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사랑이냐 우정이냐 하는 우스갯 질문을 한다. 나는 주로 우정을 선택한다.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주로 익숙한 것을 고른다. 누군가 왜 사랑을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렇게 대단한 감정을 나누고 싶은 만큼 좋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내가 그것을 평생의 시간 동안 경험할 수는 있을까. 조금 두렵기도 하다. 결국 사랑에 대한 갖가지 고민은 독이 되어 사랑을 하기까지 폐쇄적인 태도를 가지게 하고, 무책임하게 방임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사랑에 노력하지 않게 됐다.
비교적 최근 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우정에 회의를 느꼈다. 나에게 있어 인간관계 문제란 주로 우정으로부터 파생되곤 하기 때문에. 환절기 감기처럼 찾아오는 감정 소모로 상처를 입으면 사랑이 고프다. 그러나 사랑이 부재한 나는 그런 불안정한 시기가 오면 신경만 날카로워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냐 하는 말을 종종 듣는데(태도에서 티가 나는 것 같다), 언제나 나에게 가감 없는 조언과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는 언니가 나의 불온전한 정신 상태를 눈치채고 이런저런 조언을 건네주었다. 나는 수많은 대화 속에서 단 하나. 이유가 궁금했다. 왜 사랑이야? 결국엔 사랑이 이겨. 그 말을 들으니 더욱 심술이 났다. 나도 사랑이 하고 싶다!
물론 아직도 나는 사랑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진 못했지만(그러니 우정에 집착하는 것이겠지만), 한 책을 읽으며 내가 느끼는 감정을 조금은 구체화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 전문가 최진영 작가님의 <해가 지는 곳으로>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등장한다. 도리와 지나, 지나와 건지, 도리와 미소. 류와 단, 류와 해민. 병으로 고통받는 세상에서 인간에게 내려진 유일한 구원은 사랑이기에, 이들은 모두 사랑을 한다. 소설이 화제가 되었던 이유를 기억한다. 그것은 이 작품이 퀴어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구의 증명>부터 생각한 것이지만 작가님은 불편한 소재를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그걸 이용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는데, 나는 그게 썩 취향에 맞는다. 일반적인 소재에 질린 사람들은 무릇 이런 자극에 끌리는 법이니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을 하면서도, 그냥 내가 최진영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고,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다만, 나는 가장 중점이 되는 사랑의 주인공 도리와 지나의 이야기보다는 건지에 조금 더 마음이 갔다. 가정의 불화를 겪고 흉흉해진 세상 속에서 지나의 손길로 구원을 받은 건지는 지나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다 끝내 버려지고야 깨닫는다. 정말 "혼자"가 되어버린 건지의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종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건지는 짝사랑으로 구원받는다. 설령 나중에야 지나의 사랑이 도리를 향해 있다는 것을 눈치챘어도 건지는 여전히 지나를 사랑한다. 그것이 건지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나는 건지의 사랑이 내가 하는 사랑하고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이 갔다. 깊이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인물은 결국 사랑하게 되니까.
사실 <해가 지는 곳으로> 자체는 그다지 재미있는 소설이 아니다. 서사의 구조가 감정을 파헤치는데 치우쳐져 있기 때문에, 사랑에 대해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읽으면 이만큼 재미없을 소설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아포칼립스 작품이 아니다. 사냥의 쾌감을 기대해선 안되고 카타르시즘 따위는 없다. 그저 일방적인 약자 도태와 꺼림칙한 전개만이 녹진하게 남을 뿐이다. 고구마밖에 없는 소설을 읽고 아, 재미있었다 말하기는 웃기지만, 그럼에도 이 사람들은 왜 살아가고 싶을까에 주목하면 이 책이 조금은 재미있어진다. 나는 몰랐지만 논란이 되어 유명해진 구호 "Love wins all"이 있다. 이 때문인지 독자들이 생각하는 해피엔딩에 가장 가까운 커플은 진정한 사랑을 하기로 한 지나와 도리 말고는 없다. 류와 단은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건지는 둔했다. 그렇기에 나는 지나와 도리를 보며 사랑의 효능감을 깨닫는다. 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 그것은 결국 사랑이 이기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