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고등학교 친구다.
얼굴이 하얗고 성격이 좋았던 k를 나는 참 좋아했다. 가정형편상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나를 위해 k는 평생 한 번뿐인 수학여행을 포기하고 며칠을 나와 함께 있어주었다. 그런 내 친구 k 때문에 수학여행의 아쉬운 기억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k와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서로의 생일을 잊지 않았고 내가 결혼할 때, 아이를 낳았을 때, 그 아이가 첫 돌잔치를 했을 때 , 그리고 친정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k는 잊지 않고 멀리서 나를 찾아와 주었다. 내 친구 k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보험 같은 친구였다.
그런 k네 집이 어느 날부터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기 엄마가 꿈에 돼지가 새끼 낳는 꿈을 그렇게 자주 꾸더니 요즘엔 매일 돼지 잡는 꿈만 꾼다며 깔깔 웃었다. 돼지 잡는 꿈 때문인지 정말 k네 집은 어느 날 폭삭 망한 것 같았다. 그리고 k의 결혼 생활 또한 순탄치 않았다. 그녀가 결혼을 한다고 알렸을 때 집이 조금 부유하다는 것 외에 딱히 내세울 것 없는 남자의 조건 때문에 그녀의 부모님은 우려와 함께 반대를 했다. 그러나 반대를 무릅쓰고 k는 자신의 선택을 고집했고 그 선택은 2년이 채 안돼 보기 좋게 틀렸음을 알리고 말았다.
그즈음부터 그 애는 통화를 할 때마다 팍팍하고 건조한 인간이 되어가는 듯 보였다. 말투는 늘 퉁명스러웠고 사소한 말에 짜증이 늘었다. 나는 건조한 그 애가 어느 날부터 조금씩 불편해졌다.
언젠가 겨우 시간을 내서 강원도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설레는 맘으로 떠난 그 여행에서 이제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고 그 애가 가진 불만들 때문에 짜증이 훅훅 올라왔다. 첨으로 떠난 여행의 설렘은 어디 구석으로 처박히고 감정의 골만 깊어져 돌아왔다. 그 후 우리는 점점 소식이 뜸해지다가 서로의 전화번호를 누르지 않은 시간이 10여 년이 되어간다.
차라리 속내를 드러내고 실컷 싸우기라도 했으면 그 애의 닫힌 마음을 이해했을까.
k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애정은 처음 느껴보는 불만과 뒤섞여 정의 내릴 수 없는 이상한 감정으로 내 안에 굴러다녔고 나는 이런 정체불명의 기분이 귀찮아져서 일부러 외면하며 살았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 애가 먼저 연락을 줄 거라는 희한한 믿음 때문에 나는 먼저 전화기를 들지 않았다. 그 애 때문에 불편해진 건 나였으므로 나를 위해 마음을 보여줘야 하는 사람은 k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런 서먹한 사이를 만들어 놓은 책임을 온전히 그애게게 던지고 나는 방관자 인척 은근히 그 애의 전화를 기다렸던 것이다. 피해를 본 내가 전화를 하는 건 왠지 가위바위보에서 진 것처럼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아마 그 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서로의 전화를 기다리다가 이젠 전화를 먼저 하기도 어색한 먼 길로 와버렸다. 많은 시간 속에 재여놨던 우리의 우정은 어디로 가고 당장의 툴툴거림이 거슬렸을까. 그 애가 쏟아내는 짜증들은 자꾸 굽어져 가고 있는 제 인생에 대한 한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 내가 느낀 k의 짜증과 불평들은 내 마음을 후려치며 흔드는 것만 같았고 왠지 우울이 전염되는 것처럼 불편했었다. 내 친구 k가 불편했다. 내가 사랑하는 k가 ........
그때 나는 개똥보다 못한 서푼 어치 자존심을 머리에 이고 계산기를 두드리던 미성숙한 인간이었다.
돌아보니 나이 만치 후회를 쌓고 사는 듯하다 값싼 자존심에 , 개똥처럼 쓸모없는 남의 이목 때문에 , 죽어야 버려질 것 같은 게으름 때문에 돌아서 후회하는 일들이 발끝에 채 여가는 것 같다.
어느 날 짬뽕과 짜장에 인생을 걸 것처럼 고민하다 결국 선택하지 않은 짬뽕에 대한 미련으로 내내 아쉬운 날이 있다. 짬뽕 한 그릇의 미련도 하루를 섭섭하게 하건만 세월이 가도 소화되지 못한 후회들은 오죽할까. 시간이 가도 마모되지 않고 오히려 가시처럼 더 뾰족이 날을 세운다
지난 시간 속에 남아있는 후회들에 우선순위를 둘 수는 없다. 후회의 기준은 늘 '그때'가 된다.
사람에 대한 후회는 미안함으로 귀결되고 상황에 대한 후회라면 선택이 문제였다. k를 생각하면 그 애의 마음을 잘 받아주지 못하고 나만 생각했던 마음이 미안하고 먼저 마음을 열지 못한 그때가 두고두고 후회된다. 나는 왜 먼저 연락하는 그 선택을 하지 못했을까. 그때 그 애의 상황을 더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의 그 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면, 그래서 잠시 불편했음에도 먼저 연락했더라면 나는 그 잠시의 선택으로 사는 내내 그 애를 생각하며 우울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은 두고두고 후회로 남았다.
사는 동안의 경험은 인간을 종종 성숙하게 한다. 내 선택의 잘못을 알고 난 후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봐 늘 선택에 신중해졌다.
그때는 옳다고 믿었던 것들을 지금 와서 틀렸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 나이를 먹고 얻어지는 성숙이라면 인간의 탄생은 어느 날 빚어진 창조가 아니라 시간과 함께 발전하는 진화였다는 영특한 진리 앞에 새삼 고개를 끄덕여본다. 이 대단한 개똥 같은 깨달음 앞에 나는 또 다른 답을 찾았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가 되고 보니 인생이 무엇이냐는 거창한 질문에 겨우 소박한 답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선택이 내가 갈길을 만든다는 것을.
그때 그 선택을 후회한다. 그래서 나는 k와 함께 만들어 놓았던 익숙하고 편안한 길을 잃고 어색하고 낯선 길을 혼자 헤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