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대학 대외활동 할 당시 일주일 동안 머물렀던 전주였다. 그때 그 향수는 지금 내가 도착한 곳에서 풍겨지고 있었다. 서울에서 전주까지 무려 2시간 40분 정도 소요하였고, 중간에 휴게소에서 15분간 꿀맛 같은 휴식을 가졌다. 버스 내부에는 남녀노소할 것 없이 꿈나라에 빠졌다. 내 옆자리에 앉았던 어느 아저씨는 무척 피곤하셨던지 내 어깨에 계속 기대셨다. 뒷자리에는 여대생들의 조곤조곤 거리는 소리가 불면증을 치유케 하였고, 나도 눈을 잠시 감았다가 다시 떴을 때 종점에 도착했다는 방송 멘트가 내 귀를 간지럽혔다. 짐이라고는 그저 검은색 아메리칸 투어리스터 백팩과 속옷과 여벌옷 몇 벌뿐이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기사님께 감사함다는 우렁찬 말과 함께 즐거운 전주 여행 보내라는 답변을 받았다. 새삼 느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전주 여행을 하는구나.
전주고속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문득 여기가 전주가 맞나 싶었다. 알고보니 내가 상상했던 전주한옥마을은 이곳이 아니라 더 남부 지역에 있더라. 이 부근은 행정중심지 역할을 하는 신도심 근처임이 분명했다. 서울과 다를 바 없다고 스스로 편견을 가질 때, 버스는 어느새 전주신중앙시장을 지나쳤고 도로 곳곳에 근현대적 건축물과 구한말 조선풍 전조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때다 싶었다. 잠깐 실망했던 마음을 뒤로하고 셔터를 내리기 시작했다. 전주는 참 신기했다. 북쪽으로 가면 신도심, 아래로 갈수록 원도심이더라.
전주고속터미널에서 숙소로 향하기 위해 건넜다. 그 반대편으로 전주천이 보였고 조용한 분위기는 덤.
전주고속터미널에서 숙소로 향하기 위해 건넜다. 그 반대편으로 전주천이 보였고 조용한 분위기는 덤.
<플뢰르> 카페
처음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곳이다. 적산가옥 비슷했다. 일제강점기 건축물 틀을 어느 정도 리모델링했던 상업적 건축물이 종종 보였다. 야간 개장을 하길래 야간 노상포차처럼 운영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야행카페였다. 4평 남짓한 야간 테라스 및 공원이 있던 걸로 기억한다.
그저 평범한 골목길. 서울의 망원동을 연상했다. 저주택 단지는 어딜 가나 밤에 가면 꺼림칙하게 예쁘단 말이야.
<1930 한잔> 선술집
아, 여기는 진짜 게스트하우스에서 친해질 사람들과 2차로 가야겠다고 메모했다. 역전할매도 아니고 1929 경성주막도 아니고 뭐라 설명하기 힘든 느낌이었다. 1층과 2층이 겹겹 쌓인 형태로 보아 건물 연식이 꽤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부 다다미방도 일부 개조하여 운영하지 않으실까?
왼쪽 <점례 국수> / 오른쪽 <정우전자>
찰나에 찍혔던 사진. 충정로 서소문아파트 미니어쳐 버젼 같다. 이제 전주 밤 골목 풍경으로 기분 전환을 했으니 자요 게하로 이동했다. 2022년 3월 속초와 제주 여행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홀로 여행을 다니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는데 무려 1년이란 업무적 노예를 마치고 잠시나마 즐기는 여행이라 기분이 왠지 모르게 멜랑꼴리했다. 더군다나 나와 같이 혼자 여행을 오시는 분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게스트 하우스에 왔을지 궁금하기도 했지. 이미 지난 이야기를 뒤로하지만 나와 같이 혼여행족이 점차 늘어나는 점을 직접 실감하니 그렇게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겠구나> 새삼 생각이 들더라.
자요 게스트하우스 2층에서.
사장님은 본인을 지상렬 뺨치는 입담의 전주 유일무이 게하 사장님... 이라고 자기소개하셨다.
자요게하 사장님과의 즐거운 회의 시간 (이라 읽고 포틀럭 메뉴 정하기) - 1차 만찬 / 2차는 객리단길 당첨되었다.
