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라는 꿈
무엇인가를 막연히 믿는다는 말은 새로운 '내'가 시작될 수 있는 씨앗을 심는 것과 같다.
현실을 살고 있는 내가 나의 삶을 막연하게 믿는다는 것은
매일밤 내가 꿈속에서 온갖 위험에 빠지면서도 안전하다고 믿는 꿈을 향한 기본 정서와도 같다.
낭떠러지에 떨어지더라도 내가 죽는 것이 아님을 꿈속에서 아는 것
내가 꾸는 꿈이 곧 깨어날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나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결국엔 나의 길을 찾아낼 것임을 아는 깨어있는 영혼.
삶에서 영혼이 갖는 힘은 언제나 자기 충족적이다.
꿈은 현실을 살면서 나의 소망들을 자각한 채 믿음 안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펼쳐내고 있는 삶의 모습과 같다.
'장자' (제물론) 중 -호접지몽(胡蝶之夢)이다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자신의 뜻에 맞춰 즐겁게 날았다.
자신이 장주라는 것도 몰랐다.
그러다 문득 잠에서 깨니, 분명히 장주였다.
그런데 과연, 장주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장주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꿈을 꾼 것이 장주인지 나비인지는 오직 현실을 지어내는 믿음의 주체에 달려있다.
내가 나비라고 믿는 순간 나비의 현실이 펼쳐지고
내가 장주라고 믿는 순간 장주로서의 현실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눈앞의 현실은 존재가 꾸는 또 다른 꿈이다.
눈앞의 상황이 뿌연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곳에 서 있어도
자신의 삶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믿음으로 인해서 길이 생긴다.
꿈이란 하루 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영혼과 교감하는 일인 것처럼
현실 속 설명할 수 없는 이 믿음의 기저엔 나와 영혼이 합의한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언제든 변할 수 있는 이 현실의 장면 앞에서나의 한결같은 삶에 대한 믿음은
나의 영혼이 어떤 한순간이라도 나의 삶을 방임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 속에서 나왔다. 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은 깨어있는 삶에서 온다.
불리한 현실 앞에서 내 삶의 가장 좋은 것을 주는 삶이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결국 내게 올 것이라는 것을 아는 믿음.
삶 역시 존재의 믿음이 키워낸 거대한 꿈일 것이기에
존재의 무의식은 '자기 원인'을 무너뜨릴만한 현실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무의식의 방향은 삶을 따라 펼쳐지는 것이고 삶은 에너지이기 때문에
그 에너지를 흐르게 하는 것은 우리가 자기 자신 안에 심어놓았던 막연한 믿음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믿음으로 인해 존재는 빛이 되기도 하고 어둠이 되기도 한다.
믿음만이 유일한 현실 앞에서,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곳에 남겨진 존재는
긴 꿈을 꾼 것처럼 눈을 비비며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