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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송이

19. 기수

by S 재학

낙천적인 성격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지 금송이 가르쳐 줬다. 언제나 웃고 떠드는, 심각함이 없는 녀석이었다. 어쩌면 기수와 다른 성격 때문에 더 친해졌을까? 둘은 순식간에 단짝이 되었다. 일할 때도 밥 먹을 때도 작업 끝나고 다락에 올라갈 때까지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금송은 성격만큼 부지런했다. 일요일이면 남산으로 효창공원으로 돌아다녔다. 나팔바지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건들거리는 금송 뒤를 따라가다 보면 말로만 듣던 곳이 막 나왔다.

‘너 여기 와 봤어?’

‘아냐, 오늘이 처음이야.’

열일곱 살. 교복을 입어야 할 때였다. 금송과 기수는 교복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머리가 길었다. 또래와 다른 모습으로 불편했다. 어색함과 기죽지 않으려는 노력이 과장된 행동을 불러왔을까? 극장에 들어가는데 일부러 새치기하는 거라든가, 버스에서 학생표를 내면서 운전기사를 빤히 쳐다본다든가 하는 것 등. 금송은 그런 행동을 많이 했다. 그도 아마 혼자였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뭉치면 강해진다. 강해진 둘은 철공소에서 더 이상 외톨이가, 상수의 화풀이 대상도 되지 않았다.

비 오는 일요일 갈 곳이 없었다. 때에 전 이불에 들어가 단어장을 넘기는데 옆에서 우두커니 천정을 쳐다보던 금송이 말한다.

‘야, 나가자. 고기 사줄게.’

대폿집. 처음이다. 유리창에 빨간 페인트로 막걸리, 돼지고기라고 쓰여 있는 문을 밀고 들어갔다.

‘돼지고기 두 대랑 막걸리 한 주전자 주세요.’

(그때는 돼지고기 한 대 두 대 그랬다)

금송이 거침없이 주문하는 것을 보며 막걸리가 나오면 마셔야 하나 아니나 고민을 했다.

연탄불에 고기가 익어 가는 동안 담배를 두 개비나 피운다. 평소와 다르게 말이 없다. 주전자 반 넘게 마셨는데 여전히 창밖만 쳐다본다. 세 번째 담배를 만지작거리던 금송이 별안간 울기 시작했다. 우는 금송이 앳돼 보였다.



금송의 고향은 바닷가이면서 농사를 짓는 조그마한 어촌이라고 했다. 어업과 농사를 짓는 집의 비율이 반반이란다. 주변 네 개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읍내에 하나 있는 중학교에 간다. 금송도 당연히 읍내 중학교에 진학했다. 아이들은 십 리가 넘는 길을 거의 다 자전거로 다녔단다. 그 중학교를 졸업하면 울타리가 붙어 있는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인 시골이었다. 중학교에는 네 초등학교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이런 분위기가 고등학교까지 이어진 것 같다.


자전거를 밟으며 신나게 다니는 친구의 명랑 쾌활함이 고등학교 형들 눈에 띄었나 보다. 싹싹하고 말 잘 듣는 동생이 예뻐서라기보다 심부름 역할로 찍힌 것 같다. 형들은 금송에게 여러 가지 특권을 주었다. 만화방에서 벌거벗은 사진이나 그림도 보여주고 심부름으로 사다 준 담배 맛도 알게 해 주었다. 형들이 그들만큼이나 불량스러운 여자아이들과 어울려 바닷가 소나무밭에서 술을 마실 때면 망도 봐주었다. 달콤함에 같은 편이라는 착각에 빠질 즈음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받았다. 형들의 용돈으로 팔려 갈 자전거를 옮겨다 주는 일, 형들의 자전거인 줄 알았단다.

‘야, 문구점 앞에 있는 자전거 좀 갖다주라.’


그렇게 해서 친구는 자전거 절도범이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다. 하나밖에 없는 고등학교를 자전거 절도범이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금송은 그렇게 고향을 떠났다.

‘동렬이 형이 자기 거라고 했어. 난 그냥 갖다 만 준 거야.’

꺽꺽 트림인지 울음인지 친구는 계속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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