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록친구리니 May 21. 2022

엄마들이 스타벅스에 가는 이유

퇴근 없는 프리랜서의 고독한 외침



 "하... 또 엄마들이네."



 스타벅스 문을 열고 엄마들이 무리 지어 들어온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으며 퇴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나를 방해하는 빌런들이다. 엄마들이 우르르 들어와 음료를 주문하는 동안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제발 내 옆에 앉지 말아라.' 하지만 대개 그런 주문은 통하지 않는다. 엄마들은 내 자리와 가까운 곳에 앉아 다양한 주제로 수다를 떨기 시작하고, 스타벅스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재즈 음악은 엄마들의 수다에 묻혀 존재감이 사라진 지 오래다.



"목소리는 왜 저렇게 큰 거야. 코로나고 뭐고 애들 어린이집 보내 놓고 모여서 수다 떨고 앉아 있구먼. 코로나 걱정을 하지나 말지."



 그렇다. 퇴사   직업은 '어린이집 교사'.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고 엄마들과의 관계도 우호적인 나였지만,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는 엄마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내가 만약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돌밥돌밥(돌아서면 , 돌아서면 밥의 줄임말) 고단함보단 아이의 안전이  걱정될  같은데 말이다.



  퇴사를 하고 이젠  이상 교사가 아닌데도, 엄마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와는  이상 상관이 없는데도,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다 떠는 엄마들을 보면 괜히 얄미웠다그래서 결심했다. 오전의 여유를 누릴  없다면 오후의 평화로움을 누리기로







 며칠이나 흘렀을까. 어느 나른한 오후, 커피 한잔하며 책이나 읽을까 싶어 스타벅스에 갔다. 재즈가 흘러나오는 아늑한 분위기를 상상하며 카페 문을 열었는데 이게 웬일,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뜨헉'소리가 절로 나왔다. 1+1, 아니 1+2, 1+3이었다. 엄마들만 있는 게 아니라 엄마와 아이들이 세트로 있다. 심지어 자리도 만석이다. 키즈카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곳. 아아. 나의 유일한 힐링 공간 스타벅스는 이제 안녕인 것인가. 우울한 마음에 밖으로 나와 친한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수진아, 우리 동네 스벅은 엄마들 수다 모임 공간 아니면 키즈카페야. 앉아서   수가 없어."


"언니,  엄마들도   구멍이 필요했을 거야. 애들이 등원해서 집에  가고 교실에서 24시간 언니랑 같이 있는다고 생각해 ."


 


 잠시 교실에서 24시간 동안 아이들을 케어할  모습을 상상해봤다. 으. 엄마들에게 필요한 '  구멍'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  것만 같다. 시험관 시술을 하며 유산을   경험하는 동안  생명을 품어내는 엄마들의 위대함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깨달았지만 육아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의 삶을 진심으로 헤아려본 적은 없다. 유치원 교사, 어린이집 교사를 하면서 수많은 엄마들의 육아 이야기를 들었고, 육아를 하는 지인들이 육아의 고단함을 증명하는 사진을 수시로 올리는 채팅방의 멤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런가 보다'할 뿐 그리 와닿진 않았다. (가끔 문을 열고 큰 일을 본 다던가, 밥 먹는 것도 사치라는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에이, 설마'하는 의문도 생긴다. 경험해 보지 못한 자여. 다가올 너의 미래로다. 더 한 일이 있을지니) 




 그도 그럴 것이 시험관 시술을 하고 있는 내게 현실 육아 월드에 대한 상상은 사치였다. 내 머릿속은 그저 '새 생명을 얻을 수만 있다면 육아의 고단함 쯤이야'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솔직히 육아가 힘들다 말하는 엄마들을 보면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라고 생각한 적도 많다. 내가 겪는 삶이 고달프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삶이 세상 편한 것처럼 보였을 테지. '난 이토록 간절히 엄마가 되고 싶어도 못되는데! 정작 당신들은 소중한 아이를 잘 낳아놓고도! 제 손으로 키우는 게 힘들어서 기관에 냅다 맡겨놓고! 스타벅스에 와서 수다 떨고 앉아 있냐!' (김래원인줄...)  




 스타벅스에서 만난 엄마들이 그토록 보기 싫었던 이유였다. 엄마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하는 내 상황에 대한 한탄, 자격지심, 노여움 이런 것들 말이다. 이따금씩 내 안의 편협한 사고를 만날 때면 정말이지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보이는 모습을 내 멋대로 판단하고 타인의 삶을 정의 내리는 오만함 같은 건 정말이지 제때제때 분리배출하고 싶다. 분리배출해야 될 때를 스스로 깨달으면 참 좋으련만, 꼭 이렇게 한 발 늦는다.         





 수진이와 '스타벅스에서 만난 엄마들'에 대한 담론을 나눈 뒤로 그곳에 갈 때마다 내 눈에 비친 엄마들의 삶의 이면을 상상한다. 아니, 그녀들의 모습에서 우리 엄마가 살아낸 시간을 만나고, 내가 살아갈 미래의 모습을 투영해 보는 것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6개월이 채 안 된 아기를 품에 안고 가만히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엄마에게선 사람이 그리워 미치도록 외로운 한 사람을 본다. 혼자 허공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엄마에게선 찰나의 시간이라도 아무 생각 안 하고 잠시 쉬고 싶은 한 사람을, 삼삼오오 모여 대화 나누는 엄마들에게선 아이들 걱정에 어디 멀리 가는 건 엄두도 못 내는 엄마의 마음을, 모든 테이블에서 엄마들의 모습이 안 보일 때면 삼 남매 키우느라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식탁에 앉는 것조차 사치였던 우리 엄마의 스물일곱을 만난다.   




  언젠가 엄마의 세계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오늘 마주친 엄마처럼 스타벅스 구석자리에 앉아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시원한 아아 한 잔 마시며 글을 쓰고 있겠지. 숨 쉴 구멍을 이렇게 간절히 찾게 될 줄은 몰랐다고. 보이는 표면에 집중해 당신들의 보이지 않는 뒷모습마저 내 마음대로 판단해버려 미안하다고. 당신들의 고독한 외침을 외면하던 이들을 대신해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고. 부족한 내 글이지만 당신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