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
착한 글자 11개가 모여서, 보기 좋은 명령어가 되었다. 나의 마음은 지금부터 고요해집니다, 라고 써보고, 읽어본다. 조용한 분노가 침에 고인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라고 아침에 만나는 타인에게 인사를 한다. 모가지 대신, 목소리 대신, 눈주위의 근육이 꿈틀거린다. 우리는 누군가의 인사말 조차도 그대로 듣지 않고 살고 있다. 앙녕항셍용 라고 하든, 존나 좋지 않은 아침입니다 라고 하든, 대충 쳐다보고 대충 까닥거린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있었다. 이미,
당신의 입술사이에서 흘러 나오는 당신의 말들은, 소음이고, 그 소음은 환경에 흡수된다. 누군가의 말들은 문이 닫히는 소리에 걸려서 벽너머에 갇혔다. 우리가 하는 우리의 말이 너무 많은 것들에 걸린다. 혹은 너무 적은 것들에 가려졌다.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난.
내면의 마음이 그들의 귓구멍에 닿았을거라는 기대감은 끊는다. 내가 들은 소리들에 대한 의심을 품고, 내 입술에서 나온 말들을 배신할 차례다.
어떻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
좀 더 나이스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나이를 쳐먹으면서
기대한 것과 정반대의 늙음의 효과를 경험한다.
숀 코넬리의 멋진 흰수염은 엉킨 비디오테이프처럼 꼬였다.
늙어 있음의 상황에서 온 나의 상태는
또 다른 상황을 불러온다.
매일 매일.
어떻게 난 이 상황을 극복할 것 인지.
겨우 든 생각은, 고작
한 숨을 쉬든, 반 숨을 쉬든,
엇박자가 될 수 있는 반박자에 대한 연구를 해볼까 한다.
아. 늙는 것의 뒤에 있던 것들이
나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이 기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