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다
“그 길 들어가면 안 돼요! 표지판 안 봐요?!”
“일방통행 길이 많아서 사고 난다고요!”
입사한 지 3달 남짓 된 신입 사원의 이름은 Anil, 인도 백그라운드를 가진 나보다 8살 어린 친구다. 일주일 전 나에게 ‘우버 이츠’라는 배달 앱에 대해 알려주었고 지금은 내 차 조수석에 앉아서 내 운전 실력에 대해 큰 목소리로 훈수를 두고 있다. 내 차 트렁크에는 내가 받은 첫 번째 배달 오더 즉, 3-4인용 스시 파티 트레이가 잘 포장되어 배달 전용 보온 백에 담긴 채로 게으르고 배고픈 고객에게 운반되고 있는 중이다.
“운전면허 한국에서 딴 거죠? 아시아인들 다 이렇게 운전해요?”
“야, 나도 표지판 다 아는데 지금 당황해서 그래, 나도 여기 길 알아, 나도 다운타운 자주 와! 그리고 너 설마 인도는 아시아가 아니라고 믿는 거냐? 방금 거 완전 인종 차별적이었던 거 알지?”
Anil은 인도에서 태어나 4살 즈음에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주했고 그 이후로 그 나라에 가본 적도 없지만 자신의 모국이라는 이유로 인도에 대한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애정이 지나쳐서 인지 가끔 동료들 과의 대화에서 인도를 탈 아시아화 시킨 채로 등장시키며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우위에 있다는 듯한 발언을 해왔고 몇몇 아시아계 직원들은 그런 그와의 대화를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의 발언이나 태도에 대해 여태껏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지만 벌써 30-40분째 쉬지 않고 빽빽 거리는 그에게 울컥하는 마음에 말꼬리를 잡아 확 쏘아 붙었다.
많은 국가에서 모인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사는 모자이크 사회, 밴쿠버에서 인종차별(Racism) 이란 것은 특히나 민감한 이슈다. 조금이라도 그 이슈가 느껴 지기라도 한다면 모든 대화는 즉시 중단되고 그 이슈의 발단을 제공한 사람이라면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요, 그 정도에 따라 언제든 경찰이 출동해 조사를 벌인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Anil은 대꾸도 없다. 조금은 과격했던 나의 어조에 삐진 모양새다. 첫 번째 배달부터 우리 둘은 그렇게 옥신각신 했고, 좀 전의 전우애는 이미 빛바랜 영광과 같은 것이 되었다.
운전만큼은 자신 있던 나인데 러시 아워 시간에 그것도 이 복잡한 밴쿠버 시내 한가운데서 음식을 픽업하고 정해진 곳에 배달하는 과정은 생각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퇴근 시간대 다운타운을 오고 나가는 교통량은 나의 상상을 초월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정말 하나도 없구나…’
꽉 막힌 도로 위, 좁은 차 안에서 후배 직원과의 어색하고 답답한 침묵이 계속되고 있다. 절로 나오는 한 숨도 한번 움켜쥐었다가 살살 내뱉는 내 모습을 느끼며 세상의 진리를 다시 한번 정직하게 깨닫는다. 그렇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오후 6시 20분
나와 Anil은 첫 번째 배달 임무를 수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