부분의 공간을 그에게 내주었다. 그와의 사랑을 위해 애쓴 노력으로 치자면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상대는 당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걸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원인은 상대가 아닌 당신에게 찾을 수 있다. 자신을 변화시킬 만큼 사랑하는 상대이지만 바라는 게 너무 많아서, 그의 사랑을 끊임없이 시험해 보다가 결국 스스로 인연의 마침표를 찍게 되는 것이다.


서로의 사랑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자꾸 확인하려 하면 상대방은 지쳐가고 두 사람 사이의 신뢰는 무너진다. 자꾸만 잡아당기며 속박하려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예민한 사람은 신경 쓰이는 일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이 즐겁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비친 자기의 모습이 어떨지도 신경 쓰이고, 오늘은 어떤 비가 내리고 구름은 어떤 모양일지도 신경 쓰이고, 아까 손잡을 때 왠지 따뜻한 느낌이 아니었던 것 같아서 또 신경 쓰이고, 포옹할 때 그가 평소보다 덜 끌어안은 것 같아서 신경 쓰이고, 언젠가 이 사람이 날 떠날 것 같아서 신경 쓰이고…….


연애를 하며 모든 것이 필요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당신이 그 사람을 아주 많이 원한다고 해서, 그 사람도 당신을 그만큼 원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당신이 그 사람을 그리워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수시로 문자나 전화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를 당신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으나 상대도 그럴 거라 생각해선 안 된다. 그에게 당신은 전부가 아닌 일부분임을 인정해야 덜 아프고 덜 실망한다.


똑똑한 연애란 함께할 때는 ‘서로’를 바라보고, 떨어져 있을 때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랑에 모든 시간을 허비하기에는 우리는 아직 너무 젊다. 온종일 연애만 하고 있으면 미래는 누가 책임져 주나? 떨어져 있을 때는 각자 열심히 자기의 일을 하는 거다. 자신의 숲을 정성스레 가꾸다 보면 다시 만났을 때는 더 멋지게 변해 있는 서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함께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 이런 사랑이야말로 건강하고 멋진 사랑이다.



며칠 전 의심녀가 캡처 사진을 한 장 보내왔다. 전에 그 남자와 헤어지고 올린 웨이보 글이었는데 밑에 그 남자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널 좋아하긴 하느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지 않은 이유는 모든 질문의 답은 질문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야.


우리는 비 오는 날 밖에 나갈 때 우산을 들고 나갈지 그냥 나갈지 고민하지 않는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시작할 때도 그렇다. 이 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갈지, 어떤 일이 생길지, 굳이 알아볼 필요가 있을까?


모든 사랑이 영화에서처럼 뜨겁고 열렬한 모습은 아니다. 다소 미지근하고 무던한 사랑이 더 오래가는 법이다. 그러니 실망하지 말고 다양한 사랑을 경험하다 보면 한층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가게 될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 

지금 당신의 이야기 

<지금 이대로 괜찮은 당신>

작가의 이전글 반짝반짝 빛나는 그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