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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만의 것이 지극하면 곧 세상의 그리움이 된다

윤편의 '죽은 껍데기'


하나의 춤동작이 내 것이 될 때가 있다. 여러 사람과 함께 똑같은 동작을 익히더라도 나의 주관적인 세계를 거치고 나면 다른 사람들과 다른 미묘하게 달라지는 특성들이 생겨난다. 낯선 동작에서 자연스러운 동작이 되기까지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부분이 나만의 특성과 춤의 본질을 함께 갖은 채 외부로 표출된다. 마침내 해내려는 동작이 표현될 때는 '그렇게 되고자 하는' 시도가 반복된 후 문득 '찰나의 순간 속 '에서 얻어진다. 그리고 존재는 '찰나의 순간'에 저절로 완성되어 나온 그 느낌을 자신의 주관적 감각에 존속시킨다. 결국 보이는 세계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설명이 아니라 그 느낌을 알아채는 것에 있다. 어떠한 기술이라도 기술은 그것을 연마하려는 '사람'을 통하지 않고서는 전달될 수 없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 개인의 특성과 화합하여 그 개인만의 감각 안에서 기술의 본질은 드러난다. 그 모든 이해는 직감의 세계이다. 기술을 익힌다는 것은 마치 끊는 점에 도달하는 것처럼 존재로 전달되는 과정 속에서 본질인 그 '찰나의 순간'을 알아채고 그 보이지 않는 원리를 자신의 직감으로 포착해 내, 감각의 형태로 빚어내는 것이다.



장자 외편 천도(天道)에 나온 이야기이다.

노나라의 왕이 책을 읽고 있었는데 늙은 수레바퀴 장인(윤편)이

"전하께서는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 물어본다.

왕이 "성인의 말씀을 읽고 있다" 대답하니

윤편이 말한다. "성인의 말씀이라면 이미 죽은 사람의 말이 아닙니까?"

왕이 "너 따위가 어찌 감히 성인의 글을 비웃느냐?" 하니

윤편이 이렇게 말한다.

신도 젊었을 때 수레바퀴를 깎았는데, 깎다가 너무 느슨하면 헐겁고, 너무 조이면 들어가지 않더이다.

그 미묘한 감각은 입으로는 말할 수 없고, 아들에게도 전해줄 수 없었습니다.

성인의 말씀도 그러합니다. 그들의 말로 다 전하지 못한 본질은 죽은 그들과 함께 묻힌 것입니다.

전하께서 읽는 책은 결국 죽은 껍데기일 뿐입니다.


윤편이 말한 '미묘한 감각'이란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도이다


공자는 순임금 이후 더 이상 성인의 도가 전해지지 않았다고 애석해하였다. 그 사람만이 그 도를 전해지게 할 수 있었던 까닭에 그 사람이 없는 지금의 세상에서 더 이상 도가 전해지지 않고 있는 것을 공자는 안타까워한 것이다.


기술의 작용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도이건 그 귀한 능력이 계속해서 지켜진다는 것은 그 기술을 기술이게 하고 그 도를 도이게 하기 위해 자기 내면을 주시한 통달함이 한평생 일관되었다는 뜻일 거다. 그래서 그 한결같은 마음이 귀하고 보기 힘든 도라고 이르는 것일 테다.

그 사람이 아니면 그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고 공자는 절망하듯 말하였지만, 곧 다시 끊어진 도를 자신이 잇겠다는 공자의 각오처럼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 안의 아름다운 희망을 품게 되는 또 다른 동기가 된다. 윤편의 말처럼 그들이 말로 전하지 못한 본질은 죽은 그들과 함께 묻힌 것이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그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 삶 안에서 살아냄으로써 그 도를 다시 희망할 수 있는 것이다. 말로 전해지지 않는 그 진리를 성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운명을 직면함으로써 말이다.



맨 처음의 빛 역시 빛이 없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빛이 없는 곳에서 빛이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품고 그리워한 어떤 원인이 저 스스로 빛이 된 것처럼 존재는 앞서간 인간이 남긴 그리움 속에 자신의 뿌리를 열망하다 삶이라는 수면에 자신과 닮은 그리움을 반사시킨다.

어떤 그리움이 지극해지면 행동하게 된다. 존재의 변화 속에서 우리가 가슴에 품은 그리움과 우리의 삶은 닮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닮아감으로써 알게 된다. 세상에 그리움을 주고 앞서 간 존재들이 말하려고 했었던 본질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이제 그 본질을 그리워하는 것만이 아니라 살아냄으로써 마음과 마음으로만 전해지는 도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비록 성인이 말하려는 본질은 성인과 함께 영원히 땅에 묻혀버렸지만 그리움의 형태로 이 세상에 무구히 흘러 다른 존재를 깨닫게 함으로써 성인이 말하려고 했던 그 본질과 마주 서게 된다

우리가 읽는 책들은 비록 죽은 껍데기겠지만 우리의 마음은 처음부터 성인의 마음과 같은 것이기에, 그 죽은 껍데기 속 닿을 수 있는 한 글자 속에서라도 나의 뿌리에 닿아지는 것이 있다면 내가 지닌 마음의 미묘한 감각이 생생하게 작동할 수 있다. 그것은 도란 처음부터 대상에 의존한 도가 아니라 나를 통해서 실행되어지는 것이기에 나의 삶이 어떤 이에게 그리움으로 남을지 아닐지 또한 지금의 세상을 살고 있는 나에게 온전히 있는 것이다



순임금: 중국 고대 전설속의 성군(聖君)중 한명으로 요순시대(堯舜時代)라 불리는 이상적인 통치시기를 이끈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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