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철의 눈물이 손수건으로 떨어졌다는 걸 향미는 냄새로 알았다. 눈물 몇 방울이 떨어지자마자 손수건에서 익숙한 냄새가 옅게 퍼졌다. 인섭이 손수건을 가지고 있을 때 나던 공포의 냄새는 사라졌을 거다. 무철이 쓸 때처럼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향미가 손수건을 빨았으니까. 비누칠은 하지 않고 물로 조물조물 빤 후에 욕실 수건걸이에 잘 걸어뒀다. 해진 손수건이 혹시 찢어질까 싶어서 힘을 줘서 탁탁 털지 않고 물기만 꼭 짜서.
무철이 울었다고 생각하니 향미의 목울대에 묵직한 것이 걸린 것처럼 아프다. 침을 한번 삼켜서 묵직한 것을 가까스로 내려보낸다. 좀 낫다. 분명히 손에 쥐고 말겠다는 무철이 꾸민 일에 대한 진실이라는 것이 지금은 하찮기만 하다. 이제 그걸 안다고 뭐가 얼마나 달라질까. 무철을 향한 질문 몇 가지도 마찬가지다. 작아진 물음표만큼 질문도 힘을 잃는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향미의 손을 무철이 잡는다. 기억만큼 그리고 추억한 그대로 부드러운 무철의 손을 향미는 뿌리칠 재간이 없다. 향미의 손을 무철은 가만히 쓰다듬는다. 무철의 손이 이끄는 대로 향미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누가 더 최악일까. 아버지라는 사람과 나 둘 중에."
무철이 준비한 것처럼 말을 시작한다. 향미가 가졌던 물음표에 대한 답이 무철의 입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쏟아진다. 무철이 이 일을 한 이유,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 무철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서. 곧잘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던 무철이 지금은 향미가 묻지 않았는데도 일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 담담하게 말을 잇는다. 무철의 말을 들을수록 향미는 무색무취 인간인 무철을 향한 연민이 다양한 색과 향으로 선명하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느낀다. 가엾은 한 인간이 벌인 어리석은 행동, 이 일을 엮고 짠 사람이 느낄만한 성취감 같은걸 조금도 느낄 수 없다.
"그냥 니 인생을 살아."
하려던 말은 결국 긴 말이 아닌 하나의 문장이 되어 나왔다. 향미가 해주고 싶은 말은 이거 하나다. 자기 인생을 바치면서까지 해내야 하는 일은 없으니 그저 자기 앞에 놓인 인생을 지금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대했으면 하는 바람. 그러니 모쪼록 인생에서 비장함을 걷어내고, 상처를 뛰어넘고, 목적이 없고 순간이 있는 인생을 살아봤으면 하는 마음. 그 간단하고 뻔한 말에 향미는 어떤 말도 더 보태고 싶지 않다. 이 말에 뭔가를 더 보태는 일은 박무철, 당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야.
그때까지 향미의 손을 잡고 있던 무철의 손을 가만히 떼어내고, 향미는 자리에서 일어선 후 문을 향해 걷는다. 문밖으로 나온 향미의 코에 수만 가지의 냄새가 와서 꽂힌다. 그 어디에서도 상처의 냄새는 없다. 향미의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