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들여다보면 내 안에 뿌리 깊은 정체성에서 벗어나고 싶은 갈망이 있었던 것 같다. 인간은 기억하는 존재이기에 그 기억들을 들여다보면 수용할 수 없었던 내가 있었던 까닭인지 종종 내가 모르는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새로운 곳으로의 이사나 전학, 자주 바뀌었던 직장에 대해서 나는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시작해야 하는 그 마음이 꼭 무겁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그저 담담히 하나의 정체성에서 다른 정체성으로 이동하는 느낌을 환영하듯 반길 때가 더 많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여러 요인으로 사회적 틀에 맞춰진 위축된 사고와 관성화된 신체의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마다 새로워질 수 있는 낯선 공간 안에서 새로운 이름을 호명받듯 내 안의 텅 빈 백지안으로 들어가 다시 나를 쌓아갈 수 있는 시간으로 자립하기를 바랐다.
나의 이십 대는 남들과 거꾸로 흐르는 시간을 보냈다. 오래된 고서를 좋아해서 공자의 '공'만 입밖에 꺼내도 고리타분하다고 하는 주위의 유교적 인식을 무릅쓰고 나는 묵묵히 공자나 불경, 노자, 장자, 등의 고전을 탐독했다. 그 시절 주위에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째서 홀로 고전을 읽으며 존재에 대해 궁금해하고 존재의 방향을 찾으려 했던 것일까.
삶에 목마름이 느껴질수록 나는 공자의 말들을 베껴 쓰고 마음에 적용하려는 무위의 시간이자 텅 빈 시간을 보냈다. 그때에 나는 다른 이들보다 인생을 한참 느리게 가는 듯해 보였지만 내 안의 영감들을 자라게 하는 시간이었다고 믿었다. 또래보다 현실적이진 못했지만 회상하건대 그 꿈의 크기가 현실적이지 못할 만큼 큰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좀 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현재의 내가 있는 세상에서 좀 더 나은 가치를 발견하고자 나 자신이 마음을 굳게 먹은 것이었으리라. 그렇게 보면 나의 이십 대는 단순히 무위의 시간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이 흡수할 수 있는 세상의 진리들을 통해 존재와 세상을 철저히 이해하려 했던 것 같다.
모든 내가 한 흔적들은 나의 정체성 어딘가를 배회하며 나의 마음의 일부를 이루고 내가 누군가의 의미가 되는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안을 통해 수만 권의 책이 들어왔다 나가고 그중에서는 기억나지 않거나 소중히 간직되어 있거나 불현듯 현재를 떠돌며 수많은 나를 이루어 하나로 화합하는 과정이 여전히 빈 여백처럼 남아주기를 나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