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책
나는 죽었다. 생각했다. 읽은 책중에 인생에 크게 개입을 했던 책을 생각하다가 나는 죽고 말았다. 독실한 크리스챤이라면 성경책을 꺼내 들었겠지만, 나는 죽었다. 헤집다가 나는 죽는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죽었다.
눈부신 하늘을 향해 드디어 찾았다고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며 책 한 권을 번쩍 안아 들었다. 그 책은 아직 살 같은 이가 혀로 거머쥔 소리를 잘게 부수는 방법을 안내해 주었던 찢어진 책에 쓰인 반토막 제목의 어느 동화책. 선택할 수 없는 자에게 주어진 선택된 그 낡은 동화책은 어머님의 손을 통해 펼쳐졌고, 제목의 소개는 생략되었다. 그때즈음의 어머님은, 당신의 글자 공부를 하는 시간만큼, 처절하고 조심스러웠고 가끔은 더듬기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동화책의 이야기는 글자를 읽는 것에 서투른 한 여자의 입을 통해 산산이 부서져서, 한 글자 한 글자 띄엄띄엄 해방이 되었고, 젖물린 아이의 눈과 귀에는 귀여운 사투리의 발음들이 동화처럼 사박거렸다. 그때즈음 그녀보다 많은 글자를 알고, 곧잘 글씨도 잘생기게 쓰셨던 나의 아버지는 그의 아내로부터 나를 잡아챈 후, 좀 더 많은 글자를 들려주고 보여준다. 동화책 속의 글자들이 조그만 방안에 뒹굴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난 그때 잘 웃었다. 내가 웃으면 동화책의 주인공들도 좀 더 즐거웠겠지. 그런 게 동화니까. 내가 웃어서 동화책 속의 이야기가 좀 더 즐거워지면, 우리 어머님도 좀 더 쉬운 글자로 나를 인도해주었을 테고, 콧노래도 불렀을 것이며, 순하고 천진난만했던 나의 아버지도 그날은 춤도 추었으려나? 동화처럼. 동화처럼.
동화책 속의 왕자와 공주처럼, 두 분은 마주 앉아 나를 보며 꿈을 키웠겠지. 늦둥이인 만큼, 말을 늦게 터서 어버버거렸던 나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도 찢어진 동화책이라 할지라도, 그런 꿈은 가지셨을 거야. 그런 게 동화니까.
그들은 죽었다.
다른 책 한 권을 숨기듯 펼쳐 본다. 조그만 아이보리색의 포켓 수첩이다. 고등학생 때, 난 그곳에 공부를 포함하지 않은 모든 것을 적었다. 그 조그만 수첩에 그어진 줄들은 검정색이다. 나의 글들은 그 줄에 닿기만 하면 죽을 것처럼 생명의 보자기를 떠안은 무사처럼, 빼곡하고 장엄하게 흘겨져 있다. 내용들은 암호에 가깝다. 생각보다 아무 생각 없던 말들이다. 그 시절 나는 어떤 대상을 향해 이야기가 아닌 협박을 하듯 말하고 있는데, 화살표는 마치 나를 향해있다. 미술을 하던 단짝 친구가 글자로 깔아놓은 나의 글자위에 지 맘대로 더 멍청한 것들로 채색을 했다. 보통 빨간 잉크 위에 녹색잉크가 겹쳐질 때면, 보잘것없는 나의 말들이 꽤 근사해지기도 했다. 글이 의미를 담지 못하고 있다면, 차라리 그림의 영역으로 스며들어 그런 식으로 색을 입으면 되는 때였다. 그걸 그 친구가 하고 있었다. 해주고 있었다. 어느 날 교과서책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그 조그만 수첩을 꺼내 들고 진지해지기 시작했던 날을 기억한다. 그때쯤의 나의 인생에서 이렇다 할만한 영향력의 텍스트를 선사해 준 사람은 건방지게도 있을 수가 없다에 가깝다. 그때의 내가 사는 곳은 서울의 허리쯔음 되는 곳에 겁먹은 소녀처럼 딱 달라붙어있을 법한 그런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시간이 갈수록 섬처럼 변하고 있었으며, 굳은 표정의 어설픈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서울로 기어나가지 않는 이상, 그 작은 수첩 안의 창살로 된 줄 안의 글자처럼, 뱅글뱅글 도는 것들만 쳐다보며 궁상에 빠져 나날을 보냈다. 그 궁상들을 차곡차곡 쌓다 보니 턱수염도 자랐고, 어엿하고 가소로운 팔자걸음에 뒷짐도 지게 되었다. 그렇게 병신 같은 날들을 즐기며 보냈다.