이 게하의 신기한 점은 포틀럭 파티(소규모 인원으로 구성된 1차 만찬 시간)를 운영한다는 점이었고 직접 현장에서 만나서 회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난 김밥천국에서도 뭘 먹어야 하는지 10분간 고민해야하는 우유부단 성향이라 사장님께서 날 최대한 배려해 주신 모양임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주세요. 이걸 보신다면.) 나를 포함한 3명의 숙박러들은 현장에서 회의를 하기로 약속하고 다들 오후 7시 40분쯤에 숙소 1층에서 만났다. 일단 사장님으로부터 간단한 안내를 받고 2층에서 환복 후(최대한 편하게 입었는데 이날 전주가 그리 추울 줄은 몰랐다. 후회했다.) 1층으로 내려왔다.
직접 성명을 언급할 수 없으니 이니셜 언급 한다. 0324 금일 만났던 친구들을 소개하자면...
Y : 서태지와 아이들 뺨치는 패션감각을 지닌 요식업계 지망생 친구. 상남자 부산 스타일이라 그런지 시원시원하게 자기 어필을 잘한다. 해운대에 거주한다고 해서 사장님이 시그니엘 부자라고 놀리셨다. 말투 행동과 다르게 의외로 생각이 심사숙고해서 상담을 잘해줄 센스까지 겸비함.
S : 비록 건강 상의 이유로 술 한잔을 할 수는 없지만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 준 서비스업계 최강자. 굳이 술 한잔 들어가야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틀을 깨준 장본인. 처음에 말썽꾸러기라 놀려대서 미안합니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반전 매력을 꺼내줘서 좀 놀랐음.
그리고 오후 9시가 되자 3명의 고딩 절친 멤버들이 등장했다. 나이는 다들 젊어서 부럽더라. (나이는 밝히지 않겠다. 그 이유는 사장님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했지만 보드 게임 플레잉과 각종 이야기를 하면서 문찐 담당을 맡았던 갓혁이기에 다소 창피할까봐...)
K,K,K 3인방으로 통일하겠다. 이들의 시그니쳐는 검은색 외투와 키, 외모를 담당했다. 그 사이에 있던 난 다소 시무룩함을 잊지 않은 채 당당히 외모 자랑 퍼포먼스를 펼치기 시작했다. 사장님께서 이 분위기가 침울해질까봐 그리고 어색함을 방지하기 위해 의외로 이벤트업계에 몸을 담았던 썰을 풀어주셨다.
원래 본인은 전주 MBC 라디오 DJ였다고 한다. 그리고 20년 전부터 게스트하우스 운영과 동시에 자신의 개성과 매력을 남들에게 어필하면서 어떻게 하면 <자기만의 숙소와 매력을 연계시킬 수 있을까?>이 질문에 대해 자주 고심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나 또한 20년 뒤에 제주도에 게스트하우스 및 쉐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싶었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이벤트 기획의 업무 특성을 연결시킬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해보았다. 어쩌면 이 사장님 또한 나의 선례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많이 물어보았다.
사장님께 드렸던 질문 퀘스트 리스트
Q : 왜 사장님은 게하를 운영하게 되었는가요?
A : 그냥 20년 전에는 원래 일반 게하 스탭이었는데 말이지. 평범하기 그지없었던 키친 요리 담당과 쌀 씻기, 매일 방 청소와 손님들 안내맞이까지. 정말 일반 스탭 중에 한 명이었는데 마침 다른 사장님께 잘 보여서 전주까지 내려오게 된 거지. 그냥 계속하다 보니까 꾸준함과 능력치가 누적되어 인정받은 거 같아.
Q : 왜 사장님은 입담이 그리 자유자재로우실까요?
A : ㅋㅋㅋㅋㅋ 다른 게하를 가봐. 다들 한 와꾸(얼굴)를 담당하는 사장님들이 즐비하겠지만 난 반대로 입담에 와꾸를 넣었지. 내가 항상 말할 때마다 목젖에 개그 알고리즘 장착했냐고 칭찬하시더라. 제제주도를 가봐. 나보다 잘생기고 예쁜 사장님들이 널렸지. 그런데 전주에 와봐. 나 같은 사람이 제일 인기가 많을걸? 그거 때문에 온 거 아니냐? 나 때문에?
Q : 사장님 보러 온 거 아니고 자러 온 건데요.
A : 그거 참 유감이구나.
Q : 사장님은 DJ 경력과 이벤트 MC 담당도 하셨던데 그게 게스트하우스랑 연관이 진짜 있나요?
