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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Sep 04. 2024

두 번째 양심고백, 자신의 침몰을 대놓고 중계하는 것

나불대기 좋아하는 이 부장에게 무철이 [BREATH] 공포의 유통을 책임지게 한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책임자가 된다면야 그게 뭐든 이 부장은 달갑게 무철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는 게 첫 번째 이유고, 이 부장은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머잖아 누군가에게 떠벌릴 게 분명하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이 일에 가담한 자신의 책임을 덜기 위한 목적이든 돈 때문이든 혹은 그냥 심심해서든 혹은 그 모든 이유 때문이든 이 부장은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가슴속에 오래 담아둘 인간이 아니다.       


무철은 애초에 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곳에 [BREATH] 공포를 판매할 생각이 없었다. 이 일에 있어서 사적 이익을 취하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 뿐이어야 하니까. 처음부터 [BREATH] 공포는 공적 이익이라는 더 거대하고 그럴듯한 명분을 가지고 있는 곳에 판매할 생각이었다. 그 이유는 공적 이익을 위한 일에 이용되어야 그 후폭풍이 한층 거셀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사적 이익을 취하는 것을 이유로 기업이 사람들에게 영원히 욕을 먹거나 쉽게 망해 자빠지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너도 가지고 있고 나도 가지고 있는 개인의 욕구라는 말과 기업이 취하는 사적 이익이라는 말은 곧잘 등치 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쉽게 ‘우리 누구라도 사적 이익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라는 자기반성과, ‘결국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한 게 목적이니까’라는 생각으로 깨어있는 시민조차 기업을 쉽게 용서하고 만다. 기업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구설수에 오른대도 얼마간의 불매운동을 하다가 언제 그랬냐 싶게 금세 잊히고 만다. 

하지만 공적 이익을 책임지는 곳이 그랬다면 이건 얘기가 다르다. 사람들은 곧장 자신이 직접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위치에 선다.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곳이 이래서야 되겠느냐’며 당장의 해결과 책임자 문책 등을 당당히 요구한다. 그리고 시민이라는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SNS의 한 줄 글로 시위와 같은 행동으로 열과 성을 다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댄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극악무도한 일의 배후가 되는 것. 

무철은 아버지의 회사를 나아가 아버지를 극악무도한 일의 배후로 지목되게 할 계획이었다.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정부가 시민을 조종하고 억압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정부의 뒤에는 놀랍게도 국내 굴지의 기업의 청탁이 있었다는 것. 앞서 구설수에 몇 번 오르내린 적이 있는 아버지의 회사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결코 쉽지 않으리라. 아버지의 회사는 이 일의 희생양으로 SM물산 나아가 박무철 상무를 지목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한 방패 역시 무철은 마련했다. 


아버지가 자신을 불러들인 그날 그는 아버지에게 한 가지 약속을 받아뒀다. [BREATH]의 성과와 신제품 생산 현황에 대한 보고를 정기적으로 올리겠노라고. 그리고 이것만큼은 큰어머니를 비롯한 다른 누구의 손도 거치지 않고 아버지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였다. 무철의 요구사항에 아버지는 그저 고개를 까딱하고 말았다. 우려의 말을 보태지도, 쓸데없는 말이라며 무철을 나무라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만 한번 까딱하고 말았다. 아버지의 반응을 통해 무철은 새삼 자신은 평생 아버지에게 존재감 없는 존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 문제에 있어 평생 이런 식이 었겠구나 라는 자각. 그런 아버지의 반응 때문에 무철이 서글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 그렇구나, 딱 그 정도였다.


[BREATH]에 대한 보고 문서를 아버지에게 전달하는 일을 무철은 반드시 이 부장이 직접 하게 했다.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 뻔했지만 무철은 그것이 정상적으로 아버지에게 전달되었다는 것, 거기에 지금 벌이고 있는 일에 대한 일련의 정보가 모두 담겨있다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 자료들은 이 사건의 배후로 아버지의 회사가 지목되는 데 있어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 자료가 될 테니까. 그것은 보고 문서의 꼴을 하고 있지만 절대로 발뺌을 할 수 없는 이 일의 배후로 아버지의 회사를 지목할 명백한 증거였다.  


며칠 전부터 슬슬 발을 빼려는 이 부장의 모양새를 보니 곧 이 일이 그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겠구나 싶었다. 양심고백이라는 카드를 사용해 본 적 있는 이 부장은 이번에도 언론을 통해 주목을 받으려 할 것이다. 양심고백도 그것의 파급력도 모두 무철이 이 부장에게 직접 알려준 것이었다. 하지만 무철이 이 부장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이 있다. 사람들은 한번 배신한 사람의 두 번째 말에는 집중하지도 신뢰하지도 않는다는 것, 그래서 결국 이 부장 자신이 가장 의심스러운 위치에 설 거라는 것. 두 번째 양심고백은 이 부장 자신의 침몰을 대놓고 중계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양심이 없는 두 번째 양심 고백이야 말로 양심이 없다고 사람들이 대놓고 욕하기 딱 좋은 일이 되겠지.      


모든 것이 무철의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다. 무철이 신뢰하는 숫자만큼이나 명명백백하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은 딱 하나, 향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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