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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저 킴 Mar 04. 2023

나는 복수다, 나는 밀레니얼이다.

요즘 애들_앤 헬렌 피터슨

애플의 공동 창업주 이자 전 CEO, 스티브 잡스는 살아생전 말했다.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보라......"


우리들 대부분은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좋은 학교를 나와 자격증도 따고 봉사 활동까지 하며 훌륭한 이력서를 만들어 사랑할 수 있을 만한 직업이나 회사에 러브레터를 보내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내 친구도 그 친구의 친구도 그 친구의 친구의 친구도......


내가 사랑을 느낄만한 직업은 다른 많은 사람들도 무척이나 탐을 내기에, 얻기도 힘들뿐더러, 얻은 후에도 그 경쟁 속에서 자리를 지키기는 꽤나 힘든 일이다.


너무나 적은 자리를 두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보상 기준이 점차 낮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결국 낮은 보상을 받으며 우리가 사랑하거나 사랑한다고 믿고 싶은 일을 한다.

그리고는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낮은 보상을 받는 일은 내가 지속 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 정신적 탈진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는 유한하고 지치지 않은 척 애쓰며 버티어 보지만 어느새 번아웃은 찾아온다.

번아웃 증후군은 낮은 보상과 함께 무한 경쟁에 참여하는 밀레니얼 세대에서 일시적 증상이 아니다. 우리는 챔피언 벨트를 들어 올린 적도 없는데 매일 타이틀 방어전을 치르고 있으며, 사실 번아웃은 우리 시대의 상태 그 자체다. 수저계급론부터 시작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의 줄임말) 이라던지,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의 줄임말) 따위의 유행어들은 이 시대를 휘감고 있는 피로와 절망과 극도의 허무주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어쩌다 번아웃의 시대를 살게 된 걸까?


'요즘 애들'의 저자 앤 헬렌 피터슨(Anne Helen Petersen)은 자신을 나이 든 밀레니얼이라 칭하며 개인뿐 아니라 이 세대를 감싸고 있는 번아웃의 원인을 치밀하게 분석해 나간다. 나 또한 저자처럼 나이 든 밀레니얼 세대로서 그녀가 내리는 번아웃의 정의에 공감하며 그 번아웃의 원인이 우리 개개인의 감정과 능력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영향과 시스템 안에서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어렸을 적부터 우리는 충분히 노력하면 자본주의와 능력주의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 안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아니면 적어도 그 안에서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으며 자랐다. 대다수 밀레니얼들은 우리 모두가 삶의 어떤 시기에서건 적어도 중산층의 신분을 유지해야 하고 그 계급 범주에서 벗어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겼다. 우리는 당연히 우리가 중산층 이상이라 생각했고 커서도 중산층 이상으로 살 줄로만 믿었다. 하지만 실상 밀레니얼 세대로서 중산층의 면모를 보이며 살아가려니 우리 스스로를 번아웃으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성공한 중산층이 되기 위한 모범 답안이 여기에 있다. 

이력서를 만들고, 대학에 들어가고, 다시 이력서를 만들어 인턴십을 하고, 또 이력서를 만들어 네트워크 웹 사이트에 올려 사람들과 연결고리를 만들고, 다시 이력서를 만들어 영혼을 털려가며 일해도 감지덕지하라는 말을 듣는 직급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력을 계속하고, 또 이력서를 만들어 계속 노력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완벽하고 안정적이고 보람차며 연봉도 좋은, 중산층의 한 자리를 보장해 주는 직업을 찾을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을 것이다. 그러나 돈이 더 큰돈을 만들어 내는 규모의 경제 혹은 신용 경제라 불리는 현대 사회에서 서로 다른 출발선에 의해 발생하는 경제적 괴리는 밀레니얼의 번아웃을 일으키는 또 다른 주요 요소가 된다. 열심히 일해서 좋은 직업을 가진다 해도 값나가는 수저들의 부를 좇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면, 대체 무얼 어쩌란 말인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지겹도록 들어왔던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절대다수의 밀레니얼에게 대학학위는 우리와 우리 부모들에게 약속했던 '중산층의 안정'을 안겨주지 않았다. 멋들어지게 가장해 봐도 실체는 같다. 우리가 얻은 건, 더 많은 노동일뿐이다. 사실 대학 학위를 요구하지 않는 직업은 무엇이나 어떤 면에서든 열등하다는 생각을, 이미 많은 밀레니얼이 갖고 있었고. 그 결과 과잉 교육을 발고선 필요하지 않은 자격증을 따느라 빌린 대출금을 갚는 신세가 되었다. 우리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을 걸어 다니는 이력서로 완전히 개념화한 최초의 세대다. 부모와 사회, 교육자들의 보조 아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적 자원"으로 여겼으며, 경제활동에서 더 나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인식했다. 그런 이유로 이 사회에서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더 많은 일, 더 많은 노고, 더 많은 헌신, 더 많은 충성, 더 많은 끈기, 이것들이 당신을 더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노력이야 말로 이 시대의 미덕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우리를 매우 효율적인 노동자로 만들어 가고 있다.


