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엠제이 Aug 07. 2024

컹 컹 컹

땀으로 번들거리는 살, 종이를 벨 것처럼 날이 선 눈빛, 서로가 내뱉는 호흡의 뒤엉킴. 그리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개 짖는 소리. 


컹 컹 컹      


좁은 공간에 있는 한 무리의 남자와 한 무리의 개 사이에 분노와 살기가 뭉근하게 퍼진다. 공기 중을 떠도는 팽팽한 긴장감. 그 긴장이 금방이라도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날리고 침을 뱉고 상대방의 몸을 향해 들이받을 것만 같다.  


인섭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장면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아닌 상상의 산물, 허구인 것 같다. 

무철이 비공식적으로 만남을 청하고 특별히 보안이 필요한 테스트가 있는데 그것을 자신에게 맡겼으면 한다는 말을 했을 때 인섭은 남몰래 기쁨으로 몸을 떨었다. 왜 하필, 다른 사람을 두고 자신에게,라는 생각을 하면 부정이라도 탈 것 같아서 그 생각을 간신히 못 들은 척하고 멀찍이 밀어버렸다. 박무철 상무의 선택과 결정이라면 믿을 만한 것이리라. 믿을 만한 선택이니 자신이 한층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이 기분도 영 거짓은 아니겠지. 모자란 비품을 챙겨 넣고, 고장 난 사무기기를 수리하는 일이 아닌 테스트라니. 자신에게 익숙하게 주어지던 일이 새삼 사소하고 시시하게 느껴진 건 그 순간이었다. 그래서 무철이 지시한 그 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호감이 생기고 그 자리에서 승낙을 해버렸다. 그게 어떤 일이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보다는 존재감이 있는 일이 틀림없다는 확신과 함께. 


얼마 후 무철이 알려준 주소로 가니 낡은 건물이 하나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면서 잘못 찾아온 건가 싶어서 주소를 확인했지만 그곳이 맞았다. 지하로 내려가 문 하나에 귀를 대보니 안에서 웅성대는 사람 소리가 들렸다. 손잡이에 손을 대고 돌리자마자 안에서 벌컥 문이 열렸다. 남자 하나가 인섭을 흘끗 보더니 대뜸 이름을 댔다. 자신의 이름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확인을 해야 하니 신분증을 보여달란다. 신분증을 보여주니 인섭이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한다는 듯 남자가 인섭을 향해 고개를 까딱했다. 딱히 잘못한 것이 없는데, 아니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인섭은 이상하게 주눅이 들었다. 자꾸만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어깨를 의식하면서 인섭은 가슴을 내밀고 억지로 양어깨를 펴면서 안으로 발을 들였다.      


가장 먼저 방 한가운데 무대처럼 놓인 커다란 링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문을 보며 짐작한 것보다 방이 꽤 컸다. 족히 70평은 될 것 같은 방 곳곳을 쨍한 형광등 불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형광등의 희고 환한 그 불빛 때문에 구석구석이 잘 보이는데도 이상하게 공간은 뭔가를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 체육관인가 아니면 헬스장인가라는 생각을 하는데 주변에서 뭔가를 적거나 물건을 옮기는 사람들은 운동을 하러 오는 사람이거나 운동을 가르치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한참 둘러보는데, 문을 열어주고 어딘가로 사라졌던 남자가 인섭에게 다가와 말했다.      


"우선 오늘은 전체적으로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한번 보시죠."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링을 둘러싼 사면의 바닥에서 투명 유리가 올라왔다. 천천히 올라온 투명 유리가 링의 위와 옆면을 완벽하게 감쌌다. 이제 링은 완벽한 온실 아니 스노볼 같은 모습이었다. 

인섭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스노볼이 무철이 말한 특별히 보안이 필요한 테스트를 위한 일종의 연구실 같은 것인가 보구나라고 생각했다. 곧이어 몸의 앞면과 뒷면에 번호판을 붙인 남자들이 한 명씩 무대 위로 올라갔다. 인섭 곁에 있는 남자가 무대 위로 남자들이 한 명씩 올라갈 때마다 번호와 이름을 확인했고, 확인이 끝나면 남자 앞에 있는 모니터에 심장박동을 기록하는 그래프가 팔딱거렸다. 

1번, 3번, 7번, 9번, 10번의 번호판을 단 5명의 남자들이 무대 위에 올라간 후 인섭의 곁에 선 남자가 손에 쥐고 있던 버튼을 눌렀다. 쏴 하고 남자들의 머리 위로 얇은 입자를 가진 물방울이 떨어졌다. 남자들은 양팔을 벌리고 물방울을 몸 구석구석에 묻혔다. 가뭄의 해갈을 알리는 비를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들처럼 떨어지는 액체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컹 컹 컹" 


귀를 찢을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 개들이 있었다. 인섭의 허리께에 올 만큼의 덩치에 탄탄한 근육을 가진 검은 개 다섯 마리. 머리를 헝겊으로 가려 둔 상태라 개들은 사나운 소리를 냈다. 머리를 감싸고 있는 답답함을 벗어나 금방이라고 앞으로 튀어 나갈 것처럼 몸을 앞으로 내미는 탓에 목줄이 팽팽하게 끊어질 것처럼 한껏 당겨져 있었다. 간신히 개를 끌고 링 앞으로 간 남자가 개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헝겊을 치우고 목줄을 풀었다. 개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빠르게 튀어 나갔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개들은 거칠게 짖어댔다. 


"컹 컹 컹" 





      

이전 20화 나쁜 짓을 하는 게 나 혼자는 아니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