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날은 반짝거립니다.
태양은 지구로 내려와 숨 쉬는 모든 것들에 부딪혀 소리 없이 깨져버립니다. 태양의 파편들은 공정합니다. 똑같은 부피와 질량으로 세상의 만물을 성장시키니 얼마나 위대한가요.
오늘 눈부신 저 태양은 우리 집의 베란다 창을 뾰족이 뚫고 들어와 마루에 길게 꼬리를 드리웁니다. 태양의 꼬리는 창틀을 복사해 바닥에 마름모를 빚어냅니다. 햇살이 만든 마름모 안으로 우리 강아지 조이가 들어와 나를 올려봐요. 하얀 꼬리를 흔드는 저 아이는 까만 눈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가끔 우리를 올려 보는 저 아이의 눈이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저를 두고 홀로 현관을 나서는 나를 볼 땐 아쉬움이, 집으로 들어 선 나를 보는 눈에는 반가움이, 아침에 첫인사를 나눌 땐 밤사이 안녕을 묻는 편안함과 나른함이 들어있죠. 저 아이가 우리 집에 처음 오던 날은 태어나 3개월이 지난 어린 아기였습니다. 부드럽고 곱슬한 하얀 털이 뭉실뭉실 예뻤던 아이는 밤새 엄마를 찾으며 울었더랍니다. 그게 안쓰러워 자꾸 쓰다듬어 주며 우리는 가족이 되어갔고 이제는 노견이 돼버린 저 아이가 하루하루 행복하길 빌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10시. 태양이 나를 끌어냅니다. 운동을 하러 가야겠습니다.
오늘 걷기 좋은 날씨네요. 얼굴 위로 쏟아지는 햇빛을 마주해서 사무리고 본 하늘은 보기 좋은 바다색이고 바람도 적당히 옷을 흔들어 댑니다. 공원을 지나서 도착한 신천을 조금 빨리 걸었습니다.
봄부터, 아니 오래되어 늘 그래 왔을 것 같은 가뭄은 신천의 물을 조금씩 빨아들였던 걸까요. 어느 계절 속에선 소리를 내며 달렸던 물줄기가 -(그것은 마치 몸의 근육이 힘을 쓰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에 억센 풀들이 내 허리만큼 자라 있습니다. 물속에 터전을 마련해서 충실한 삶을 이어가던 모든 것들은 어디로 가버렸을까요. 그 생들이 물길과 함께 사라져 순환이 멈춰 버린 곳, 쪼그라진 물길을 더듬는 왜가리의 몸짓이 그래서 슬픈.
3월, 봄에 산불이 번졌더랍니다.
열흘이 넘도록 산은 활할 탔더랬죠. 멀리 보이는 그 산은 낮에는 하얀 연기를 토해냈고, 밤이면 붉은 불꽃으로 광란의 춤을 추는 것 같았습니다. 그 불을 보면서 저 산에 뿌리를 내리고 숨 쉬던 것들의 겁먹은 표정이 그려졌습니다. 낙엽이 켜켜이 쌓여있을 그 산자락에 모여 살던 것들은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럽게 사라져 버렸을지...
그렇게 사라지는 생들을 생각하다 오래전 중학교 과학시간에 개구리를 해부하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마취 통에 넣어두었던 기절한 개구리의 사지를 핀으로 고정하고 칼로 개구리의 배를 갈랐었지요. 보아라, 거기가 심장이고 여기가 위란다. 시험에 낼 거야. 개구리 심장은 2심 방 1 심실이지. 시험에 나올 개구리 심장을 들여다 보고 공책에 꾹꾹 눌러쓰고 그리고, 그리고...... 마취에서 깬 개구리가 사지를 뒤틀며 핀을 튕겨내고 배가 너덜너덜 벌어진 그 개구리가 어디론가 튀어 나가고, 악 소리를 내며 소동이 일어나고...... 나는 배가 벌어진 그 개구리가 , 정신이 혼미해져 제 처지가 어떤 상황에 놓인 줄도 모르고 그저 놀랐을 그 개구리가 너무 불쌍해서 책상에 엎드려 한참을 울었던 그날이 잊히지 않습니다. 칼에 베인 뱃속에서 내장이 쏟아져 나오며 느껴졌을 어마어마한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 아주 오래오래 내 배가 다 자글거렸더랬죠. 아! 누가 그 불쌍한 아이를 잘 묻어주었다고 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동화 속의 개구리가 왕자로 변신하는 꿈을 더는 꾸지 않았습니다.
개구리 푸른 등 뒤에 차마 활자화할 수 없는 슬픔이.
우리는 가끔 이기적인 습성을 감추기 위해 잘 포장된 변명이 필요합니다.
내 마음의 상처는 안쓰러워 두 팔로 쓸어안고 있으면서 상대의 상처는 모른 척하고, 나만 생각하는 호의를 베푸는 것이 선량함이라고 착각하며 사는 것이지요.
강아지를 어미에게서 떼어내며 그들의 아픔을 외면할 때, 가뭄과 산불 속에서 사라지는 작은 것들을 뒤늦게 알아차릴 때, 개구리의 죽음 따윈 아무렇지 않아도 될 때, 우리는 그런 순간에 대해 거창한 변명으로 포장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내면 어느 구석에 붙어있던 무심한 이기심의 발로였을 것이고 그것을 들켜버린 것이 부끄러운 까닭이겠지요.
언젠가 우리는 모두 작별인사를 할 때 가 옵니다.
변명으로 덮어버릴 우리의 이기심 때문에 고통으로 사라질 그들이, 우리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산과 물에서 생을 이어가는 모든 것들과 제 뜻이 아님에도 어미 곁을 떠나 원치 않는 가족으로 묶여버리는 가여운 것들이 가벼운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순간에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good-bye 어원은 god be with you, 신이 당신과 함께라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나와 헤어진 모든 이들에게 신의 축복이 깃들길 바라는 참 따뜻한 인사지요.
나는 우리와 그들 모두의 마지막 순간에 신의 축복이 깃든 good-bye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선한 인연으로 마주 볼 수 있는 생이 오기를 빌어봅니다. -(그것은 종교를 넘어, 철학을 넘어, 과학을 넘어 그저 우리의 안녕을 바라는)- 나와 함께 숨 쉬던 모든 것들이 부디 편안한 good-bye가 되기를. 의미 없이 흘러가듯 사라지 않기를.
착한 그대들 부디 Good- 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