그때의 난 소리에 집착했다. 듣기에 미쳐 있었고, 그 무엇보다 진지했다.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행위도 내겐 듣기의 범위로 흡수되었다. 친구들의 걸음걸이를 들었고, 선생님의 생기 없는 눈을 들었다. 나의 수첩에 유일한 쓰기 권한을 부여한 친구의 손에 결착돼있던 그 펜의 살아있는 움직임을 들었고, 그의 제구실을 못하는 그저 붙어 있는 귀가 듣는 소리를 들으려 했다. 난 그런 소리가 행복하면 분노의 껍질을 입혀 수첩에 썼다. 그래서 수첩엔 욕이 많다. 멋있게 욕을 하고 싶은 병이라도 걸렸던 거다. 그저 친구에게 멋있어 보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면서.
그도 죽었다.
어느새 카메라를 들고 있다. 손끝에 눌려진 셔터에서 공간이 잘려나간다. 눈앞에 있던 지금 이전의 세계가 평면으로 재단이 되는 과정에 중독되었다. 아무도 없는 조그만 골목으로 이어진 곳들을 10시간 정도를 걸어대며,
모든 소외된 것들을 위로하며 다녔다. 그것들의 장례이전의 닿았던 빛과의 조우를 기념했고, 뒤통수를 가져보지 않았던 마네킹을 덮은 비닐봉지의 신경 쓰이는 글자들도 담았다. 난 이야기되지 못하던, 이야기할 필요가 없건, 그러한 것들에 집착했다. 찬란한 불꽃축제에 조준도 해보았지만, 눈물 나게 아름다운 불꽃은 그 아래 쏟아지는 연기들을 담지는 못했다. 콜록거리고, 화상을 남기는 것들에 축제의 이름은 허락하지 않았다. 난 더욱 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담았다. 아름답게 쌓여있는 쓰레기더미에 광분했고, 자유롭게 굴러다니는 지나버린 콘서트의 날짜가 찍혀있는 가수들의 찢어진 입의 광고물을 좋아했다. 난 우울을 향해 그러지 않았다. 다만 그것을 도려내어 아름답게 봐주는 이에게 보여주고, 별거 없이 그 위에 채색을 했던 친구처럼, 논리적이지 못한 나의 시선이 무얼 쳐다보는지, 무얼 들으려 하는지 , 좀 더 나의 삶에서 보이고 들려지는 것이 무엇인지, 쪼그리고 앉아서 찍은 잡초사이에서 왜 그토록 이쁜 꽃 한 송이가 필 수 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끄덕거려 주는 우정의 어깨동무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일이다.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 것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마음까지 아름답다고 말해주진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렇게 우기는 것들을 한 번 더 눈여겨보았을 때, 왜 그것이 아름다운 건지 발견할 수 있다면 그건 아름다운 일이 될 수 있고,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 그것이 아름다워질 수 있기에, 난 계속 그랬다. 그런 식으로.
난 뒷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걸 좋아했다. 등으로 말을 하는 사람은 낭만 있다. 등의 말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이제 난 쓴다. 듣고 보던 것들을 담아내던 그 엉성한 방법을 난 아직 고수한다. 내 생각에 나는 이렇다. 나의 생각을 글로 바로 적어내는 건 나의 구조상 아직 불가능하다. 나의 생각의 생김새를, 그 느낌을, 그 이미지를 느끼고 보고 듣는 방법으로 적어낸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경계선위의 나의 춤이다. 공감을 얻기에 부족한 방법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설익은 과일의 일단 한번 먹어봐 달라는 죽음을 향한 유혹이라면, 기다려 본다. 적은 것들 위를 채색해 줄 물감을 든 자의 따스한 손길을. 내 어깨 위에 놓일 온기를.
그래서 난 죽는다. 인생책은 나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어느 날 나는 정신을 차렸다. 눈을 떠 보니 어느 책 속의 막연한 글자로 태어나 있다. 고개를 쳐들어 옆을 돌아보니 언젠가 아주 오래전 술잔을 같이 했던 자의 냄새가 풍기는, 물감을 든 자로 보이는 검은 글자들이 나의 옆에 누워 있다. 잠깐 꿈에서 글자로 깨어난 나는, 기분 좋은 행복의 글자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잠에 든다.
그렇게 난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