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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하울 Jun 30. 2024

그리고 k에게.

k야.

아침 일찍 일어나 가방을 싸면서 시간을 계산했어. 지금부터 네가 사는 도시에 도착하기까지 해야 할 일들을 순서대로 정리하며 머리에 계획표를 짜봤단다.  잠시 짬을 내서 강아지 산책까지 마쳐야지. 그러니 30분쯤 여유를 가지고 눈을 감았다 떠도 되겠구나. 그 30분의 여유를 누리다가 결국 2시간 늦은 출발이 돼버린 거야. 하루를 계획했을 너의 시간들은 어떻게 수정이 되었을지 조금 미안했었다.



평일의 고속도로는 한가했어. 그냥 노래를 흥얼거리 다가 나를 앞질러 달리는 차를 보며 저들은 모두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지 생각해 봐. 목적지는 다르지만 같은 방향으로 달린다는 이유만으로 괜한 동지애가 느껴지는 거 있지. ^^  그 수많은 동지들의 뒷모습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상상해 보고 표정을 그려 본단다.  


몇 해 전 이른 아침이었어. 그날 아이 등교 때문에 서둘러 집을 나섰어. 날은 좀 서늘했고 안개가 살짝 깔려있었지. 아직은 조용했던 아침. 차 문을 막 열었을 때  안개 젖은 적막을  밭은기침이 뚫고 들어왔어.

 '쿨럭!!'  키가 자그마한 아저씨가 빠를 것 없는 걸음으로 걸어와 당신의 나이만큼 쯤  되는 트럭에 올랐어. 그러자 곧 아저씨를 닮은 트럭의 엔진이 쿨럭 거리는 기침소리를 뱉어내더라. 빠를 것 없는 속도로  나를 지나는 아저씨의 트럭을 보며 그냥 그분의 인생을 소설처럼 상상해 보는 거야. 

어제보다 더 왜소한 아저씨의 등은 어제와 같은 옷을 입고, 당신의 나이만큼 오래된 트럭에 몸을 싣지. 한때는 최신형 스포츠카 보다 밝았을 두 눈은 세월에 바래져 안개처럼 흐려졌을 거야. 그래도 트럭과 함께 달리며 자식 넷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24평 아파트도 샀을지 몰라. 그래서 당신을 스쳐간 세월이 그리 야속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낡은 트럭에 근면과 성실의 깃발이 펄럭이는 걸 보며 전혀 모르는 그분의 인생을 괜히 응원하게 되는 거 있지. 그날 아침 처음 본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면서 멋대로 한 인생의 역사를 만들어봤단다.


나는  세상의 모든 차는 표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가령 갓 출고되어 도로에 나온 차를 보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꿈 많은 청년의 자신감과 활기를 느껴.  새로 산 양복을 뽀대 나게 차려입고 방금 이발을 끝낸 어색한 깔끔함도 보이고. 청춘만이 누리는 특별한 반짝 거림 같은 게 달랑거리는것 같아. 

깜빡이도 없이 갑자기 끼어드는 자동차의 뒷모습에선 늘 반말을 달고 사는 무례한 사람들의 일그러진 눈썹을 본다. 배려와 양보는 국어사전에서 지워진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심술궂게 올라간 굵은 눈썹이 그려져 있는거지. 또 꽉 막힌 도로에서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눈치를 보는 내게 천천히 자리를 내어주는 자동차는 노을 지는 강가를 편안히 걷는 노년의 여유로움이 어른거려.  그렇게 온화한 미소가 자동차 뒤에 그려져 있단다. 파란 신호가 바뀌는 줄 모르고 서 있다 경적소리에 놀란 뒷 모습엔 멋쩍은 미소가 보이고 , 고속도로를 무섭게 질주하는 차를 보고 있으면 pc방에서 가열차게 손가락 힘을 쓰는 고딩들의 뒷모습이 보이더라. 그렇게 생김새가 다른 자동차가 내 앞을 달려가.