A : 없어. 그냥 내 성향이 그렇게 연결된 거겠지. 생각해 봐. 숙박업이랑 개그맨이랑 연관이 있디? 있긴 하겠네. 그런데 난 그 유명한 연예인도 아니잖아.
Q : 사장님의 매력은 뭔가요?
A : 니들 재미있게 해주고 곱게 보내주기.
Q : 사장님만의 룰이 있다면?
A : 제발 이불에 토하지 마라. 걸리면 30만 원이고 통화 카톡 읽씹하고 도망가면 토탈 60만 원 더 내야 합니다. 올 때에는 친했지만 갈 때는 아니랍니다. ^^
Q : 마지막 할 말?
A : 한번 볼 사이라고 마음대로 할 사람은 절대 사양합니다. 너도 포함이여 임마.
Q : 게하 운영하면서 왜 스탭 안 뽑아요?
A : 예전에 1달 단기 계약으로 뽑았던 어느 20대 초 여동생이 있었는데 3일도 안되고 도망갔다. 알고 보니 거기 남자 손님이랑 눈 맞아서 탈주한거지. 나중에 다시 전화했어. "그래서 너 그 남자애 때문에 게하 스탭 포기할 거라고? 알겠다. 카페에 박제해 놓을 테니까 그런 줄 알아라." 그랬더니 바로 다시 전주에 와서 사실직고하더라. 당시 술 취해서 제가 미쳤다고. 앞으로 그런 일 없을 거라면서 말이야. 그런데 너라면 어떻게 할 거냐? 그 청청한 20대 초에 게하 스탭 하는 이유가 다 비슷하지 않겠냐?
Q : 전 아닌데요. 온전히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재미있어서 게하에 가는 것뿐입니다만.
A : (^^) 그래서 내가 안 뽑아. 뽑아도 그냥 나 혼자 관리하고 그 친구는 1년 노예 계약서 쓰게 할 거야. 물론 휴무는 제공하겠지만 그런 꼴 또 언제 나올지 내가 예측 다 하거든. 알지? 난 예측도 지상렬 뺨친단다.
(말이 길어서 중략)
<사장님과의 인터뷰는 50프로의 진실과 50프로의 구라가 반반 섞었습니다. :D>
사장님과의 재미있는 1차 만찬이 끝나자마자 친구들과 2차로 보드게임을 진행했다. 참고로 이 보드게임 이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들 열심히 하지 않으니 페널티를 부여했던 사장님이셨다. 1등부터 6등까지 나열하되 돈이 제일 많은 자(1,2,3등)는 4,5,6 등으로부터 차등적으로 아이스크림 행가례를 받아먹는다. (참고로 내가 꼴찌라 만원 냈다. 역시 난 게임 지지리 못하는 본좌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시간이 끝나니 어느새 오후 11시였다. 이때부터 사장님은 2차로 갈사람들은 새벽 2시까지 쳐마시고 곱게 놀다 오라고 애정 어린 충고를 해주셨다. 내가 나이가 제일 많으니 나보고 알아서 얘네들 몫까지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그렇게 출발했다. 아까 K 3인방 중에 K3은 그대로 곯아떨어져서 2층 숙소로 복귀했고, 나 포함 5명이서 객리단길로 이동했다.
역시 게하하면 포스트잇 감성 아닐까 함. 어떤 손님들이 자주 다녀왔을지는 모르지만 그 누구도 부담 가지지 않고 편하게 다녀간 듯하다. 더군다나 내용 보면 대부분 40프로가 사장님 입담에 취해 단골손님 하겠다는 구라 내용들이 즐비했다. (물론 나도 그 입담에 취했다.)
특히 나처럼 저 멀리 서울에서 도망친 사람처럼 도시 생활에 질려 잠시나마 2박 3일이라도 힐링하고픈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분명했다.
<네이버리뷰 참고>
원래 <전일갑오>에 가고 싶었으나 인파가 넘쳐나서 재빠른 포기.
바로 객리단길로 이동했다.
생활맥주에서 선술집 분위기를 내려고 나름 애썼던 0324 자요게하 멤버들
2차로 할맥집 비스름한 곳에 찾아갔다. 내가 생각했던 객리단길과 다소 느낌 차이가 심했다. 뭐랄까 이태원 경리단길을 연상케 했다. 각종 와인집과 맥주집이 넘쳐났지만 이내 우리 마음을 끌게하는 선술집이 없었다. 맞다. 우리 모두 을지로 광장시장 노가리 자갈치시장 예천시장처럼 그냥 <가맥집>에 미쳤던 것이다. 물론 내가 먼저 물어보았다.
