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기수
백 가지의 해가 있고 이익은 하나도 없다. 백해무익. 그런 것이 있을까?
한때, 흡연 할 때는 그랬다. 담배가 없었다면 인류의 절반이 정신병에 걸렸을 거야. (금연한 지 10년째다) 이 생각 지금도 유효하다. 한 모금의 연기 속에 날려 보낸 폭탄이 얼마나 많았던가.
담배보다 술이 더 해롭지 싶다. 담배는 혼자만의 문제지만 술은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한다. 이렇게 말하니 꼭 남 얘기 같지만 내 이야기다. 술 많이 마시고, 여러 사람, 대부분 가족에게 실수했다.
예전에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할 때 대원들에게 말하곤 했다.
‘스카우트 대원은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머문 자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정성을 들였다. 텐트 고정했던 팩 박은 자국부터, 모닥불 흔적, 조리 흔적 등을 깨끗이 씻어 냈다. 쓸고 닦다 보면 마음의 흔적까지 씻겨 내려갔다.
아버지에게 흔적을 남겼다.
이빨로 잘근 깨물까? 송곳니로? 아냐. 앞니로 깨물어야 하지 않을까? 물어 뜯는 것이 더 쉬울 것 같다. 아프면 어떡하지? 깨물거나 물어뜯는 것은 너무 잔인한 것 같아. 식빵을 뜯는 것처럼 쉽게 뜯긴다면 좋겠는데….
연필 깎는 칼로 살짝 베는 것은 어떨까? 참, 어느 손가락을 하지? 검지가 쉬울까? 새끼손가락?
기수는 아까부터 편지지를 앞에 놓고 편지에 담을 내용보다는 방법에 막혀 망설이고 있다. 편지지도 그렇지. 하필 연애편지에나 어울릴 꽃 편지지밖에 없으니 조금 난감한 기분 속에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앉아 있다.
환승이와 진식이는 벌써 나갔다. 두 친구는 눈만 뜨면 나가 버린다. 신기하게 아침밥을 안 먹고도 괜찮은가 보다. 부엌 기둥에 걸린 거울을 보며 단장하기 바쁘게 나간다.
도시에 이런 집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흙으로 만든 담벼락에 멍석이 걸려 있고, 담벼락을 쌓으면서 넣은 대나무가 오랜 시간을 버티며 더 이상 흙을 보듬지 못하고 떨어뜨려 갈비뼈처럼 드러난 사이로 방안이 살짝 들여다보이는 집을 용케도 찾았다.
이런 집이니 열일곱 살 아이들에게 월세를 주었겠지. 환승이네 자취방에 들어온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오늘은 가게가 문을 닫는다. 사장이 일이 있다고 안 나와도 된다고 해서 쉬는 거다. 두 친구가 빠져나간 방은 고요했다. 내내 마음속에 머물던 일을 오늘은 해야겠다. 아침 햇살이 화살처럼 들어오는 사이로 골목을 부지런히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지금쯤 어머니는 어떻게 계실까? 동생들은. 오빠가 도망갔다고 생각할까? 벗어났다고 생각할까? 어린 동생들 생각이 많이 난다. 떠오르지 않았으면 하는 아버지 생각이 더 난다. 아버지는? 아마, 틀림없이 이 시각부터 취해있을 거다. 풀어진 눈, 몸을 가누지도 못하면서 어머니 뒤를 쫓아다니며 부끄러운 욕을 퍼붓고 계실 거다. 틀림없어. 조두램이 논쯤일거다. 어머니는 애써 무시하면서 부지런히 땅을 파헤치지만, 욕설과 힘든 노동에 땀인지 눈물인지 모르는 것에 눈시울이 붉어져 갈 거고.
오늘은 기필코 써야 해. 오늘 중으로 골목 입구 우편함에 넣으면 금요일 전에 들어가겠지. 이 편지를 받으면 효과가 있을까?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아버지가 이 편지를 받는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이렇게 예쁜 편지지에 피를 묻힌다는 망설임은 전혀 없다. 혈서를 쓴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버지한테 내 마음을 전해야 한다. 이렇게 절실하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혈서는 이렇게 썼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그해 열일곱 봄날. 지금은 남아 있지 않아서 몇 장을 썼는지 모르겠다. 아마 두 장이나 세 장이지 않았을까 싶다. 꽃 편지지. A4보다 작은 편지지였다. 연필 깎는 칼로 오른손 검지 지문 아래를 가로질러 벴다. 아프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장감이 든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버지가 이 편지를 읽고 변했으면, 금주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썼다.
생각만큼 피가 줄줄 흐르지 않았다. 어떤 글자는 굵고 또 어떤 글자는 뭉뚱그려지게 써졌다. 오랜 시간 썼다. 아마 이렇게 시작했을 거다.
‘금주
아버지 술 그만 잡수세요. 아버지 술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하세요. 술 좀 끊으세요. 저도 학교 가고 싶어요. 등등’
바로 아래 동생인지 그 아래 동생인지를 언급하면서 그 녀석이 아버지 술 마신 날은 무서워서 집 밖 울타리 아래 쭈그리고 앉아 운다고도 썼다. 그렇게 썼다. 다 쓴 편지를 오래도록 들여다본 기억이 있다. 피가 마른 편지는 변색된 물감으로 아무렇게나 쓴 것처럼 보기 싫었다. 혈서라고 아래에 쓰고 싶을 만큼 혈서다운 느낌이 없었다. 편지지를 접어 봉투에 넣으니 두툼해져서 좋은 모양이 안 나왔다. 봉투 주소는 볼펜으로 썼다. 고향 주소를 적는 기분이 묘했다. 그동안 우리 집 주소를 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이름 뒤에 귀하라고 썼는지 귀중이라고 썼는지 모르겠다. 중학교 졸업 지식으로는 최상의 존칭을 썼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불효막심한 짓을 했다.
편지를 받고 어떤 심정이었을까?
살아가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