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냄새는 스며들어 느껴지는 것이다.
시골에서 스무 해 남짓 살다 이도시에 오던 날 나를 당황하게 했던 건 그저 달랐던 냄새 때문이었다.
높이 솟은 빌딩과 꽃처럼 화려한 조명 속에서 느껴졌던 공기는 무언가 번잡하면서 나를 소외시키는 어색하고 차가운 맛이 났다.
꽃무늬가 화려한 찻잔에 찰방찰방 담긴 홍차의 떫은 맛, 달콤함이 지나간 뒤에 혀 끝에 쓴맛이 베어 버리는 자몽차, 투명 유리컵에 얼음이 가득 담긴 사이다, 기포가 뽁뽁뽁 올라오는 탄산을 삼켰을 때 목 끝이 찌릿해 오는 고통, 이 도시에 홍차와 자몽차와 사이다의 끝 맛이 배어있다.
내가 품고 온 시골의 공기는 콧속을 휘돌아 치는 청량감이 있고 혀끝에 닿으면 쌉싸름한 나물 같은 맛이 묻어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던 폭신폭신한 노란 술빵의 맛, 7월의 땡볕이 샘터로 쏟아지던 날, 펌프에서 끌어올린 시리고 차가웠던 물맛이 있던 우리 동네.
여름에 아무렇게 차려입고 냇가를 향해 뛰면 내발에 뭉개지며 퍼지던 달큰한 풀냄새, 해가 지기 전 어스름한 저녁에 온통 주위를 덮어버린 눈이 때때로 불던 바람에 가루처럼 부서지던 순간 어느 노인이 태우던 지푸라기 냄새가 바람에 부딪쳐 섞여 오던 그날 풍경의 냄새들, 우리 동네를 껴안고 계절을 따라 흐르던 냄새들.
나는 보따리에 우리 동네의 그 맛깔난 냄새를 둥기둥기 묶어 가슴에 품고 왔다.
이 도시의 어디에도 내가 기억하는 냄새는 없었다.
도시의 바람 속엔 얇은 금속의 맛이 섞여 있고, 빌딩을 감고 떠다니는 공기 속엔 정수가 잘된, 그러나 비릿한 물맛이 느껴졌다.
나는 반듯하게 잘린 건물이 뱉어내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어릴 때 먹던 원기소 냄새를 맡았다. 뚜껑을 돌리고 입구를 막고 있는 솜뭉치를 빼냈을 때 코로 돌진하던 그 특유의 냄새를 왜 건물을 보면서 느꼈는지 모르겠다. 거리에서 와글거리는 사람들의 소음과 8차선 도로를 달리는 복잡한 버스 안에서도 감기약을 먹었을 때처럼 쓰고 텁텁한 맛이 났다. 도로 옆 가로수는 시골 그것들을 닮아 있었지만 숨 쉬며 반짝이던 우리 동네의 풍경과는 달랐다. 마치 단맛으로 어린애를 유혹하는 코코 시럽 같은 가짜 설탕 맛이랄까. 어디를 봐도 나의 고향이 없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늘 어디론가 떠나는 둣 바빠 보였다. 탁탁탁. 또각또각, 자박자박.
사람들은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을 포크로 찍는 것처럼 뾰족하고 급하게 걷는다.
우리 동네 어른들의 발걸음은 장화를 신고 느리게 저벅저벅, 우리 할아버지의 자전거 소리도 느리게 스르릉.펄펄 끓는 뚝배기 속의 슴슴한 된장찌개를 숟가락으로 조심히 떠서 천천히 입에 넣는 속도로 우리는 그렇게 걸었다.
발걸음도 빠르고 말도 빠른 사람들. 이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즉석 카레 같은 인스턴트 냄새를 맡았다.
바람과 건물과 사람들에게서 자욱한 안개 냄새가 느껴졌다.
도시와 나의 첫 만남은 그렇게 어색하게 시작하여 십수 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았다.
이곳의 구석구석이 낯설었고 사람들은 불편했다. 계절은 그저 변할 뿐이었다.
그러나 변하는 계절 속에 문득 기억과 부딪치는 냄새는 나를 시골의 어디쯤으로 데려다주곤 했다. 어느 봄밤 바람에 실려 오던 옅은 꽃냄새, 간밤에 내린 비에 축축이 젖어버린 공기 속에 배어있던 나무 냄새. 계곡을 달리는 물속을 손으로 훑어보면 뿜어 나오는 민물 냄새. 추석이 가까워 오면 아스팔트로 쏟아져 내리던 눈 시리게 밝았던 가을 볕. 그리고 해가 지는 어둑어둑한 저녁에 갈대가 서걱거리는 스산한 겨울의 풍경은 나를 유년의 어느 한 때로 데려다 주었다. 그 냄새와 풍경이 있었던 곳을 기억하게 한다.
그러니까 계절의 냄새는 '맡는다'가 아니라 스며들어 느껴지는 것이다.
계절의 냄새가 스며들 때마다 낯설고 어색한 이도시에서 나는 향수에 시달리며 이방인이 되어갔다
어느 해, 좀처럼 눈 구경을 할 수 없던 이 도시에 한 줌의 내린 날이었다. 그날은 무척 추웠고 늦은 오후였다. 마트에 들러 검은 비닐봉지를 주렁주렁 걸고 잔뜩 웅크리며 돌아오던 그때 아파트 사이로 보이던 눈 덮인 먼산, 그 산!!!
고향의 겨울산과 그것이 똑 닮았다고 생각한 순간 잊고 있던 겨울의 냄새가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고향에 두고 온 눈 내린 들판과 지푸라기를 태우던 냄새가 급하게 되살아나면서 내가 서 있던 공간이 그렇게 친밀하고 따뜻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나를 묶고 있던 도시와 어색함이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이 도시가 익숙해졌고 사람들은 내게 친절해졌다. 도시의 골목골목은 다정했고 도시의 이름은 언제나 편안했다. 돌아보니 두고 왔다고 생각한 그리운 계절과 냄새들은 나를 둘러싸고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그 계절의 냄새와 풍경은 자주 낯선 것으로부터 탈출시켜 익숙하게 해 주었다. 아이 학업문제로 잠시 먼 타국에 머물렀을 때 작은 창으로 보였던 뭉게구름은 고향의 그것과 닮아 찰나의 외로움을 잊게 해 주었고 요란한 명절의 부산스러움은 아스팔트로 쏟아지던 햇빛을 보며 어느 때 내가 신작로를 걷는 모습으로 잠시 행복하게 했다.
계절은 이제 각각의 냄새를 품고 이 도시에서 나를 고향과 마주하게 한다. 공간은 언제나 익숙하고 시간은 그때와 연결되어 나는 비로소 편안하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계절의 냄새를 눈 덮인 겨울 산이 찾아주었다.
그날 그 먼산이 나를 이 도시로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