나 : 자 친구들. 전주 하면 떠오르는 객리단길이지만 제가 봤을 때 여기는 그냥 이태원 느낌이 흐르는군요. 노가리 뜯을 만한 곳에 갈까요?
A : 네 그럼 그 옆에 있는 할맥집에 갑시다.
나 : ㅠㅠ
그렇다. 게하의 새벽 2시 통금이 이토록 사람을 애간장 태우게 한다. 자요 게하에서 출발한 지 걸어서 20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마땅히 찾을 곳이 없어서 그냥 어느 가맥집 프랜차이즈집에 간 것이다. 그래도 그마저도 이해해주고 잘 따라와 주었던 어린 친구분들이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소주값이 오른다는 것을 그토록 뉴스에서 보았지만 내가 설마설마하다가 실감할 줄이야. 소주 한 병에 5000원 웃돌더라. 전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가맹점 사장님들 마음은 이해한다. 그나저나 고객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까지 하진 않겠다. 왜냐하면 굳이 여기까지 와서 경제 이야기를 한다고? 그렇게 보인다면 이 친구들에게 나 또한 <라떼>로 취급받겠지만 오히려 첫 스타트로 끊었던 이 말에 다들 사회적 이슈 좋아한다고 벌써부터 기다렸단 듯이 목청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이 친구들 아까 사장님 영향받아서 그런가?)
어찌 되었던 K 2인방은 원래 고딩 친구였고 그중 한 명이 곧 군대에 간다고 하여 마지막 20대 초 청춘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와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뻔했다. 나도 20대 초에 부랄친구와 함께 서울에서 대전까지 무규칙 자전거 여행을 했기 때문이다. 그때 아무것도 모를 2010년대 초,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 보급도 부족했던 시절에 지도만 보며 땀 흘리듯이 하루종일 시골길과 비포장도로를 달렸던 내 모습이 이 K2 친구들에게 이입되었다. 잘 지내냐. 내 랄부친구 K야.
그렇게 일상 이야기를 하다가 S는 요즈음 대학생들의 현실은 낱낱이 공개하겠다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했다. 그마저도 눈총을 받아야 하는 어린 Z세대들의 말을 하염없이 듣던 M세대의 나. 기성세대들에게 충고와 조언을 받지 말라는 시대. 그리고 인생철학 또한 그들로부터 답습하지 말라는 명언. Y는 자신은 요식업계로 진출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세상에 할 말이 많아 보였으며, 그 옆에 있던 S 또한 현 서비스업계에서 일하면서 그러한 고객들을 많이 만나봤다며 그 친구를 위로해 줬다. K2 두 친구는 이 분위기에 또 한술 더 떠서 우리가 언젠가는 사회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길 간절히 고대하며 이 만찬이 M와 Z세대를 가로지른 전주의 마지막 만찬이 될 것이라 자부했다.
라며 진솔한 이야기를 하고 오질 나게 나왔던 술값을 뒤로 한채 아쉬운 마음으로 자요 게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묵탕보다 술값만 30000원 더 나옴.)
가기 전에 인생사진 몇 장 찍어줬다. 평생 살면서 잘 안 찍었던 나. 그냥 관심이 없었는데 막상 사진 인화를 받고 보자마자 <아, 이래서 여행은 사람으로부터 추억을 얻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새벽 1시의 전주 한옥마을 가는 길, 다들 반쯤 취해있다. 그리고 인근 편의점에서 소주와 맥주를 구매 후 어디로 이동했다.(사장님 죄송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일탈이 시작되었다.
