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셰어하우스 만들기 2화
집사람사랑단 셰어하우스는 끝났어요. 계약이 만료되면서 뿔뿔이 흩어지게 됐습니다. 애인 집으로 들어가거나, 독립을 하거나, 아예 한국을 떠나거나.
헤어짐을 결심한 친구들의 이야기도 이해가 되었어요. 그래서 "그러지 말고 나랑 같이 살아 ㅠㅠ" 한 마디 할 수 없네요.
혼자 다시 갈림길에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봤습니다.
혼자 살래? 아님
새로운 사람과 같이 살래?
1. 쾌적한 집에서 살고 싶어
집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 적 있나요? 침대 하나 두면 끝나는, 너무 좁아서 밖을 나돌아 다니게 만드는 그런 집은 이제 질리지 않나요? 집은 집다워야 하고, 안식처가 되어야 해요.
방과 부엌의 분리는 필수. 일과 식사의 균형을 챙겨야 하니까. 작업하다 환기가 필요할 때에도 굳이 카페에 가기보다는 집 안에서 해결하고 싶어요. 방과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면 돈도 아끼고, 시간도 아끼고.
방은 조금 작아도 괜찮아요. 대신, 거실과 부엌을 오가며 열 걸음은 더 걸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2. 하지만 주거 비용은 줄이고 싶어
뚜렷한 벌이 없는 백수. 지금 집은 월세 45만 원 + 관리비, 공과금이 20만 원 내외. 백수도 사치 좋아하지만, 이 정도면 너무 사치죠.
그래서 청약을 열심히 넣었지만.. 신혼부부 아니면 바라지도 말라는 뜻 같아요. 그런다고 결혼에 관심이 생기는 건 아닌데 ㅋ
혼자 사는 자취 선배님들께 주거비용을 물어봤는데 다들 저랑 비슷한 주거비를 내고 있더라고요. 월세를 확 줄이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럼 내가 직접 셰어하우스를 만들면 어떨까? 여긴 셰어하우스 업체가 껴서 좀 비싼거지, 직접 만들면 월세도, 공과금도, 식비도 줄일 수 있겠죠. 혼자 사는 것보단 훨씬 경제적인 선택 같아요.
3. 집순이고 내향인이지만 가족은 필요해
요즘 저는 집 밖에 잘 안 나가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부터 외로움을 덜 타게 됐어요.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들고, 누군가 공감해 주는 게 위안이 되더라고요.
또, 약속도 잘 안잡게 되었어요. 괜히 불편한 사람, 불편한 상황에서 기빨리느니 집에서 혼자 놀거나, 친구들이랑 구글미트로 만나면 되니까요.
그래도 사람의 온기는 필요한 게, 같은 지붕 아래, 벽 건너편에 누가 있다는 그 감각만으로도 안심이 돼요. 일어나서, 또 출퇴근하는 친구들과 잠깐 마주칠 때 인사라도 하며 입에 거미줄 치는 걸 모면해요.
가끔씩은 밥도 같이 비건으로 해 먹으며 소소한 행복을 나눠요. 지난 12월 계엄령이 떨어졌을 때엔 분노, 절망, 좌절을 공유하고 집회에도 같이 나가면서 무력감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런 일이 잦지는 않지만, 누가 우리집 비번을 누르는, 예상치 못한 순간 소름돋게 생사의 위협을 느낄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도 누가 같이 있으면 그나마 덜 무섭고요.
뭐, 언젠가는 혼자 살고 싶어질 수도 있고, 혹은 어느 날 갑자기 사랑에 빠져서 동거하고 싶은 사람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제 일에 더 집중하고, 가끔은 같이 사는 사람과 대화하는 이 삶을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은은하지만 확고해요.
그래서 큰 고민 없이,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쾌적한 공간, 합리적인 비용, 사람의 온기 - 셋 중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할 수 없으므로,
셰어하우스 형태를 계속 유지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했을 때, 같이 살던 친구들이 말했어요.
"우리가 정말 운이 좋게도 잘 맞았던 건데, 다음엔 안 맞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잖아."
제가 속한 비건 커뮤니티를 믿어요. 어딜 가나 빌런이 있는 것도 맞고, 그래서 힘들어본 적도 많은데. 그래도. 일이든, 인스타그램이든, 하다못해 오픈 채팅방에서 만난 사람이든, 비건은 대체로 괜찮은 사람이 많아요. 커뮤니티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다 실패하는 확률이 적었죠. 그래서 큰 걱정은 없어요.
그리고 사람은 다 안 맞기 마련. 하다못해 혈연으로 맺은 가족도 그런 걸요. 그러니까 누굴 만나든 맞춰나가는 수밖에 없어요. 퍼즐처럼 완벽히 맞는 사람은 없지만, 함께 살며 맞춰가는 과정이 삶의 또 다른 배움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안 맞으면, 그럼 뭐 헤어지면 되죠. '같이 살기로 했으면 꼭 끝까지 함께 해야 해' 이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세 달 정도 살았는데도, 우리 제법 안 맞는군요. 당신의 앞길을 응원합니다.' 연인, 친구 사이가 멀어지듯, 동거도 자연스레 헤어질 수 있죠.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만나고, 필요가 끝나면 헤어지는
가족보다 솔직한 관계가,
새로운 가족이
우리에겐 필요해요.
친구들의 조언을 따라,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같이 사는데 불편함 없는 하우스 메이트를 모집하는 데 조금 더 애써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이건 나중의 일이고. 당장 집부터 구해야죠.
직방을 켜서 난생처음 집을 알아보고 부동산에 전화를 하고 임장을 시작했어요. 막연한 기대와 현실적인 고민이 공존했습니다.
그런데 첫날부터 마음을 빼앗길 줄은 몰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