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해도 책을 안 읽는다고?

by 필우

"행과 불행은 사실이라기보다 자기 해석에 좌우된다. 그리고 독서는 이 해석에 결정적으로 관여한다."(정희진)


내가 북 콘서트에서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내용은 '홀리스 스카보르' 박사의 '리딩 로프'다. 스카보르 박사는 책 읽기에 필요한 뇌의 8가지 활동을 강조한 사람이다.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읽어내기 위해서는 '어휘력, 독해력, 문해력, 시각적 인식, 음운론적 지식, 언어 구조의 이해, 언어 추론력' 마지막으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나는 이 요소들을 모두 암기하고 있다. 독서를 할 때마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강조하면서 한 번 읽은 책을 잊지 않는 방법에 대해 소개하겠다고 운을 뗀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독서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은 '당신의 인생을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위대하게 바꿔 줄 방법은 무엇인가?'하고 묻고는 '만약 독서보다 더 좋은 방법을 알고 있다면 그 방법을 따르기 바란다.'라고 답을 제시했다. 워런 버핏은 '인류가 현재까지 발견한 방법 가운데서만 찾는다면 당신은 결코 독서보다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워런 버핏의 말은 나의 책 <한 번 읽은 책은 절대 잊지 않는다>의 표지에도 인용되었다. '오직 독서만이 평범한 사람을 성공으로 이끈다'는 카피는 워런 버핏의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최근 <정희진처럼 읽기>(정희진 지음)에서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드는 문장을 찾았다. 정희진 작가는 '행과 불행은 사실이라기보다 자기 해석에 좌우된다.'라고 하면서 독서가 이 해석에 결정적으로 관여한다,라고 말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사실 또는 사건' 자체를 행복과 불행으로 단정 짓는다. 한번 불행하다고 판단하고 나면 그 늪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한발 물러나서 보면 그렇게 해석했을 뿐, 사실과 사건은 그것 자체로는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위 주체가 가진 직접적, 간접적 경험과 가치관, 세계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소설 속, 수많은 인물의 고난과 극복사례를 접하였다면 내게 닥친 사건들의 해석은 달라질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좀 더 긴 호흡으로 보는 습관이 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경계 너머에서 일어난 일을 추측해보기도 한다. 결론은 늘 긍정적인 해석에 이른다.


행과 불행이 독서력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하는데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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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말이 나왔으니 왜 써야 하는 가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자. 나는 이문재 시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이문재 시인은 <녹색평론>(144호)에서 '글쓰기라는 인위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는 자신과 대화하기 쉽지 않다.'라고 하면서 '자기 자신과 대화하지 못하는 인간, 그리하여 경제논리에 포섭된 채 일상적 삶을 지속하는 인간을 나는 '소비자'라고 부른다. 이때의 소배지는 '최후의 인간'이다. 생각하지 않는 존재, 노예적 존재'라고 주장한다.


최근에 이문재 시인의 말과 맥락을 같이 하는 조지 오웰의 말이 내게 와닿았다. 조지 오웰은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다면 잘 생각할 수 없다고 하면서 만약 잘 생각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생각을 대신해 준다고 말했다. 결국 글을 쓰지 않는 인간,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노예적 존재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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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 쓰지 않는 인간이 설 자리는 없다. 챗GPT는 점점 우리를 생각하지 않는 인간으로 만들고 유튜브 알고리즘은 '제정신이라는 착각'속에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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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가져올 위험성에 대하여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통해 잘 알게 되었다. 생각의 무능함, 어휘력 부족이 가져다주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생각해 볼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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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쓰기를 부지런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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