사장님께 비밀로 하고 간 전주한옥마을 어느 정자사람들 인기척 1도 없었다. 당시 시간 : 새벽 2시
뭐가 그리 아쉬운지 아니면 전주라는 동네가 아쉬운지 3차까지 가버렸다. 사장님은 모르신다. 알면서도 다음날까지 사고만 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을 계속 머릿속에 각인하며 술을 샀으니 다행이었다. 사실 이 자리에 사장님까지 있었으면 재밌었겠지만 다음날 토요일이라 여러모로 준비할게 많으신 듯 보였다. 여기서 또 이 친구들과 일상 이야기를 하면서 특히 <예술> 부분에 대해 관심이 많아 보였다. 나는 브런치를 운영했는데 이 중에 몇 명도 그 플랫폼을 운영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인연이란 게 또 여기서 이어지나 보다. 청년 마을과 청년 예술 브랜드에 관심을 가졌던 Y가 자신도 언젠가는 타 지역에 코워킹 스페이스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스쿠터를 타며 이곳 저것 사진 찍는 게 일상인데 돈이 없는 예술가들은 나그네처럼 이곳저곳 돌아다닌다는 사회적 인식이 짜증 나 전국 청년 예술 스쿠터 연합회처럼 그들만의 회의 장소와 아이디어 창구 장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S는 자신의 쓸모없는 포트폴리오가 언젠가는 또 하나의 좋은 영향력이 될 수 있도록 서비스업과 마케팅을 연결하여 링크트리에 <0324 무쓸모 전주여행 일지>를 기록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중에 기회 되면 보여주겠다고 하는데 일기를 마음대로 보여줄 친구들이 몇 명이 될까? ㅋㅋㅋㅋ 나도 그렇다. 그래도 하는 것만으로 훌륭한 도전이 되길 간절히 빌고 빌었다.
K 2인방은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었다는 생각에 하루라도 게하를 일찍 알았으면 좋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중 막내는 장렬한 만취에 취하고 연거푸 사랑합니다만 3번 외치고 전주 한옥 마을에 유언을 날렸다.
빌었어~ 빌었어~ 밤마다 ♬
고생했어요. 이제 게하가서 좀 쉬자. 새벽 5시입니다.
다음날이 되었다. 오전 11시가 체크아웃이니 그러니까 겨우 6시간 잤다. 아니 5시간 잔 듯하다. 머리는 깨지겠고 Y는 오전 7시에 급하게 어디로 떠난 모양이다. K 3인방은 골골대기 시작했고 그중 어제 만취했던 K1 친구가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들었단다. 알고 보니 어제 우리가 전주한옥마을 정자에서 만담 하는 동안 화장실을 찾다가 그 특유의 도보 바닥에 자빠졌다고 하더라. 그래서 K2가 K1를 데리고 아침 10시부터 병원에 갔던걸 ASMR로 잠시나마 들었던 기억이 난다. 몸을 움직이고 싶었는데 당시 술 덜 깬 녀석들 어디로 이동하는지 그마저도 참 세상 살다 보니 이런 일 저런 일 많구나...
다행인 건 K1은 긴급 응급 처리를 받고 무탈하게 게하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침대에 토 안 한 게 어디냐. 애들아.)
다음날 오전 10시 30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나.
1층으로 내려왔는데 오후 11시 15분이었다. 사장님은 어제 사고 안 낸 건 정말 기특하지만 체크아웃 늦었으니 나에게 만원 과징금을 줘야 한다고 지상렬 입담을 펼치셨다. 안 그러면 하루동안 여기서 지옥의 스탭일 하고 가라고 다독였다. 네 사장님. 나중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을 전해주며 사장님은 우리를 버스정류장 인근까지 배웅해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일한 0324 숙박러 막내이자 배려의 끝판왕이었던 S가 장문의 포스트잇을 남겨주며 그렇게 자요 게하의 일정은 끝이 났다.
아침에 맞이한 리셉션. 어제 밤새도록 축구 친선경기 보느라 눈이 시뻘거셨던 사장님.
마지막까지 생존신고. 다음에 뵈면 사고 안치기로 약속하고 재빠른 탈주각 (물론 사고는 안쳤지만...)
사장님께 어제의 사건 전말을 보내드리니 "가운데 해군 연행되는 거냐." 라며 마지막까지 큰 웃음을 자아내주셨다.
분명한 건 어제 새벽 5시에 3차로 먹었던 술과 과자 분리수거하겠답시고 반만취상태로 키친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던 기억이 나는데 "웬 놈이냐. 사고만 치지 마라..." 이 말 한마디에 긴장감은 UP 됨이 분명했고, 이미 알고 있으셨던 거지.... 감사합니다 사장님...ㅎㅎ
S가 작성한 포스트잇 내용. 내가 프리랜서가 되길 간곡히 빈다더라. 그래 제발 4대 보험 노예 탈출하고 싶다.
흔한 게하 숙박러들의 사진샷 _0324 with S, Y, K1, K2
<참고로 게스트하우스 내용은 90프로의 진실과 10프로의 구라가 섞였습니다. 어떤 상업적인 목적으로 작성한 글이 아닌 순수한 갓혁의 전주 여행 일지임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