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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우 Oct 22. 2024

​숲에 달이 켜지고 나는 조금씩 젖고

24년 아르코 창작 발표 지원 선정작

숲에 달이 켜지고 나는 조금씩 젖고          정선우

        

 1

 칠흑이다. 나귀처럼 귀가 뾰족한 숲, 어둠뿐인 미지, 버섯바위에 걸터앉아 숲의 냄새를 맡는다. 집을 만들기로 한다. 숲의 껍데기 무늬들을 가져와 만든 집. 한 달에 한 번 탈피하는 달의 껍질을 모아 외벽을 만들고, 사과나무껍질로 지붕을 잇고, 밤송이로 창틀을, 사슴뿔로 빗장을 만든다. 물고기 비늘처럼 생긴 외벽 주름에서 뿜어 나오는 빛, 기대어 자던 달개비와 작은 짐승들은 잠에서 깨다 자다 깨다 하염없는 

          밤. 

                       먼 파도 소리     

 2

 밤은 머리맡을 하늘로 향한다. 비가 내려도 바람이 불면 지붕에서 사과 냄새가 난다. 보름달이 뜬다. 집은 조금 부풀어 오르고 달빛을 물고 빛난다. 숲엔 두 개의 달이 뜰 때도 있다. 달 사이로 달맞이꽃이 부푼다. 더 밝아진 집은 상수리나무 보다 높이 떠오른다. 바람에 낮게 쓸려가던 소쩍새가 높이 날아오르고, 이 일은 빗속의 반딧불이 꽁무니를 통해 퍼져 나간다. 

         여전히 먼 파도 소리…,

                       여기에 있어야 한다.      

 3

 다시 나는 무엇이 되었나. 한결같은 저 달과 달빛만이 드러낼 수 있는 모든 차가움을 눈에 담은 채.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잎맥처럼 숲 가득 펼쳐진다. 귀를 만지던 손가락이 당신의 것이었음을 떠올린다. 내게서 조금씩 벗겨지는 허물. 이제, 나는 무엇이 되었나.      


 4

 숲이 먼저 읽은 밤하늘, 방목된 바람의 발소리, 도착하지 않는 한낮의 눈부신 눈동자들, 우글거리는 나와 당신의 적요, 기다리는 동안, 가장 오래된 명당이고 분명한 영토, 

         달이 눕는다,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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