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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자득한 마음은 세상이라는 만화경을 무너뜨린다

안연의 마음이 가진 가치



내게 온 기쁜 일들에 대해 연연하지 않고 나쁜 일들 또한 연연하지 않는다면 마음은 매일 새롭게 흘러간다. 어제의 마음을 기대한 관계에 오늘의 관계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인간관계는 어찌 보면 복잡한 심리적 요소들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어제의 관계에서 얻었던 기쁜 요소들이 오늘 다시 재현되리라 보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관계 안에서 얻어지는 기쁨과 슬픔에 연연하는 마음이 생길 때에 현재의 흐름은 과거에 얽매여 흘러가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나도 모르게 그 관계에 대하여 무의식적으로 기대하게 되고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에 집착하게 되어 도리어 자연스러운 관계에 있어 틈이 생겨버린다. 내 앞에 벌어지는 삶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지나간 감정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이 내가 느낀 관계의 윤리였다. 나를 세우는 중심이 외부의 관계에 의지하지 않도록 매 순간 마음을 잘 흘러가게 두고 흘러들게 하는 것.


인간관계란 내 안의 마음을 커다랗게 확대한 것과 같다. 신기하게도 내가 무엇인가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상대방이 그 두려운 마음을 드러내게 했다. 그때마다 무의식 속에서 좋음과 싫음에 대한 마음을 무심의 상태로 만들어 내게 오는 인연의 물결과 흐름 속에 매 순간 놓아주는 것이 나를 잃지 않는 방도인 것 같았다. 감정에 고착된 모든 마음의 병은 조화에 균열을 내고 꽉 막힌 곳으로 몰아가 흐름을 막아놓는다. 그 안에서는 사소해 보이는 일에서도 크게 동요한 채 외부의 그림자가 실체라 여기게 된다. 한참이 흘러서야 내 안의 좋고 싫음에서 비롯된 마음의 태도가 음지와 양지처럼 시시때때로 변화하여 현재와 결합한 채 부조화를 만들었음을 깨닫는다.


자기 자신의 마음에 스스로 자득한다면 다가오는 우연에 대해 달콤한 환상을 갖지 않으며 갑자기 시들어진 인연에 대해 마음 아파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의 결과에 얽매이기보다 자신의 자득한 마음이 우선인 까닭이며 그 마음을 지키는 일이 도와 하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도를 간직한 자의 기쁨은 변화하는 외부상황에 의지하고자 하지 않아 어느 곳에서나 편안하게 처하면서도 그 뜻을 지켜낸다.

견고해 보이는 밖의 세상은 잘 들여다보면 허점과 구멍투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잘 쌓인 탑이라고 생각되어 온 세상은 늘 우연의 확률이 지탱하고 있는 무너지기 쉬운 비실체였다. 언제든 사라지기 쉬운 세상의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중용의 마음을 지니는 것. 각자의 마음속 허상일 뿐인 세상의 소용돌이에서 오로지 나의 도로써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만이 오늘 내가 지켜야 할 진리였다.

한 인간의 삶은 결국 세상이 아닌 자기 내면의 진리를 체험할 뿐이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성인 중에서도 공자의 제자 안연이 생각난다.

안연이 특출 나게 뛰어난 제자가 아니었음에도 공자는 수많은 제자 중에서도 안연을 가장 아꼈다고 한다. 안연은 도를 재현한 인물이었다. 그는 매우 가난했지만 마음속에 도를 품고 공자의 '인(仁)'을 실천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마음 안의 도의 흐름을 체득한 안연은 외부환경과 상관없이 자신 안에서 스스로 자득할 줄 아는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었다. 삶의 곤경 속에서 자기 발생적인 감정들을 억제한 것이 아니라 외부와 잘 조화 맺고 자신의 마음을 낙관과 더 나은 가치에 뜻을 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중용(中庸)이란 과함과 부족함으로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것으로써 항상 도리에 맞게 살아가는 유교정신을 뜻한다. 안연은 중용으로써 자기 안의 중심에 완벽히 들어선 사람이었다.


안연의 '자득'은 삶을 살아가는 진리이면서 인간관계속에서 무위하며 인을 펼치는 마음일 것이다. 도와 일치한 즐거움을 아는 자는 매 순간의 일희일비에 자신을 쉽게 내버리지 않는다. 세상에 떠도는 모든 감정들이 자신이 아니기에 세상의 곤경과 운명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도의 흐름인 순수한 자득 이외에 모든 감정은 세상의 것이며 중용을 넘어선 결과란 자기 자신에게 없는 세상이다. 안연은 세상의 문제들과 멀어져 인을 뼛속 깊이 체득한 공자의 유일한 제자였다.


안회를 보며 공자가 한 유명한 말을 남겨본다.

'안회는 그 마음이 석 달 동안이나 인(仁)에서 떠나지 않지만, 다른 제자들은 길어야 하루나 이틀 머물 뿐이다.' - 논어


대나무 바구니에 밥 한 덩이, 표주박에 물 한 바가지로 누추한 골목에 살아도 한평생 마음속에 도를 품기 위해 자신의 기쁨을 바꾸지 않았던 안회의 마음이 지금 이 시대에 모든 결핍된 마음들을 채우는 귀중한 진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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