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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저 킴 Mar 26. 2022

4.아니, 그래도 팁은 주셔야죠, 손님!

그게 맞잖아요, 그렇잖아요.

분주한 빌딩 숲 사이, 우버 이츠 앱에서 제공하는 내비게이션 안내를 따라 큰 거리 안쪽으로 두 블록 정도 들어가니 한적하고 작은 주택가가 나온다. 도심 가운데 이렇게 조용하고 아담한 동네가 존재한다는 것에 또 놀란다. 30년은 넘어 보이는 오래된 집이 최종 도착지였다.

집 앞 길가에 차를 세웠다. Anil이 차에서 먼저 내리고 가볍게 트렁크를 두 번 두들겼다. 음식을 꺼내기 위해 트렁크를 열어 달라는 신호로 알아듣고 트렁크를 열어주니 보온 백을 꺼내 두 손에 들고는 그 오래된 집으로 향한다. 나도 얼른 뒤따라 나섰다. 비록 오래된 집이지만 집 앞에 있는 우뚝 서있는 커다란 버드나무가 바람에 그 가지들이 흔들리어 나름의 운치를 자아내는 단독 주택이었다.


이 집 안에 나의 첫 고객이 살고 있다. 그 혹은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내 첫 고객에게 나는 어떻게 인사하면 좋을까? 활짝 웃어야지. 아니, 너무 밝게 웃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어. 가벼운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네자.


'고객님, 나의 첫 번째 배달 임무를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여기까지 오는데 쉽지는 않았습니다. 손님께서 선택하신 초밥집은 교통량이 가장 많은 다운타운 중심부, 주차장도 좁은 건물 안에 위치해 있어서 일단 음식 픽업이 힘들었고, 오는 동안 길을 헤매 입사한 지 3달밖에 안된 후배 직원의  잔소리에 내내 시달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당신에게 맛있는 음식을 전달해 드리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감사하단 말씀을 들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저는 제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싶을 뿐이에요. 제가 더 용기 낼 수 있도록 소정의 팁을 주신다면 사양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럼 좋은 저녁 되세요.'


10미터 될까 말까 한 거리를 걸으며 머릿속에서는 고객과의 만남, 교감, 헤어짐이 이미 모두 이루어졌다.

진심이 담긴 나의 인사를 받고 마음이 따뜻해진 내 첫 고객은 그 감사의 표시로 넉넉한 팁을 챙겨 줄 것이다.


'그럼 그렇고말고, 이렇게 고생해서 왔는데 5불 이상은 팁으로 받아야 하지 않겠어?!'


먼저 마시는 김칫국은 언제나 맛이 좋다.




"여기다 놓고 사진 찍으면 돼요."


Anil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음식을 현관 앞에 내려놓고 사진을 찍으란다.


"응? 고객에게 직접 건네줘야지, 음식을 밖에 두면 안 되지."


"하아... 배달 방법 확인해봐요."


'배달 방법...?'


고객이 원하는 특정한 배달 방법이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우버 이츠 앱을 다시 열고 쭉 아래로 내려가 보니 분명히 쓰여있다.


'배달 방법: 문 앞에 두기'


코로나 시대에 어쩌면 당연한 배달 방법일 텐데 나는 어째서 내 멋대로 고객을 대면할 생각을 했던 건지...

고객과의 따뜻한 만남에 관한 시나리오를 홀로 제작하고 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져서 미완성된 시나리오를 머릿속 휴지통에 어서 던져버렸다. 허탈했다.


Anil 이 말 한 대로 현관 앞에 포장된 음식을 살포시 내려놓고 사진을 찍은 뒤 엡 하단에 있는 배달 완료 버튼을 눌렀다.


'배달 완료'


첫 배달을 끝낸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쯤에서 배달에 온 집중을 쏟고 있던 터라 잊고 있던 중요한 질문 사항.


'배달비는 얼마?'


이 배달로 얼마를 벌게 되는 건지 무척 궁금해진다. 내 생각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Anil 이 말해준다.


"배달비는 팁과 함께 30분 정도 후에 정산되어서 나와요."


"아... 그래?"


밴쿠버에는 여느 북미 지역과 다름없이 팁 문화가 있다.

셀프서비스나 테이크 아웃이 아닌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서빙을 받거나 택시를 타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때에는 으레 음식 값이나 서비스 자체의 비용 외에 팁 비용을 내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팁이라는 것이 의무가 아니고 강제되는 것도 아니지만 통상 레스토랑의 경우 음식값의 12%-15%의 팁을 지불한다.

이 팁이라는 것이 사실 전적으로 손님의 의사에 따른 것이기에 형편없는 서비스에도 팁을 내는 고객이 있는 반면 훌륭한 서비스를 받고도 팁을 지불하지 않는 것이다.


한 번은 한국에서 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밴쿠버에서 나름 유명한 한국 음식점에 갔는데 역시 인기 있는 집이라 손님들로 북적 댔고 모든 종업원들이 분주했다. 설렁탕을 시켰는데 20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손님과 나는 어색하게 물만 들이켜다, 주문 후 30분 정도 흘러서야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 사과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음식이 이토록 늦은 이유에 대하여 간단한 설명이라도 해주면 좋았으련만 서버는 설렁탕 두 그릇을 던 지 듯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아무 말 없이 휙 뒤돌아 가버렸다. 바쁜 건 알겠지만 그런 서비스를 받고 유쾌한 기분은 절대 들지 않아서 계산할 때 팁에 $0을 찍고 나왔다. 그런데 식당 문을 열고 나서자 우리 테이블을 서빙하던 서버가 헐레벌떡 뛰쳐나오더니


'저기요!'


