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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나'라는 느낌의 관찰

'나'에 대한 의식의 기원


어렸을 적 외할머니댁에 가는 길에는 늘 기차를 타고 갔었다. 그때마다 창밖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아름다운 시골풍경을 바라보았었다.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다 눈을 감고 있으면 창문밖에서 관통한 햇빛에 검은 형체들이 얼룩져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때에는 그것이 비문증(모기가 눈앞에 날아다니는 것처럼 느껴지는 증상) 인지 몰랐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나만의 '어떤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엄마는 이 증상에 관해 말을 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다면 꽤나 불편한 느낌일 것 같았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이런저런 추측을 해가면서 눈앞에 있는 기이한 움직임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듯한 이 특별한 증상의 소유자인 '나'라는 것에 초점이 옮겨지기 시작했다. 날파리 같은 것으로부터 그 초점이 '나'로 옮겨지는 순간 이상하게도 비문증이 거슬리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비문증보다도 그 바탕에 자리하고 있는 '나'라는 영역에 몰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비문증은 햇빛이 비친 창가에 눈을 갖다 대면 눈을 감고 있어도 잘 보였다. 비문증이 잘 알려지지 않던 시절, 비문증이 없는 사람에게 비문증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은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세계에서 온 내가 마치 그것에 대해서 어렴풋이 느끼고 있음에도 묘사하기 어려웠던 것과 같다.

어떠한 일이 실체적이지 않을 수록 그것은 개인적인 일이라고 여기게 된다.


'나'라는 존재는 단순히 호흡하고 말하고 귀로 듣는 기관들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작용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나를 이끌어 운용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인간본성과 우주의 도리를 '이(理)' 중심으로 연구하는 학문인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주자는(주자어류)에서 '이(理)란 만사만물이 그러한 이유이다.'라고 하였다.

그의 학문의 주요 개념은 이기론으로 모든 존재는 이(理)와 기(氣)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이(理)는 만물의 보편적 원리이고 기(氣)는 만물을 이루는 물질적 요소에 해당한다.

조선 성리학의 두 거장인 이황과 이이모두 주자학을 계승하였지만 서로 다른 입장에서 주자학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이황의 이기호발설과 이이의 이기겸발설이다.


이(理)는 나라는 인식이 시작된 곳이다. 사람들이 보고 있고 내 이름으로 나를 가리키는 물리적인 '나'에서 내 안에 있는 느껴지는 '나'로 옮겨가는 초점의 전환. 그 전환적 순간들은 순수한 아이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것은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있는 모든 원천에 고요히 안착한 느낌이어서 그 절대적인 기원지를 나의 무의식은 스스로 놓치고 싶지 않아 했다.

나라는 외현은 고정된 물리적인 세계에서 발생된 듯하지만 나를 나로서 있게 하는 것은 마음과 의지, 뜻이라는 좀 더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본성에서 결정된다.

비문증처럼 나에게만 보이던 세계가 사람들의 시야에는 없던 세계였듯이 나를 둘러싼 현상 역시 오직 나라는 느낌을 통해서 전달되고 사유된다. 나의 외부의 객관적 현실은 나를 통과해 나의 내부의 근원적인 진실을 드러낸다. 내가 나를 주시하면 내면의 큰 공간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모든 것에서 '이(理)'를 의식한다는 것은 대상을 발생하고 드러나게 한 만물의 커다란 본원에 직립해 들어서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理)'의 작용이 또한 모든 만물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내가 아닌 대상에 기꺼이 감응할 수 있고 주위의 세계에 합일하며 대상과의 합일 속에서 공감이라는 정서가 생겨난다.


삶의 보이지 않는 중심에 의지하다 보면 어느덧 문제라고 여겨지는 증상들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게 된다. 그러면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과 함께하고 점점 그것을 너머 창밖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어디서든 '나'를 의식하는 일은 혼자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외롭지 않게 한다. 만물을 이룬 보편적 원리인 '이(理)'는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자 내가 시작된 곳이면서 나의 내면의 마땅한 자리에 닿아 나를 발현시킨 가장 친밀한 정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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