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표수희 Oct 30. 2024

사라진 대화의 끝에서

현주는 입을 닫았다.


현주의 의견을 물어보려고 할 때면 나는 늘 현주의 눈과 내 눈을 맞춰야 한다. 그녀가 웃고 있는지 찡그리는지 입이 삐죽 나왔는지는 현주의 마음을 알기에 아주 큰 단서다.


처음부터 현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이후부터 현주의 말들은 사라졌지만, 나는 그것이 현주의 생각조차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에구. 손이 이게 뭐야. 손톱 물어뜯으면 안 돼.”



나는 현주의 가늘고 긴 손가락을 내 손바닥 안으로 넣어 손톱을 깎았다.  현주도 그것이 싫지 않은 듯이 가만히 내 행동에 응했다. 다 큰 아가씨가 이럴 때 보면 꼭 어린아이가 된 것 같다.



이곳은 현주와 내가 함께 생활 한 집이다.

화장실에는 우리가 쓰는 칫솔이 나란히 꽂혀 있고, 침실에는 현주 냄새가 가득한 베개와 함께란듯이 내 베개도 옆에 놓여 있다.  곳곳에 현주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서 나는 내 집이 너무 애틋하다.  현주도 그럴까. 나는 속을 알 수 없이 빙긋 웃기만 하는 현주의 마음이 궁금할 때가 많다.  하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지금 내 옆에 있는 것은 그녀고 그녀의 곁에 있는 것은 나 하나 임에 틀림이 없으니까.



커튼을 걷으니 언제 떴는지 햇살이 우리의 발끝을 비추었다. 노랗게 물든 발톱이 꼭 오리 같아서 함박웃음이 저절로 피어났다. 창문을 열고 현주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집안 가득 틀었다. 그 간 쌓여있던 온 곳의 먼지도 털고 빨래도 함께 널었다. 현주의 주책스러운 웃음소리가 사라진 틈을 메꾸듯 내 수다는 청소가 끝나기 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가끔 현주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가 확인하려 현주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청소를 끝내고 우리는 함께 샤워를 했다. 현주는 아이처럼 거품으로 장난을 치며 웃어 보였다. 하얀 이가 드러나는 미소는 언제 봐도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거품 가득 묻은 현주의 볼에 입을 맞추고 샤워기로 그녀의 얼굴에 물을 뿌렸더니 한 것 놀란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화장실 문 틈 사이로 내 웃음소리가 새어 나갔겠지. 아주 크게 웃었으니까.



같이 골랐던 포근한 옷 하나를 꺼내 입고 서로의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젖은 머리카락을 말려주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긴 머리를 말려보려고 하는데 현주는 머리카락이 당겨진다며 아픈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을 보고 내 손가락에 힘이 조금씩 더 빠졌다. 최대한 아프지 않게 해 주고 싶어서 머리를 말리며 현주의 얼굴을 내도록 살폈다.  현주는 내 머리를 툭툭 털듯이 말려줬는데, 예전 같았으면 ”오빠 머리는 너무 말리기 쉬워.”라고 말했겠지만 지금은 한 것 여유로운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 역시 아무렴 나는 상관없었다.



지친 탄식을 내뿜으며 침대에 누웠더니 현주가 내 약을 챙겨줬다. 내 손 위에 올라온 알약들을 입안 가득히 넣고 그녀가 챙겨 온 물도 한 컵 마셨다. 그리고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눈물이 쉴 틈 없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주체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들이 나에게 쏟아졌다. 눈을 감았는데 감정들은 날 떠나가지 않았다. 나는 곧이어 소리 내어 내 감정을 토해내며 울먹였다. 눈물을 흘렸으니 슬픔이 온 걸까. 아니면 너무 기뻐서일까.
















이제 현주 너를 만나러 갈 수 있으니까.

기쁜 걸로 해 두자. 사랑해 현주야.











작가의 이전글 착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