하고 우리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가던 길 멈추고 그 서버를 바라보니 한다는 말이


'아까 팁 안 주고 가셨는데...'


'네 맞아요 음식 시키고 30분이나 기다렸고, 왜 늦게 나온 건지 별다른 설명도 못 들었어요, 그래서 팁 안 드린 거예요.'


'아니, 그래도 팁은 주셔야죠, 손님!'


마치 무전취식이라도 한 듯 오히려 우리를 다그치는 그 서버에게 '팁이란 무엇인가' '서비스란 무엇인가' 성심성의껏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손님도 함께였고  길거리에서 일 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아, 주머니에 있던 동전 몇 개를 건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럼 우리 저 앞에 커피숍 가서 아이스커피 하나씩 먹고 하자. 내가 살게"


"좋죠"


우리 둘은 잠깐 쉬면서 이야기도 나눌 겸 길 건너편에 있는 캐나다 국민 커피숍, Tim Hortons 에 들어갔다. 스타벅스 보다 값이 싸고 음료 맛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아까 내가 차에서 너무했지? 미안하다. 복잡한 데서 운전하다 보니 너무 예민해졌나 봐."


"아니에요, 제가 말이 너무 많았어요. 제가 미안해요. 그래도 첫 배달 잘 해내셨어요!"


"그러게, Anil, 네가 길을 잘 알려줘서 첫 배달 성공한 거야, 다음에는 네가 운전하는 거 보면서 배워야겠어."


"네?! 저 면허 없는데..."


"응?... 면허가... 없어...?..."


그렇다. 이 친구는 면허도 없이 배달 내내 나의 운전에 그토록 훈수를 둔 거였다. 다시금 신경이 곤두서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심호흡 한 번 하고 나의 화를 꾹 눌러본다. 그래. 그러고 보니 전에 전동 스쿠터로 배달 한고 했던 말이 이제야 떠오른다.


'그래. 운전면허 없이도 운전 실력을 지적할 수 있는 거야... 내가 축구를 잘해서 국가대표 축구경기 때 훈수 두는 게 아니잖아...'


입사한 지 3달 된 Anil을 위해 나 자신에게 그를 변호해본다. 내가 나 자신을 설득해본다. 하지만 실패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근데 내가 직접 그라운드에 찾아가 경기 내내 그들의 축구 실력을 비평하는 건 아니잖아... 얘는 나한테 왜 그랬던 거지?... 싸울까?'  


아무래도 나는 이 친구랑 잘 맞지 않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첫 배달 도와준다고 같이 돌아다니는 이 녀석에게 이미 좀 전 일에 대해 사과해 놓고  다시 그 좀 전 일로 화내는 것도 우습게 느껴진다.


'그래. 어찌 되었든 이 친구도 나를 도와주려 한 거잖아... 고마운 일이니 오늘 번 돈은 꼭 반으로 나눠서 줘야지' 하고 생각했다.




"띠리링"


커피 몇 모금 들이키고 있는데 우버 앱에서 알림 메시지가 왔다.


'배달비 정산 배달비 $5.31 / 팁 $0 / 배달 완료, 수고하셨습니다.'


'엥? 팁이 0이라고?'


"야 Anil, 이거 좀 볼래? 팁이 0 이라는데"


유심히 배달 내역을 확인해 본 Anil이 말한다.


"음식이 다 식었다고 thumbs down 누르고... 팁도 안 줬네요..."


'thumbs down'은 또 뭐지?

'싫어요' 같은 건가?


아니 그보다 고객이 주문한 음식은 초밥 몇 개랑 롤 몇 개가 합쳐진 초밥 파티 트레이였다. 애초에 뜨겁지도 않은 음식을 식었다고 하는 건 완전한 억지다. 힘이 쫙 빠져나갔다. 그토록 힘겹게 첫 배달을 마쳤는데 팁이 0 이라니...

마치 내 존재 자체가 거절당한 기분이었다. 모든 의욕이 꺾여버리고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느껴졌다.


"Anil,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네? 이제 하나 했는데.?"


"가자. 데려다줄게."


"아니요, 저는 여기서 걸어가면 돼요, 그런데 괜찮은 거예요?"


"응 괜찮아, 그런데 나 지금 너무 피곤하다. 먼저 일어날게, 내일 보자"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어리둥절한 표정의 Anil을 홀 남겨두고 커피숍을 나왔다.  


팁이란 것이 막상 내가 받지 못하니 이처럼 허탈할 수가 없었다.

몇 해 전 나를 쫓아오던 그 서버의 마음이 되어 방금 첫 배달을 마친 그 오래된 집에 다시 찾아가 문을 쾅쾅 두드린 다음,


"아니, 그도 팁은 주셔야죠. 손님!"


소리치며 왜 팁을 안 주는지 따지고 싶었다.


이곳, 밴쿠버에서 팁이란 것은 의무도 아니고 강제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초밥이 식었다는 이유를 갖다 붙이며, 팁을 주지 않는 나의 첫 고객이 미웠다.


쓰러지듯 차에 내 몸을 우겨 놓고 핸들을 잡아보니 억울함 만큼이나 큰 피로감이 몰려온다.

시계를 보니 오후 7시가 살짝 넘었다. 평소라면 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소파에 누워있을 시간.


낯설게 느껴지는 다운타운 어느 한 구석.

아직도 붐비는 시내 도로를 뚫고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막막해진다.

눈에 보이는 건 황금도 없고, 팁도 없는 야속한 잿빛 도시의 모습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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