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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저 킴 Dec 24. 2022

감사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 했는데

감사는 어떻게 하는 걸까?

연말에 자주 듣는 말들,


"저번에 일 도와준 거 제대로 고맙다고도 못 했는데 내년 되기 전에 내가 밥 한번 사야지."


"지난번에 경황이 없어 감사하다는 말씀도 제대로 못 드렸는데... 이거 받으세요"

 

내 기억으로는 뭔가 특별한 것들을 베풀며 살아온 한 해가 아니었음에도, 몇몇 사람들이 나에게 감사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음에 자책(?)하며 선물을 주거나 식사대접을 하겠다고 한다. 

호의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은 사회적 관습이며,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에 그것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은 비난받아야 할 대상이 될 수는 있으나 내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선물을 준 이들은 분명 내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말을 전했을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말과 태도에 그토록 민감한 온실 속 화초 같은 내 마음에 올해가 다 지나도록 그들을 향한 지탄이나 섭섭함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제대로' 감사를 전하지 못했다며 본인들만의 방식으로 감사의 뜻을 표현하려 애쓴다.


이번 달 초, 유례없는 폭설이 내렸다. 

늦은 퇴근길, 차가 언덕길 위 쌓인 눈에 파묻혀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나를 도와준 이름 모를 손길들, 춥고 눈 내리는 날씨에 누군지도 모르는 나를 돕기 위해 삽을 이용해 앞 뒤로 눈을 퍼내고, 있는 힘껏 내 차를 밀어주던 그 이웃들. 

가까스로 눈밭에서 탈출하여 앞으로 나아가며 차를 멈출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뒤로  멀어지는 그들을 향해 그저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 수밖에 없었다. 감사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말았다.


겨울에는 추적추적 비만 내리던 밴쿠버에 유례없는 폭설이 계속된다. 

큰길은 제설작업이 나름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좁은 뒷길이나 구석구석 눈이 잔뜩 쌓인 코너에라도 잘 못 들어갔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나는 그날 이름 모를 이들의 도움을 받은 이후로 출퇴근 길 이곳저곳을 유심히 보게 된다. 혹시라도 눈에 갇혀 못 나오는 차량이 있는지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차량을 발견하게 된다면 스스럼없이 차에서 내려 그들을 도울 것이다. 이전에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없었지만, 그날 이후 나도 감사의 표현을 제대로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만약 내가 눈 속에서 차를 빼내지 못해 당황하는 이들을 보고도 그저 지나친다면 내 감사는 얼마나 허망한 것이 돼버릴까... 내가 받은 대로 똑같이 다른 이에게 행하는 것이 '제대로' 된 감사의 표현이 아닐까...


각자의 방법으로 못다 한 감사의 표현을 완성하려는 연말이다.

많은 분들, 감사에 성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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