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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하울 Jun 04. 2024

y에게

y야.

5월처럼 찬란한 달이 또 있을까. 적당히 데워진 햇살, 습기 없는 바람, 찰랑대며 흔들리는 이파리.

5월 속을 걸으며 자주 손바닥을 쫙 펼쳐봐. 지나는 이 계절을 감히 붙잡고 싶은 간절함에 손가락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바람조차 아까워짐을 느껴보는 거지. 이토록 좋은 5월이라 갖가지 행사를 욱여넣었나 봐. 기억하겠지만 내 생일과 부처님 탄신일도 들어있지 않니. ^^  생이 잉태되기 좋은  계절은 누군가 떠나기좋은 계절인가 . 제사를 준비하다 아버님이 떠나신 5월을 생각해 봤어. 불쑥 정리하고 떠나도 서럽지 않을  이 계절.

버려두고 떠나기에 너무 서러울 이 계절,,,,


y야

 아버님 제사상에 올릴 새우전을 준비한다. 동그란 새우를 다듬다가 가만히 그 몸을 들여다봐. 무장한 듯 껍질 속에 몸을 감춘 새우를 보며 생각해. 드넓은 바다에서 작은 몸뚱이 하나를 오롯이 지키고 살아내려면 제 몸하나 지킬 무기하나쯤은 품고 살아야겠지. 신은 그래서 그에게 갑옷을 입히고 최대한 공손한 자세로 살아가도록 했나 봐. 누군가 다가서면 맞서 대항하는 대신 웅크려서 작은 몸을 방어하라고. 그런데 왜 그의 허리는 죽어서도 펴지를 못하는 걸까. 평생 제 주인을 위해 등짐을 지던 가련하고 비천한 종처럼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스러져도 끝내 해내야 하는 노동이 부채처럼 남아 있는 걸까. 둥글게 굽어진  그의 등을 몇 번 쓰다듬었단다. 미끌미끌하고 연약한 그의 허리에서 약한 종족의 유구하고도 슬픈 비극의 역사가 점자처럼 읽히는 것 같다. 우리 할머니는 세상에서 젤루 불쌍건  굽어진 것들이라고 하셨어. 

'월매나 서러우면 꾸부러져서 눠있는 거냐' 면서.

세상의 굽어진 것들에게서 굽이굽이 서럽게 넘어온 당신의 인생을 보셨나 봐.


 y야 너의 잠자는 모습은 어땠지?

 내가 갓 결혼을 했을 때 남편이 묻더라. 왜 몸을 그렇게 웅크리고 자냐고. 난 예전엔 내 몸을 둥글게 말고 자는 버릇이 있었어. 최대한 다리를 모아서 가슴에 붙이고 누워야 아늑했던 것 같아. 그때 세상에 대한 나의 방어는 약한 내 모습을 철저히 가리고 얻어맞아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버티는 거였어.  그 표정을 갑옷처럼 두르고 살았던 것 같아. 그 표정 속에 한없이 무력한 내가 웅크리고 있었는데 들키지 않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고 살았던 거야. 좀 들키면 어때서. 나는 좀 겁이 난다고 고백할 수도 있는 건데. 

하지만 나이가 드니 신기하게 세상에  대항할 힘이 조금씩 생기더라.  솔직해지거,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거 그게 나를 가장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되는 것 같은 거야. 뭐 어때, 남의 눈이 뭐 중요한가?  난 이대로 편안할래. 뭐, 그런 감정들이 힘을 키우면서 웅크린 내 다리도 조금씩 펴지기 시작하고  표정을  갑옷처럼 사용할 일도 줄어드는 거야 . 나를 보는 남의 눈 따위가 소용스럽지 않다는걸 좀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껄^^


  지금 두 다리를 쭉 펴고 허리를 꽃꽂이 세워서 이 작은 새우에 연민울 담아 들여다본다.    할머니처럼 나도 굽어진 새우의 등에서 예전 굽은 마음을 가진 나를 보았던가 봐.  하지만 왠지 가련한 그의 생을 잠시 애도하며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쓰일 그의 몸뚱이를 기름 속에 던져 넣었단다.


 y야, 우리는 나이를 먹으며 조금씩 씩씨해지는 것 같아 기특한 맘이 든다. 박장대소하며 웃을 일이 적어지는 대신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질 일도 줄어드는 것 같아. 그러니  나이를 먹는 건 그다지 서글픈 일만은 아닌 것 같지 않니? 

누군가 왔다가기도 좋은 계절 속에 꼿꼿이 서서 이 넓은 세상을 헤엄쳐온 우리의 씩씩함을 잠시 감탄해 보자.


곧 만나기를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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