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기수
기봉이 형은 가끔 다락에서 자고 갔다. 잔뜩 술에 취해 철공소 문을 발로 차면 다락에서 내려가 열어 줘야 했다. 기수 몫이었다. 그 시간이 한밤중부터 새벽까지 맘 내키는대로다. 여자 친구 자취방을 가는데, 가끔, 그러니까 싸웠거나, 여자 친구가 야간작업(봉제공장을 다녔다)으로 바쁜 날은 다락으로 올라왔다.(다음날 본인이 말을 해서 안다) 술이 엉망으로 취해 사다리에서 미끄러질 때도 많았다. 취했어도 그 형이 오면 좋았다. 상수 형(형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하고 있을 때는 괴로웠다.
‘야, 라면 끓여와’
‘야, 과자 사와.’
나중에는 얀마로 변했다. 만만히 들어줄 기수가 아니다.
‘싫어!’
거절할 때는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간단명료하게 잘라야 한다.
뭐, 이새끼가~부터 시작해 서로 망치를 들고 대치하길 몇 번인가 했다. 알고 보니 그 애는 사장님 사촌이라고 했다. 사실 선반 다루는 솜씨도 별로여서 큰형한테 맨날 혼났다. 나름 텃세와 기강 잡으려 한 것이 맘대로 안되어 갈수록 심술이 심해졌다.
상수와 다툰 날은 다락을 내려와 걸었다. 그래봤자 동네를 걷는 것이 전부였다. 어두운 철공소 골목을 지나면 제기동이 나왔다. 오래된 블록 담장을 따라 신설동 전철역까지 걸었다. 차가 다니는 길 뒤 작은 길로 들어가면 붉은 벽돌집이 이어졌다. 저녁 짓는 냄새, 가끔 피아노 소리도 들렸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만큼 걷고 돌아오면 둘째가 남긴 흔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베개가 다락 아래로 날아가고 슬리퍼가 없어졌다.
끝까지 상수에게 굽히지 않았다. 삶이 행복한 것은 가끔 행운을 만나기 때문이다. 두 달인가 지나고 그애가 자취방을 얻어 나갔고, 기봉이 형은 아예 여자 친구 자취방으로 들어갔다. 다락에 기수 혼자 남았다. 더 이상 깜깜한 골목을 걷지 않아도 된다.
기계가 멈추고 일과가 끝난 철공소는 고요속으로 빠져 들고 기수의 왕국이 되었다. 가방에서 사전을 꺼냈다. 중학교 졸업 때 이사장상으로 받은 수학, 영어 사전이다. 잠시 삶의 몸부림 속에 잊힐 수도 있는 단어가 곧바로 떠 올랐다. 통째로 외우자는 생각으로 A부터 외워 나갔다. 깨알같은 글씨로 단어장을 만들다 잠시 생각을 멈추면 부모님 생각, 동생들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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