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수만 가지 대답 속에는 사람이 있다.
어렸을 적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새로 태어난 생명들의 첫 대면을 설레어했던 이유는 한 어미 안에서 서로 다른 기의 조화를 가지고 태어난 모습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성장하면서 뚜렷해지는 개체의 성격을 보고 있노라면 서로 대비되는 다름이 각자가 지닌 앞으로의 운명과 삶을 비추는 '기미' 같아서 불현듯 경이로울 때가 있다. 같은 배속에서 나왔음에도 어떤 생명은 느릿느릿하면서 태평한 기운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생명은 재빠른 기질에 좀처럼 한 곳에 가만히 있지 못한다. 외양은 비슷해 보여도 어떤 것은 체력이 약해 보이고 어떤 것은 다부진 체격과 근성이 엿보인다.
때로 생명이 지닌 현재의 상태는 미래를 보여주는 뚜렷한 징후가 된다. 그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태도나 기상. 감수성은 관찰자로 하여금 그 사람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한다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자로가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앞장서서 행하고 백성을 수고롭게 하라."
자로가 더 묻자
"게으르지 말라."
염유가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앞장서서 행하고, 백성을 공경하라."
염유가 더 묻자
"진심을 다하라."
공자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 똑같은 방식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제자들 저마다의 성격과 자질에 따라 같은 질문에도 개인의 부족하고 과한 부분에 맞춰 그 대답이 서로 달랐다.
공자의 제자 자로는 평소 성격이 급하고 직선적이었고 염유는 성격이 조심스럽고 유순한 까닭에 그들이 같은 질문을 던졌음에도 공자의 대답하는 바가 달랐다.
그 대답이 서로 다름은 제자들을 향한 섬세한 관찰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공자의 교육방식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교육이 아닌 교육받는 주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달라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특성을 이해하는 기다림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 그릇에 맞게 처방이 달라야 했으며 개인의 부조화를 먼저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공자는 평생 수많은 제자들을 따르게 했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자질을 억제하거나 격려하여 더 조화로운 방식으로 세상과 대면하게 하였다.
어렸을 때마다 나의 기질은 허약하여 자주 아프고 학교에 결석을 밥먹듯이 했다. 내 의지와는 반대로 타고난 기질이 약한 것에 답답했었다. 하지만 그 덕에 나는 주위의 친구들과 가족의 관심을 받고 자랐다. 나의 개인적인 약함이 주위의 도움을 얻어 튼튼한 기질로 바뀌었을 때에 나는 어느새 내가 약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생각을 잊게 되었다.
어쩌면 인간이 완전하지 못한 상태로 이 세상에 나온 것은 주위의 가족이나 친구, 좋은 스승이라는 인연을 통해 그 부족한 기질이나 성품을 바로잡고 운명을 극복함으로써 점차 세상과 조화를 이루어 가려는 뜻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면서 반드시 한 번쯤은 누군가의 도움을 얻기 마련이다. 그 도움받은 마음이 나에게 좁혀진 시선을 열고 다른 누군가를 돕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한쪽으로 치우친 상태로 태어나 주위의 사람들을 통해서 조금씩 완벽해지는 마음의 열림을 배운다.
삶의 어느 순간, 사람들 속에서 문득 가슴이 따듯해지는 이유는 세상에 어울리는 조화상태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영혼의 신호일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세상은 나의 부족한 면을 대면하는 사실마저도 아름다운 일인 것이다.
어디에선가 새로운 인연을 통해 내가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어딘가 부족하지만 분명 어디에선가 나를 향해 다가올 스승이 생길 것이고 나를 따르는 주변의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어렸을 적 아플 때마다 엄마와 친구들의 관심을 받은 것처럼 인간이 가진 개인만의 약한 특성은 주위의 환경을 통해 바뀔 수 있으며 그때의 열린 마음이 스스로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이 지구에서의 삶이 추구했던 진정한 배움인 것 같다.
공자가 제자 한 명 한 명을 바라본 마음에는 희망이 있었다.
인간이 희망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마음에 있다.
가슴속에 희망을 품을 때 가장 넓은 세계가 열리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잃어버린 희망을 대신 가슴에 품고 있어 주는 것'
-이것이 제자를 바라보는 스승의 마음일 것이다.
나의 내면이 조화롭게 완성되어 가는 길에는 '나'라는 존재를 나보다 먼저 희망적으로 바라본 내 옆의 누군가가 있었다. 그들이 세상의 미아가 된 것 같은 표정으로 서 있는 내게 잠시 스승의 시선이 되어 머물러준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다정한 말 한마디나, 함께한 침묵 속에서, 내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 일이나 건네준 책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에 닿은 기억은 애정 어린 '시선'을 남기고 간 사람들의 자국들이다.
그것은 삶을 살아가면서 약해진 순간에 나를 조화롭게 이끌어주는 힘이 된다.
조화로워진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존재를 희망하고, 또 희망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