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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배원 Jul 17. 2024

나의 불행이 누군가의 안도가 되어

쇼코의 미소, 최은영


   최은영의 등단작이 포함된 7개의 단편 소설집 <쇼코의 미소>. 워낙 인기 있었기도 했고, 최은영 작가의 작품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독서 소모임에서 읽게 되었을 때 내심 기뻤다. 책을 사놓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보낸 지 1년 즈음되었는데, 이제야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밝은 밤>과 <내게 무해한 사람>을 재미있게 보아 기대되기도 했는데, 너무 기대를 많이 하고 봤는지 그만큼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등단작을 포함한 첫 소설집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베테랑적 면모를 기대하는 것도 염치없을지 모르겠다.



   <쇼코의 미소>의 표제작은 단연 '쇼코의 미소'이다. 중요한 제재 또한 그녀가 짓는 의미모를 미소이다. 이 단편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쇼코와 주인공 소유의 삶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듯하면서 동질적이라는 사실이다. 이 둘의 관계는 역설적이면서 모순적이다. 쇼코와 소유는 친구이지만, 서로의 행복보다는 그들의 좌절에 기뻐하고, 반면 주변인과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태생부터 다른 둘의 인생이 놀랍게도 닮았다. 이것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요 소재이자 서사로 이어진다. 최종적으로 둘의 미래는 평행선을 향했을까 혹은 맞닿았을까.


   내가 소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놀란 이유는, 누군가에겐 이 단편이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나는 사실 '쇼코의 미소'를 읽는 내내 그것이 따뜻하고 가여운 소설이라기보다는 애달프고, 섬찟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읽는 내내 서늘한 소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소유는 쇼코의 불행에 우월감을 느끼고, 쇼코는 소유의 가족을 얕보면서 자신도 다를 바 없다며 자조한다. 각자의 불행을 편지로 전시하고, 그들의 늪으로 서로를 끌어들인다. 이것이 내가 차갑다고 느낀 이유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소설을 통해 따뜻함과 연대를 느낀다. 여러분은 이 놀라운 단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한편 <쇼코의 미소>에서 가장 좋았던 단편으로는 '씬짜오, 씬짜오'와 '한지와 영주'를 꼽을 수 있겠다. <쇼코의 미소>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것은 두 인물 사이의 대립과 연대, 그리고 이어질 수 없는 관계로 인한 절망, 아직도 사회에 내재한 도처의 고통이다. '씬짜오, 씬짜오'에서는 투이와 '나'의 가족이 '한지와 영주'에서는 한지와 영주가 대립한다. 모든 단편에서 대척점에 선 두 인물이 제시된다. 갈등 투성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투이와 '나'의 가족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베트남 전쟁의 희생자였던 이들과, 일제 강점의 아픔을 가진 우리가 독일이라는 낯선 땅에서 만나 기댄다. 전쟁의 희생자들이 전범국에서 모인다는 설정이 신박하다. 더불어 그들이 힘을 합쳐 살아가는 모습은 가히 경이롭다. 하지만 개인의 아픔을 묵인해야 유지되는 위태로운 관계를 애타게 잡는 '나'의 엄마와 '나'의 모습이, 그리고 끝끝내 용서하면서도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투이의 엄마와 투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고통은 연쇄적으로 이어지지만, 우리는 애써 무시하며 현재를 살아야 한다. 그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한지와 영주'를 읽으면서는 왜 이 소설이 표제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좋았다. 대학원까지 가서 공부했지만 외지의 종교 시설에 머무르며 자신을 삭혀야만 했던 영주와 정해진 미래와 의무를 지켜야만 하는 한지. 그들은 잠시의 사랑 끝에 고통스러운 이별을 겪었다. 사실 사랑이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이별 따위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관계란 무릇 그런 것이다. 만난 지 하루 만에 지독하게 엮여, 단 두 달 만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연약한가. 여담이지만 작가가 남자인 한지에게 부여한 여성성 또한 인상 깊었다. 둘이 이어지지 않은 것은 어쩌면, 상황 때문이 아니라 여성과 여성의 사랑이라는 금기 때문일지도.  



   <쇼코의 미소>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며, 책을 읽으며 했던 나의 생각 몇 가지를 공유해볼까 한다. '씬짜오, 씬짜오'를 읽으며 "행복이 슬픔과 맞닿아있"고 "불행이 기쁨을 대변한다"는 구절을 보았다. 이는 타자가 나의 행복에 질투하고 불행에 안도하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공식에 의거하여 타인과 정서적 교류를 나누고 있을지 모른다. 친구의 슬픔에는 나의 더 큰 슬픔을, 친구의 기쁨에는 강렬한 질투를 동반하며 관계를 유지해 가는지 모른다. 이타심과 이기심은 한 끗 차이였다. 우리는 우월감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고 있을지 모른다.


   끝으로 총 세 권의 소설집을 읽으며 최은영의 작품이 주는 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최은영의 작품을 생각하면 기억이 안 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너무 좋았는데 다시 펼쳐보기 전까지 어떤 내용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 펴보면, 내용이 흘러 들어온다. 최은영의 작품은 그렇게 스며드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최은영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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