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
긴장감이 목구멍 속에 꽉 찼다. 입술의 모양도 잘 몰랐을 때다. 입술에서부터 이어진 목구멍이 보인다. 목구멍에 긴장감이 찰박 인다. 입술 앞의 공기가 무거울 때다. 입술을 벌리고 들어간 공기는 두리번 걷는다. 긴장감이 목구멍 속에 차있다. 긴장감을 만져본 적 없는 때다. 입술에 기댄 공기는 가로누웠다. 목구멍으로 보이는 우물 같은 거무스름한 그것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못생긴 어둠으로 짙어졌다가 사정처럼 꿀같이 시큼거린다. 어쨌거나 긴장감은 목구멍 속에 빈틈을 채우며 공기들을 불렀다. 입술을 들춰내고 마른 혀위를 넘어지며 이빨사이를 깔보면서 말이다. 잇몸에 전달된 또 다른 명령들과 부탁들은 반응 없이 흐르는 침에 미끄러져 떠내려 갔다. 그렇게 긴장감은 습기를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타들어 가는 목마름의 세상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그런 순간은 잔인할 정도로 평화로움을 껴안으며 일어났다. 1977년의 동화처럼 추웠던 겨울에 핀 작은 꽃처럼 상관없는 질문을 하는 표정으로 나의 목소리를 체포하듯 내 이름을 불러댔고, 그런 일은 목구멍을 향해 불쏘시개가 되어 꽂혔다. 그랬다. 난 선생님의 출석부에서 뜯어내 날리는 나의 이름에 대답하는 것이 그 정도로 힘들었다. 그 일은 학교에 입학을 하고, 운동장에서의 첫 출석부에 적힌 이름들을 부르는 날이었다. 아주아주 조그마한 구멍의 크기를 가진 입술의 구조를 가진 여선생님은 귓구멍도 너무나도 작았고 나랑은 완벽하게 다른 휴게실에서 쉬어야 할 운명의 분이었다. 그 사람의 첫 부름에, 나의 첫 대답은 뻥 뚫린 운동장에 수북이 쌓인 같은 반이라고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나는 또다시 대답을 했고, 그 대답은 반복을 거듭할 때마다, 꿈처럼 웃기게 변하기도 했고, 마치 잠깐 사이에 백번은 다시 대답했을 것처럼 영원에 가까웠던 것 같은데, 동그란 운동장을 거머쥔 트랙처럼, 사람들도 내 주위를 동글게 말아 쥐고선, 몸은 부풀고 그림자는 뚱뚱해졌다. 그 조그만 구멍의 입을 가진 사람의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당장 달려야 할 것 같은 총소리처럼 슬펐다. 그리고 화가 났던 것 같다. 어쩌면 한없이 부끄러운 다음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의 목구멍에 꽂힌 긴장감은 그 네 라는 대답하나를 일생의 사명감을 받은 듯 목구멍의 멱살을 꽉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그날 도달하지 않는 나의 목소리에 대한 억울함의 기억은 끝나지 않았고, 한 번씩 오래된 병처럼 목구멍을 타고 보이지 않는 소리의 벽을 세웠다. 내가 나의 이름이 들려서 대답 좀 하겠다는데, 내 안의 그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왜 그런 기분 나쁜 것으로 직사각형의 세상을 마름모로 일그러뜨렸을까. 그리고 그건 왜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쫓아 오는 것인지, 그 조그만 구멍의 입술을 한 번 더 만날 수 있다면 묻고 싶다. 또.렷.하.게.
이름 없는 그 현상은 각인이 되어서, 안에서 봉인은 커녕 나름 지맘대로 보기 좋게 자라났다. 사람의 숫자가 조금이라도 많아지면, 내 목구멍의 하늘에서는 그것들이 쏟아진다. 눈물이 날 만큼 억울해지고, 억울한 자의 목소리가 꿀렁이며 솟아 나오고, 머릿속이 토막이 날 정도로 떨린다. 이를 부여잡은 잇몸의 역할이 끝나고, 턱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은 밖으로 안으로 틱틱거렸다. 조그만 구멍의 입술이 입안의 세포들을 침몰시켜 허문다.
개 같은 시간들이 한동안 지속된다.
어쩌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해지는 곳으로 던져진 건 아닌가 생각했다. 넓지 않은 곳에서 머물러야 하며, 조용한 공간을 향해서 움직이는 것은 필연적이며, 작게 벌려진 눈으로 말해도 알아들어 줄 마음을 가진 사람과 마주 하라고. 많은 것은 허락되지 않은 곳에 던져진 건 아닌가 생각했다. 숫자가 조금 더 삐져나오면 바로 앗아가는 그런 세상으로 던져진 건 아닌가 생각했다.
앞으로 뛰쳐나가서 그 사람의 팔을 잡고, 그 사람이 나라고 표시를 해볼걸, 하고 생각을 해야 할 곳으로 던져진 건 아닌가 생각했다.
아마 난 그래서 듣다가, 보다가, 쓰는 곳으로 향했는지 모르겠다. 이것 또한 던져진 거라면 말이다.
즐겨 듣거나 보는 것을 찍은 사진들을 주변에서도 보게 된다. 몇몇 혹은 그것 이상들이 말한다. 좀 더 밝았으면 좋겠어,라고. 그리고 화를 내는 친구도 있었다. 그것은 걱정으로 이루어진 분노라고 생각해 둔다.
어둠의 선이 뒷받침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빛으로만 이루어진 세상을 가늠할 수 있을까?
난 받아들이는 하루를 시작했다. 목구멍 안의 가시도 수긍했다.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숫자의 소중한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 지겹도록 오래 살았던 곳에서 탈출도 했으며, 다가올 향수병에 대비해서 한두 가지 취미도 유지하고 있다. 그 조그만 구멍의 입술을 가진 사람의 부름에 시원히 대답을 하지 못한 날에 생긴 보이지 않는 벽주변에 차곡차곡 줄지어 기다리는 말들을 하나 둘 타이르며 글 위에 실어 나르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쓴다면, 불리워질 나의 이름에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게 또박또박 웃으며 해내는 나의 대답이 될 것이다. 슬픈 이야기가 한두 가지가 있었지만, 이겨냈던, 아래로 기어냈던, 지나갔고, 잘 살았노라고 말하는 자서전이며 회고록이고 싶다. 후미에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편지처럼 다정하게 그날의 날씨도 묻는 일기도 담겨 있을 테고, 그들의 행복을 확신하는 예언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삶이 이어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의미를 짧은 농담으로 한 줄 정도 껴놓고도 싶다. 아직은 모르는 그 농담을.
그대 귓가에 고요하게 흐르는 한방울 바다처럼