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짐바리

11. 기수

by S 재학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으로 시작하는 노래.

조용필의 꿈.

(그 옛날 이 노래 얼마나 불렀는지)

도시의 이면은 어둡고 차갑다.

그런 도시를 찾아온다.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온다.

기수도 왔다.

사춘기 때는 도시가 왜 그리도 그리운지. 도시에 가면 무언가 기다릴 것 같은, 반겨줄 것 같은 기대에 부풀어 동네 앞을 달리는 버스를 바라보곤 했었다. 도시엔 마법사가 살 거야. 밤이 되면 그 마법은 더 활발히 움직일 거야.

그런 도시를 왔다.

기수에겐 사춘기의 야릇함도 도시의 자유도 누릴 여유가 없다. 가게는 사장과 기수 둘이 전부였다. 소주 만드는 회사에서 퇴직한 사장은 자신이 다녔던 회사에 원료를 공급하는 가게를 차렸다. 알코올 납품이었다. 트럭으로 실어 나를 만한 양은 아니었다. 짐바리라 부르는 자전거에 적게는 두 통에서 많이 실을 때는 여섯 통씩 실어 날랐다.

대부분 사장이 싣고 갔다. 그러면 기수 혼자 가게를 지켰다. 가끔 대학 다니는 사장 아들이 오기는 했지만 일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한 번 둘러보고, 아무런 말도 붙이지 않고 횡하고 가버렸다.


사장과 함께 있든 기수 혼자든 기수 자리는 언제나 가게 밖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 들락거릴 공간만 빼놓고 물건이 천정까지 닿아 있고, 전화기 놓은 작은 책상에 의자 하나인 자리는 사장 차지였다. 기수 공간은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맞은편 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하면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바라보았다. 내리는 사람들은 바쁜 걸음으로 사라졌다. 그저 사람들 바라보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열일곱 소년에게 도시의 작은 의자는 무료했다. 손바닥만 한 가게 바닥을 물걸레질하는 것 잠깐이면 끝났다.

짐바리가 있네? 사장 짐바리가 눈에 띄었다. 닦았다. 담벼락에 수도꼭지가 나와 있어 어렵지 않았다. 전화기 옆에서 졸던 사장이 나오더니 번쩍거리는 자전거와 기수를 번갈아 쳐다봤다. 쓸데없는 일을 했다는 책망과 뜻밖이라는 표정이 섞였다고 기억한다.

그 자전거를 기수가 타게 되었다. 짐바리는 덤프만큼 거대했다. 이제 중학교 갓 졸업한 아이에게 덤프트럭을 안기다니. 엄청난 장난감을 선물 받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도 잠깐, 왕성한 호기심과 뿌듯함이 어깨를 타고 올라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모두 사장의 치밀한 계산이었지 싶다.

지난 두 달 동안 여성용이라 부르는, 앞에 바구니가 달리고 발을 앞으로 해서 타는 자전거가 기수에게 주어졌다. 그걸로 사장의 짐바리 뒤를 열심히 쫓아다녔다. 그 시간이 전수의 시간이었나 보다. 사장은 짐바리로 도로를 천천히 가로질러 다녔다. 어떤 자동차보다 우선권이 있다는 태도로, 간혹 빵빵거리는 자동차가 있어도 못 들은 척, 안 들리는 척 무시하는 것도 멋있었다. 어디서 멈춰야 출발이 쉽고, 얼마만큼 뒤에 있는 자동차는 조심해야 하는지, 어떤 차는 무시해도 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두 달이면 전수에 충분한 시간이다. 더군다나 몸으로 익힌 것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말 한마디 없이 가르치다니. 사장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물론 거래처와 그 가게의 사장 얼굴도, 기수처럼 심부름해 주는 아이의 얼굴도 익혀야 하는 것이 먼저였지만 둘 다를 동시에 해냈다.


드디어 사장의 수업이 끝났다. 짐바리로 대광상회를 갔다 오란다. 대광상회? 부인이 사장인 가게, 사장은 일꾼이고 부인이 사장이었다. 말도 많고 표정도 맘에 안 드는 그 사장네라니. 사람 깔보는 (우리 사장을 무시한다) 눈빛이 별로인 여자였다. 무슨 상관이야. 분홍색 자전거가 아닌데. 나도 짐바리를 타고 간다.

사장은 배달통을 여섯 개씩 싣고 다녔다. 뒤에서 보면 머리 꼭대기만 보였다. 통 여섯 개를 옮겨 놓으니, 사장이 웃으며 두 개라고 한다. 사장도 웃을 때가 있네라는 생각을 하며 짐바리 옆 고리에 한 개씩 걸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pz4zYFYjZo&list=RDzpz4zYFYjZo&start_radio=1


출처 Youtube 조용필 - 꿈 (1993)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버지에게 남긴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