현실은 시궁창, 왜? '아웃소싱' 때문에

무수한 경쟁을 뚫고 실상은 시궁창이지만 멋진 타이틀이 붙은 직업을 갖게 된 후에는 더 기가 막힌 광경이 펼쳐진다. 일단 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노동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 그것이다. 기업들이 강조하는 건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될 기회다. 아무리 적은 보수를 받더라도 말이다. 실상 모든 개인이 소모품으로 취급받으며 일은 공정하지도 않고 열정이나 가치에 근거한 것도 아니다. 


노동자들이 게을러지고 있거나 멀티태스킹 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끈기나 야망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냥 일터의 조건이 나쁘고 더 나빠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수많은 직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 버리는 아웃소싱 이란 놈이 있다. 회사가 그들의 노동자를 함부로 대하기 쉬웠던 건, 아웃소싱이란 제도 때문이다. 이 무자비한 위탁 제도 안에서 노조 문제의 해결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회사에서 고용한 직원을 전원 해고하고, 하청 업체를 통해 복지 혜택을 받지 않고 똑같은 업무를 해줄 사람들을 다시 고용하는 것이다. 아웃소싱은 직원에게 안정적인 임금을 제공하지 않는다. 직원들의 근무 생활을 개선하지도 않는다. 아웃소싱이 하는 일은 주식시장에서 회사의 가치를 증가시키고, 그럼으로써 주주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다. 아웃소싱된 사람들의 임금을 바닥에 깔고서 말이다. 이는 제품이나 제품 뒤의 노동자들과는 아무 관련 없는 이들을 위해, 단기 이익 창출을 최우선의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다.






일을 하면 비참해지고 쉬려 하면 불안해지는 번아웃의 세대

우리는 이건 좀 지나치다고 알려주는 몸의 모든 신호를 무시하도록 길들여졌고, 이를 노력 혹은 투지라고 부른다. 이러한 현상은 더 이상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국가의 문제도 아니다. 초국적 대기업들이 지구를 정복해 가면서 전 세계는 이제 같은 문제, 같은 번아웃을 겪고 있다. 작가가 말하는 미국 밀레니얼 세대들의 실상이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며, 내가 발붙이고 있는 캐나다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이 놀랍지도 않다.


카운터 어택을 꿈꾸며

저자는 변화를 위한 구체적 행동 방안이라던지 번아웃 탈출에 대한 세세한 실행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우리의 자리와 현 상황에 대해 매우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어쩌면 책을 덮은 뒤, 마음에 알 수 없는 불이 일어나 당장이라도 혁명을 일으켜야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부조리와 거대 사회 시스템의 문제점을 폭로하며 작가가 독자에게 가장 건네고 싶은 말은 오히려 소박하고 따뜻한 위로라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폭넓은 사회적 실패에 대해 스스로를 탓하지 말라고, 꼭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고, 몸이 쉬라고 알려 줄 때 쉬면서 좋은 기분을 느끼라며 이 세대를 다독여 주는 것만 같다. 


하지만, 

따스한 위로가 끝나고 나면 그녀는 주머니에 차가운 잭나이프 하나를 슬쩍 넣어준다. 그리고는 귓솟말로 속삭이는 듯하다.


언젠가 준비가 되면 맘껏 쓰라고. 카운터 어택을 맥이라고.


기업은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노동자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조합과 정부 규제로 인해 고용인을 사람답게 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가 건네준 잭나이프는 우리의 지식이고, 우리의 이성이고, 우리의 용기일 것이다.

맘껏 쥐어 터져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면 남은 건 복수뿐이다.


우리는 복수다, 우리는 밀레니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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