사대를 졸업한 조카가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울컥했던 예길 해줬을 때 내 뒷모습이 궁금해졌어.

그 애가 초등학교 교생실습을 나갔을 땐 한창 갑질하는 학부모들로 시끌시끌하던 때였어. 실습 나간 학교에서 갓 입학한 1학년 아이들을 맡았었데. 언론이야 어떠하든 나는 잘할 수 있을 거란 마음이 컸더란다. 하지만 막상 부딪쳐본 교육현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대. 열심히 준비한 수업이 생각처럼  전달되지 않기도 했고,  이따금 통제를 넘어선 아이들과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학부모들의 의견이 당황스럽기도 했다고.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을지 고민이 되더래. 그런데 말이지. 실습이 끝나가는 어느 날 교실뒤에 서서 아이들 뒷모습을 보다가 울컥했다는 거야. 아침에 엄마가 정성스레 빗겨준 그 애들의 머리가 눈에 들어온 거야. 빗질이 잘된 머리가 , 엄마가 꼭꼭 묶어준 머리가 그냥 순진하고 착한 1학년처럼 보였더래. 자기가 생각했던 1학년 아이들이, 선생님 하고 불러주는 1학년 아이들이 비로소 의자에 앉아 있더라는 거야. 그리고 돌아서 웃는 아이들 얼굴이 하얗게 빛나더라나? 세상엔 참 논리를 비껴가는 감정들이 많지? 그 울컥함의 해답을 설명할 수 없지만  그때 그 아이들 뒷모습이 하도 예뻐서 20대 어린 아가씨가 다시 주먹을 꼭 쥐게 되었다고 말하더구나.


k야 나의 뒷모습은 어때?

너를 뒤로 하고 걷는 나의 등뒤엔 어떤 서사가 그려질지 궁금해. 

어쩌면 정말 솔직한 모습은 뒤에 있지 않을까 싶다. 과장된 몸짓과 꾸며낸 표정으로 숨겨지는 얼굴과 다르게 뒷모습은 속일 수가 없는 것 같아. 아무렇지 않은 척, 당당한 척, 태연한 척했던 얼굴이 가면을 벗고 등뒤에 착 달라붙어. 긴장해서 바짝 올라간 어깨와 곧 서기 위해 있는 데로 힘을 준 허리, 덩달아 긴장한 종아리 근육까지. 마치 무언가를 등에 지고 있는 것처럼 힘이 잔뜩 들어간 채 걷는걸 내가 느낄 수 있거든. 그래서 누군가를 뒤로 하고 걷는 일은 참 멋쩍고, 어색하단다. 그렇게 내 뒷모습엔 내가 볼 수 없는 진실의 낯짝이 붙어있어서  뭔가 부끄러운 것을 들킬 것 같은 긴장이 흐르는 것 같아.

뒷모습은 솔직하지.

밤늦게 돌아온  남편의 처진 어깨와 재수학원에서 돌아오던 아들의 등에 매달려 있던 가방, 어머니의 느린 발걸음은 내가 본 뒷모습이었어. 거기에 부정할 수 없는 그들의 고단함이 붙어있던 거야. 괜찮다고 말하는 목소리에서, 참을만하다고 웃어주던 눈빛 속에선  미처 보지 못했던 무게를 보고 말았어. 그리고 그때 나도 20대의 젊은 아가씨가 느꼈던  울컥함이 올라온 거야. 우리는 진짜 모습을 본 거겠지.

 

k야, 나는  최선을 다해 단정해지고 싶어 졌어.

야무지고 차분한 사람이 되고 싶어 졌어. 과하지 않은 감정을 품고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며 되도록 많은 걸 품을 수 있는 온화함도 가지고 싶다. 그러면 내 뒷모습에서도 그런 단정함과 온화함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함부로 엉뚱한 역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정직하고 단정한  뒷모습을 만들며 살아야겠다.  그 모습들에 울컥함이 모래알만큼도 묻어 있지 않기를.

 그렇게 단정해지자.


언제나 그리운 k야 또 만나길 고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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